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은 어제오늘이 아니었다. 국제무대에서 현대미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품도 서구 선진국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며, 우리가 주로 관람하거나 알고 있는 작품도 이들 나라의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칠레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살짝'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초현실주의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로베르토 마타(Roberto Matta)를 비롯해 1950년대 유명한 작품들과 1990년대 이후 발표된 비디오, 설치, 사진 등의 작품들이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칠레의 현대미술은 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칠레 미술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국의 정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독특한 색채를 담아내며 성장해왔다.
1950년대 칠레 현대미술은 '직사각형 그룹'과 '로베르토 마타(Roberto Matta)'로 양분된다. 직사각형 그룹은 전통과 재현에 반대하는 기하학적 추상을 추구함으로써, 현대적 조형언어를 모색했다. 라몬 베르가라 그레스, 구스타보 포블레테, 마틸데 페레스 등이 대표작가들이다.
반면 로베르토 마타는 초현실주의의 화풍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서구 유럽과 미국에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수많은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돌포 오파소, 네메시오 안투네스, 엔리케 사냐르투, 기예르모 누뉘스 등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마타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1960년대 '기호 그룹'이 등장한다. 이 시기의 칠레 미술은 엥포르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다. 호세 발메스, 그라시아 바리오스, 알베르토 페레스, 에두아르도 마르티네스 보나티 등이 대표 작가다. 엥포르멜은 '비정형'을 뜻하는 말로, 미국의 액션 페인팅에 대응하는 프랑스의 예술 동향을 뜻한다. 한편으로는 1965년 이후 실험 미술이 발전한다. 호세 발메스와 그라시아 바리오스 등은 극단적인 미술 행위로 미술계를 장악했으며, 이들의 주요 의제는 대중과의 소통, 회화의 거부였다.
1970년대 초까지 칠레 미술계는 엥포르멜이 발전하지만 1973년 쿠데타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또 예술에 대한 검열이 강화돼 창작활동이 위축된다. 그 결과 향락주의와 자전적 성격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이때 예술가들은 사회적 이슈들을 표현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신표현주의의 영향으로 회화가 복권되기도 한다. 사미 벤마요르, 칼로스 마투라나 등이 대표 작가다.
1990년대 이르러 군사독재가 끝나고 칠레 미술계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통제와 검열에서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획득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침체된 예술계를 다시 살리기 위해 국가 기금인 'FONDART'가 창설돼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한다.
이때부터 칠레의 젊은 예술가들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폭력과 인권유린의 사회상을 예술적 언어로 표현했다. 특히 이들은 상처를 겪은 자들의 감성에서만 나올 수 있는 섬세한 작품들로 현대미술의 한 축을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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