이야기 +/우리 안의 친일문화

[친일미술] 작가 소개에 친일 얘기는 왜 쏙 빼는 걸까

이동권 2022. 9. 3. 17:28

대검끼고 적진 돌진하는 황군 운보 김기창의 그림, 적진육박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을 보지 않은 한국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1만 원짜리 지폐 속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정이 그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을지문덕, 태종 무열왕 영정도 운보의 손끝에서 나왔다.

김기창 화백은 대검을 끼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황군을 묘사한 '적진육박'이라는 그림으로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면서 특전을 누린 친일 미술가였다. '총후병사' 같은 그림은 황국신민의 영광을 식민지 국민들에게 고취시키는 그의 대표적인 친일 작품이다.

그럼에도 그는 3.1 문화상, 은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5.16 민족상을 수상했으며, 그림의 가격도 매우 비싸 보통 사람들은 구경조차 쉽게 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명성만큼이나 김기창 화백 전시가 자주 열린다. 전시 소개를 보면, 그의 친일행각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발전과 한국화를 정립하고, 전 생애에 걸쳐 한국 미술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예술가라고만 소개한다. 언론들도 똑같다. 선전 일색이다.

'이름값'을 한다면 뿌리도, 정신도 없이 기획되는 전시는 문제다. 그의 전시는 적극 장려할 일이지만, 관람객들이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살피도록 하는 책무는 전시 기획자들에게 있다.

어느 누구도 김기창 화백이 한국 미술계의 거장이며,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이었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한 예술인이라는 것에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시를 기획할 때는 그의 친일 행적도 함께 소개해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상황과 민족의식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