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친일 미술인들의 작품을 엮어보았다. 이 자료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개최한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전'을 정리한 것이다.
일제는 '총후직역봉공'을 조선인들에게 강요했고, 후방에서 일제의 침략전쟁 후원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찬미하고 헌신할 대규모의 이데올로기 조직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식민지 피억압 민족의 동조를 얻기란 힘들 일. 이들은 조선인들의 전쟁참여와 수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교묘한 선전논리를 펴갔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문화예술 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을 대거 동원한 것이다.
조선 미술인들은 일제의 '신체제운동'에 협력하기 위해 '조선미술가협회'를 만들고, 1943년 '단광회'를 조직하여 조선징병제실시 기념화를 제작하는 등 일제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이들의 활동으로 조선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제의 전쟁에 나가 총알받이가 됐다는 것은 친일 미술이 얼마나 위험하고 반민족적, 반인륜적 범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대표적인 친일미술인 작품 목록
김인승=조선미술가협회발기인, 평의원. 반도총후미술전초대작가, 결전미술전 심사위원. 구신회, 단광회 회원. 조선미전 창덕궁상. 국전 심사위원, 예술원 회원, 한국미협이사장, 이화여대 교수. 3.1 문화상, 문화훈장 동백장.
이 작품은 적십자 완장을 차고 국방색 모자와 간호복을 갖춰 입은 반신상의 그림이다. 쌍꺼풀진 갈색 눈에 오똑한 코, 야무지게 다룬 입술의 얼굴은 성전에 복무하는 여성간호병의 결연한 표정을 살려내고 있는데, 게르만 여성을 연상케 한다. 특히 그림의 왼편 아랫부분에 황기 2603이라고 표기하여 김인승의 친일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김경승=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 조선미전 총독상, 추천작가. 결전미술전 심사위원. 해방 후 안중근 김구 안창호 이상재 등 조각상 제작. 국전심사위원, 예술원회원, 홍익대 교수. 3.1문화상, 문화훈장.
김경승은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당대 구라파 작품의 영향과 감상의 각도를 버리고 일본인의 의기와 신념을 표현하는데, 새 생명을 개척하는 대동아전쟁 하에 조각계의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일 겁니다. 나는 이같이 중대한 사명을 위하여 미력이나마 다하여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인승의 동생이며 해방 이후 애국선열의 작품을 만들었다.
김은호=조선미전 참여작가.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 반도총후미술전 심사위원. 국전 심사위원, 예술원 회원. 문화훈장, 3.1문화상, 5.16민족문화상. 논개 안중근 서재필 이승만 영정 제작.
매일신보에 게재된 '금차봉납도'. 1937년 8월 20일 조선의 상류층 여성들이 애국금차회를 결성하면서 즉석에서 금차(금비녀)11개, 금반지와 금귀이개 각각 2개, 은비녀 1개, 현금 889원 90전을 모아 일제의 성전 승리를 위한 국방헌급으로 납부했다. 김은호는 애국금차회 회장 김복수 등이 조선군사령부 심택중장에게 금비녀 등을 증정하는 감격스러운 광경을 담은 금차봉납도를 그려 미나미 총독에게 증정했다. 금차봉납도는 군국주의가 노골화한 최초의 친일작품으로 화단의 친일활동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기창=조선미전 총독상, 추천작가. 반도총후미술전 초대작가. 결전미술전 조선군보도부장상. 세종대왕 을지문덕 등 영정제작. 수도여사대 교수. 3.1문화상, 은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5.16민족상.
완전군장한 병사가 훈련 뒤 참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병사의 얼굴과 손에서 결전의 의지가 느껴진다.
구본웅=조선미전 특선, 목일회 회원, 종합예술잡지 '청색지'발행. 1030년대 말부터 미술평론을 통해 내선일체와 황도선양 주창. 미 군정청 문교부 편수국 근무.
"미술인은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하여, 사변 승리를 위하여, 신동아 건설을 위하여, 미술의 무기화에 힘쓸 것이며 나아가 신동아 미술의 탄생을 꾀할 것", "미술인들이여!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가진 바 기능을 다하여 군국에 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수현=동연사 회원. 동아일보에서 삽화 만화 도안 담당. 조선미전 3등상, 조선남화연맹 참여. 서울대 교수, 예술원회원, 국전 심사위원. 예술원상, 문화훈장
배운성=베를린 국립미술대학 졸업. 바르샤바 국제목판화전 1등상, 파리 프 살롱 특별회원,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 친일 무용극 '부여회상곡'무대미술 제작. 국전 심사위원, 홍익대 미술과 초대학과장. 6.25 당시 월북, 평양미술대학교원.
윤효중=조선미전 총독상. 대화숙 미술부 지도, 결전미술전 심사위원, 국전 심사위원. 홍익대 교수, 대한미협 부위원장, 예술원 회원. 이순신 민영환 이승만 세종대왕 조각상.
