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 시공을 초월한 감명 주는 문학

2022. 9. 1. 18:08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차분하게 귓불을 울리는 음성이었다. 시인이라기보다는 영화배우의 목소리처럼 열기가 느껴졌다.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는 못할 목소리.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그의 시를 읽어 내려간다. (이승하 시인은 직접 만나진 못하고 전화통화만 했다.)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 이승하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짠하고 애착이 가는 시다. 한바탕 전투기의 폭격이 끝난 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물어진 주위를 둘러보는 느낌. 그는 '삶이 짜내는 눈물'에 대한 책임을 독자들에게 전가시켜버리는 '언어의 판사' 같다. 곳곳에 드러난 눈물을 외면하면서 자신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그는 족쇄를 채우고야 만다.

이승하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지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이 문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고 의지한 것들을 표현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족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조사하고, 이해하고, 성찰하면서 완결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계간문학서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를 열독했다. 특히 자신이 삶과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았다.

"가난한 사람들, 백야, 죄와 벌 등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모두 봤습니다. 악에 전염되는 인간의 속성, 복수와 질투에 시달리고, 폭력과 기아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도 많이 읽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권모술수, 사랑과 증오 등 인간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학은 허구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감명을 주는 것이며, 독자들에게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승하 시인에게 청춘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중국 '두보'의 시는 꼭 읽어봐야 합니다. 이름은 알고 있지만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두보는 자신이 집에 없는 동안 어린 딸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전쟁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을 걱정하며 눈물을 지었습니다. 이 일화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등의 시를 읽어야 합니다. 그들의 생애와 문학도 깊이가 있고 파란만장해 울림을 줍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작품도 꼭 읽었으면 합니다. 보르헤르트는 27살에 죽었습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이었지만, 나치에 반대했기 때문에 군 교도소를 전전했지요. 전쟁이 끝나고 2년밖에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보르헤르트는 전후 문학사의 시작점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 희곡 '문밖에서', 소설 '이별 없는 세대'가 있으며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은 인간 의지의 승리를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보르헤르트 작품은 콩트 형식으로 된 소설로 분량이 많지 않아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포하는 뜻은 깊고 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