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는 공연예술이 민중에게 파급하는 선정성의 중요함을 간파하고 1940년에 이르러 공연예술에 대한 통제를 한층 강화한다. 그러나 일부 연극인들은 일제의 통제에 발맞춰 협력하는 양상을 보인다.
연극계에 있어 자발적이든, 강압이든 간에 가장 논란이 되는 사건은 단연 '연극경연대회'다.
1942년에 제1회 연극경연대회가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로 개최됐다. 그러나 총독부 정보과와 국민총력조선연맹과 매일신보사 등이 후원한 관제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조선연극문화협회 소속의 대표적인 5개 극단만 참가해 경연을 펼쳤다. 이때까지는 노골적인 친일 성향은 없었다.
이재명 명지대학교 교수의 말이다.
"12월 18일 연극경연대회 심사결과 아랑과 고협이 단체상을 수상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30일 거행된 시상식에는 단체상은 수여하지 않은 채, 작품상(정보과장상)에 '유치진'의 <대추나무>가 선정됩니다. 연출상(황도문화협회장상)에는 <산풍>의 연출자 '나웅'이 뽑혔으며 장치상(매일신보 사장상)에는 <산풍>의 '원우전'으로 결정됩니다. 연기상은 서일성과 유경애 등 극단 연기자들에게 고루 배정됐죠. 이 작품들은 친일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치진'의 <대추나무>는 분촌운동에 열의를 다하는 청년 주인공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일제의 정책을 충실하게 작품으로 옮긴 것이죠."
제2회 연극경연대회는 1943년 9월부터 3달에 걸쳐 진행된다. 이 행사에는 조선총독부가 일제의 정책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면서 노골적인 친체제 행사로 몰고 간다.
"이 대회에서 총독부 정보과는 생산확충, 징병제도, 육해군지원병제도를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일본정신을 강조한 예술작품'으로 그 주제를 명확하게 지정한 것입니다. 또한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서는 조선극뿐만 아니라 1막짜리 국어극(일어극) 경연을 별도로 시행합니다. 연극에서 국어상용화정책을 시험해 보자는 의도였죠."
그러나 조선 8개 극단은 이 행사에서 일제의 정책에 철저하게 부응한다. 이들은 대동아공영권 건설과 징병제 예찬 등 친체제적인 내용의 극을 경쟁적으로 선보인 것이다. 제2회 연극경연대회 각본상에는 '송영'의 <역사>, 연출상에는 '안영일'의 <물새>, 장치상에는 역시 '김영일'의 <물새>, 연기상에도 <물새>에 출연했던 '황철', '김영신' 등이 수상했다.
제3회 연극경연대회는 1945년 2월 초에 개최됐으며 참가작은 총 7편이었다. 이 행사에는 '박영호'의 <김옥균의 사>가 검열문제로 중지당해 송영의 <달밤에 걷던 산길>로 대체되기도 했다.
"제3회 연극경연대회 참가작들은 친일연극적 색채가 비교적 강하지 않는 편입니다. <별의 합창>, <현해탄>, <달밤에 걷던 산길> 등은 노골적으로 징병제를 권하거나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었으나, 온갖 상을 휩쓴 작품은 <산하유정>입니다. 이 작품은 친체제적 요소가 희박한 편입니다.
당시 신파극, 악극단 등의 친일 공연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공연예술에 있어서 작품의 친일성 여부가 극작가의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극단 차원의 문제와 겹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제의 직접 통제를 받았던 유치진의 현대극장이 국민연극 수립에 앞장섰고,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아랑과 고협, 청춘좌 등도 통제기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신파성이 강했던 예원좌와 황금좌 등의 극단과 성보악극단 등도 자발적으로 노골적인 친일극 상연에 앞장섰으며 컬럼비아(라미라)를 제외한 악극단들도 경쟁적으로 신체제를 찬양하기에 바빴습니다. 성보악극단에서 공연한 '함세덕'작의 <추장 이사베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극단 공연은 친일에 적극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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