윤효중은 사상전향자 통제조직인 대화숙 미술부 화실에서 가미가제특공대의 소상을 제작하였는데, 첫 번째 작품이 당시 조선 총독 아들인 '아베소위상'이었다. 1945년 4월 27일, 아베 소위의 어머니이자 총독 부인인 미츠코가 비서관, 법무국장, 형사과장 부인들을 데리고 대화숙 미술부를 방문하여 약 3시간이나 방안에 머문 후 관저로 돌아갔는데, 이 자리에서 윤호중은 이 소상을 며칠 안으로 총독 관저 소위의 영전에 봉납하겠다고 밝혔다.
심형구=조선미전 총독상, 추천작가, 심사위원. 조선미술가협회 발기인, 이사, 간사, 평의원, 서양화분과 상임. 황도학회 회원,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 구신회, 단광회 회원. 반도총후미술전 초대작가, 결전미술전 심사위원. 이화여대 교수.
열핀스케치와 담채로 기관총을 사격하는 일본국 사수와 조수를 그린 삽화. 예비탄 창을 들고 웅크린 조수나 기관총 사수의 '적'을 향한 눈초리가 매섭다. 조선미전 총독상을 수상했으며 구신회, 단광회 회원이었다.
이상범=조선미전 추천작가.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 조선미술가협회 발기인, 평의원, 역원. 반도총후미술전, 결전 미술전 심사위원. 국전심사위원, 예술원 회원. 문화훈장 대통령상, 3.1문화상.
이건영=조선미전 출품, 조선남화연맹전 참여. 반도총후미술전, 결전미술전 출품. 조선총력연맹, 증산총력 위문 선발 파견. 6.25때 월북
장우성=조선미전 총독상, 추천작가. 반도총후미술전, 결전미술전 출품. 국전 심사위원. 서울대 교수, 예술원 회원. 예술원상, 금관문화훈장. 이순신 윤봉길 사명대사 유관순 영정 제작.
장우성은 일제의 요청에 따라 '부동명앙'을 그려 반도총후 미술전에 출품하려 했으나 운반 도중 비를 맞아 작품이 훼손된 관계로 출품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동명황은 일본화가들이 전쟁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즐겨 그린 소재이다.
안석주(좌)=고려화회, 서화협회 회원.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 중앙위원. 황도학회 결성발기인. 임전보국단 발기인. 만화, 삽화, 영화, 비평 분야에서 친일 활동. 대한영화사 이사장.
임건이(우)=신시대, 조광, 춘추에 삽화 연재. 철모를 쓴 병사의 그림 옆 얼굴을 포착했는데, 연한 담채 위에 날카로운 펜의 선묘로 음영을 넣은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다. 날카로운 선묘의 중복이 하늘을 응시하며 대공영을 꿈꾸는 병사의 결의를 유감없이 살려낸 군국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그림이다.
박득순=조선미전 특선. 국전 초대작가. 한국미협초대 이사장, 서울대 영남대 교수.
정현웅=조선미전 특선. 소국민, 반도의 빛, 신시대 등 친일잡이 표지화와 삽화를 전담. 조선미술건설본부 서기장. 신천지 발행인. 6.25때 월북, 물질문화보존연구회 제작부장. 미술가동맹 출판분과 위원장.
정종여=조선미전 창덕궁상. 결전미술전 출품. 대동아전쟁 출정자와 입영자에게 '수호관음불상'헌납. 6.25때 월북, 평양미술대학 교원.
1945년 "강화군수의 도움으로 강화군청에서 '수호관음불상' 일천 매를 제작, 대동아전쟁 출정자와 입영자에게 증정하기 위하여 1월 25일에 이 작품을 강화전등사로 가져가 입불식을 마친 다음, 2월 3월에는 강화군 부산군수를 방문하여 헌납했다.
현재덕=조선미전 출품. 서울 신세계출판사에서 삽화 그림. 신시대 등 잡지에 삽화와 마노하 기고. 6.25 때 월북, 조선미술가동맹 아동미술분과 지도원.
1941년 9월 7일 저명한 친일파들이 모여 총후보국을 통한 '성전완수'를 위해 채권가두유격대를 조직했다. 이날 76명의 거물 친일파들이 조를 짜서 서울 시내 12군데로 흩어져 어깨띠를 두르고 채권가두판매에 나섰다.
김종찬=일본군 종군화가이다. 일본육군미술협회가 발행한 화집 '성전미술'에 김종찬의 창씨명 금원찬 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1939년 일본의 이과전에도 '산서오지야전병원'같은 시국색이 짙은 작품을 출품했다. 김종찬은 해방 뒤에도 군도를 차고 다니는 등 정신이상으로 방황하다 일본에서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병약한 체력에 섬약한 성격 탓이라곤 하더라고 일제가 조선미술계에 끼친 악영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려주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송종훈=일본군 종군화가이다. "우르르 몰려드는 여객은 대륙에 개척을 위한 사람들이요, 이 대륙을 무대로 활약하는 사람들에 틀림은 없었다. 허나 과련 얼마나한 성과를 이룰 사람들인가를 의문하지 않을 수 없고, 제발 홍아의 벌레가 되지 않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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