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 가장 선명한 흐릿함

이동권 2022. 8. 31. 16:48

촛불과 해골, 1966, 캔버스 위 유채, 65X70cm ⓒ게르하르트 리히터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사의 거대한 맥을 이끌어온 작가다. 회화의 종말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예술가이기도 하다. 세련된 감각과 풍부한 표현 방법으로 이룩한 그의 독보적인 화법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실험 미술가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극적인 명암대비로 깊은 감동을 선사했던 19세기 고전주의 화가 폴 들라포슈는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의 종말'을 선언했다. 역사적인 실제 사건을 그려왔던 그였기에 사진이 보여주는 사실감은 충격에 가까웠다. 1918년 모스크바 국립응용미술학교 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 교수는 하얀 벽면 위에 하얀 캔버스를 걸면서 회화의 진보는 더이상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의 하나로 꼽히는 구성주의 화가 알렉산더 로드첸코도 '회화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러나 회화는 고전적인 방식에 여러가지 오브제를 섞고 창의적인 구성력을 가미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작가의 감성으로 사진 그 이상의 이미지를 구현해내면서 더욱 아름다운 예술로 자리잡게 됐다. 그럼에도 회화는 '순수한 그림의 영역'이냐, 혹은 '타 장르로의 확장이냐'를 놓고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가능성'만이 '대안'처럼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리히터는 1932년 독일의 드레스덴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했으며, 15세 때부터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51부터 54년까지 사회주의 동독의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면서 보수적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익혔으며, 파리 여행, 카셀 도쿠멘타 참관 등으로 서방의 현대미술 흐름에 눈을 뜨게 됐다. 이어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를 전후해서 부인과 함께 서독의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

1961년부터 64년까지 뒤셀도르프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카를 오토 괴츠(Karl Otto Goetz) 밑에서 수학하면서 시그마 폴케, 콘라드 피셔뤅,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과 교우했다. 이때 플럭서스 운동, 팝아트 등으로부터 영향받았으며 시그마 폴케, 콘라드 뤅과 함께 이른바 자본주의 리얼리스트 그룹에서 활동했다.

그는 오브제 미술, 행위미술 등 현대 실험미술의 열풍 속에서도 전통 장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회화 작업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과 방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기존의 관념적, 주관적 의도에 속박되지 않는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다. 다시 말하면 대상의 묘사로서 회화를 거부하고 회화를 통해 순수한 실체를 드러내고자 했다.

리히터는 1962년 이후 사진 이미지에 기반한 회화를 제작했다. 사진의 인공적 이미지를 그대로 회화로 재생산했다. 심지어 추상회화를 위해서도 사진 이미지를 활용했다. 작가에 있어 사진은 '양식도, 구성도, 규범도 없으며, 개인적 경험을 떨쳐버리게 해주는 순수한 이미지'로서 기존의 예술 개념을 탈각한 방법이었다.

리히터 회화의 양식은 단일하게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동시다발성, 분절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무스타일성은 중성적, 익명적 이미지인 사진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회화 구조와 깊이 관련된다. 리히터의 작품의 형태를 시기별로 보면 1960년대 초기 구상사진회화, 1966년 이후 극사실적인 풍경사진화 및 기하학적 추상회화, 1971~72년 사이엔 유명 사진인물화, 1977년 이후엔 추상회화와 정물화 등이 주류를 이룬다.

리히터의 작품은 그간 '회화의 종말' 시대의 대안적 회화로, 주로 아방가르트 미술 안에서 읽혀 왔다. 하지만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계기로 전통 장르로서의 회화성이 재평가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추상화, 1969, 캔버스 위 유채, 200X200cm ⓒ게르하르트 리히터

 

추상화, 1971, 캔버스 위 유채, 250X375cm ⓒ게르하르트 리히터

 

바다 풍경(구름낀), 1991, 캔버스 위 유채, 260X200cm ⓒ게르하르트 리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