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연수 소설가 -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책읽기의 기본

이동권 2022. 9. 1. 17:15

김연수 소설가

"아 거기가 좋겠군요" 적당한 장소를 떠올리던 김연수 소설가. 긴 머리에 도시풍의 외투를 걸친 그가 인도한 곳은 커피숍이었다. 술집과 음식점, 갖가지 유흥주점이 대부분인 도심의 상가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곳은 그의 첫인상처럼 조용하고 넉넉한 분위기였으며, 전에 들려본 적이 있는 장소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선생님은 작가가 아니라 뮤지션 같아요"
"머리가 길어서 그래요. 귀찮아서 자르지 않았어요."
"......"

김연수 소설가에 대해 아는 것은 단편소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는 것뿐. 그에게 몇 마디 물어보기가 무섭게 그는 알아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봤어요. 길거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숫자 세는 것에서부터...아르바이트도 해보고 회사도 다녀봤고요."

그럼에도 그는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멋진 저의 모습을 발견해요. 힘든 순간도 많지만, 그 순간이 가장 '나'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일종의 '연애'라고 봐도 무방해요. 같이 있으면 좋잖아요."

김연수 소설가를 만났다. 그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대산문학상(창작과비평사)을 받았으며, 시인 이상의 생애를 그린 '꾿빠이 이상'으로 동서문학상을, 단편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89학번인 그는 24살의 나이에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 에세이 '청춘의 문장들', 중편소설 '사랑이라니 선영아' 등이 있다.

그는 치열한 탐구정신, 담백한 유머, 짜임새 있는 문장과 형식미로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역사적 사건들에 살을 붙여나가는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가로 안정받고 있다.

"황지우, 장정일, 김남주, 박노해, 황동규, 김수영, 기형도......" 김연수 씨는 대학시절 열독가였다. 그가 꿰차고 있는 작가들을 모두 다 받아 적기가 어려울 정도. 그 당시 그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시집은 거의 다 읽었고, 이문열의 소설 등은 고등학교 때 뗐으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풀빛소설선에서 나온 책들을 탐독했다.

"시는 정서가 풍부하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그중에선 박노해 씨의 시가 가장 좋더라고요."

그 뒤로 그는 노동문학과 사회과학서적에 빠졌다. 그리고 헌책방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금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1999년에 헌책방을 돌아다니다가 대학시절에 봤던 책들을 보고 처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들을 읽어주지 않으면 책으로서의 기능은 끝나겠다는 위기감과 만나게 됐지요. 이 책들을 헌책방에서 구출하자는 생각에 다시 수집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없는 책이에요. 대학 시절에 읽었던 책들이 소설을 쓰는데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 의문을 갖고 문제 제기를 했던 것들을 소설을 쓰면서 해부하고 있죠. 독립군들끼리 서로 다투고 사살하는 사건을 다룬 '조동걸' 교수의 글을 보고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로 옮겨보고 싶었습니다. 한 번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숙청됐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이야기인 '와다 하루키'의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을 보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조선일보 하단에 실린 월간 조선의 광고를 보면서 경악했던 적도 있습니다. '영변핵시설폭격'이라는 제목이었지요. 세상의 모든 생명은 먹기 위해서 죽이지만, 같은 종족을 죽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닙니다. 조동걸, 와다 하루키, 조선일보 등등 여기에 나타났던 모든 사건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이잖아요. 지금 집필하고 있는 소설에도 이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김연수 소설가를 만날 당시 그가 집필하고 있는 소설은 '민생단'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연변에 있는 한 중학교에 들렸어요. 중학생 시절 그가 꿈꾸던 세상, 그리고 인민의 정권을 세우겠다는 마음으로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숙청당하고 마는 과정들을 상상해보았지요."

하지만 김 씨는 연변에 혼자 있으면서 '내가 뭐하려고 이 고생을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문학'은 운명적이라는 것. 그는 "대학시절부터 가졌던 문제의식들이 자연스럽게 연변으로 자신을 이끌었다"면서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믿음이나 신념이 없는데,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서 서로 죽이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때 가졌던 생각, 책들에 대해서 지금도 납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읽고 있는 중입니다."

김연수 소설가에게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나 청춘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고 부탁했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이렇게 인간적인 철학, 경제, 정치학은 없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리랑 (김산)=청춘이 무엇인지 얘기해주는 책입니다.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담 보바리=지루한 면도 있지만, 현대인이 처음 등장한 소설입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책입니다.

동아시아의 근현대사=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국사만 배워왔기 때문에 역사관이 고립될 수 있습니다.

당시정해=당나라 시에 대한 책입니다. 술자리에서 폼 잡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스모스=우주에 대한 책입니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줄 것입니다.

자서전과 전기=백범일지, 모택동 전기 등 다른 사람들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읽고 미래를 그려보길 빕니다.

그리스인 조루바=무엇을 하든지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요.

여행기=동방견문록 등 갖가지 여행기를 읽다 보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이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행자 들은 마음을 열어 놓습니다. 여행자는 모두 약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쉽게 알고 친해집니다. 여행을 많이 하라고 충고하고 싶지만, 쉽지 않을 테니 여행기를 많이 읽어보세요. 다른 세계를 발견할 것입니다.


대중적인 연예서적=대학생이라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대중 심리연예 서적을 읽어봐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깊이도 없고 방편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대학 새내기들에게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