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마공동체는 일할 마음이 있는 노숙인들이 모여 폐품과 재활용품을 주워 팔고 살았다. 노숙자가 처음 이곳에 찾아오면 6개월 동안 편하게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오랜 떠돌이 생활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을 쉬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다 일을 하고 싶으면 리어카를 사주고, 필요한 물품도 준비했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고, 착취당하지도 않으며,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열심히 일한다면 저축도 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었다.
"강남 쓰레기 누가 치우겠어요. 우리가 치우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열심히 수거해서 돈 벌고,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은 다시 사용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길거리에 있는 것이 모두 돈입니다. 강남 주민들도 쓰레기봉투 값을 아끼기 위해 재활용품은 모두 그냥 내놓습니다."
넝마공동체에서 작업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엄중섭 씨의 구수한 재활용 철학이다.
그는 "주민들이 뭐라고 할까봐 주위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다"면서 "자신도 주민들의 민원이 제일 무섭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넝마공동체 작업장 주위는 매우 청결했다. 그의 말로는 일주일에 2번은 꼭 청소하기 때문이란다.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넝마주이. 그래서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이른 편이다. 하지만 열심히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를 돌아다니면 수입도 짭짤하다. 수집한 물건은 모두 즉석에서 현금으로 바꿔준다.
헌 신발은 1kg에 150원. 헌 옷은 장사치들이 와서 하나에 300원에서 500원에 사간다. 남은 옷들은 1kg에 140원 정도에 넘긴다. 넝마공동체가 한 달에 넘기는 헌 옷은 약 20톤. 그나마 아파트 단지에서 수거해 온다는 이유로 번 돈의 일부는 아파트에 기금으로 내놓아야 한다.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쌍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거부한다. 남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계속 원하게 될 것이고, 자립하는 의지도 꺾인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아름다운 가게'의 지원도 거부하고, 도리어 자신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돕고 있다.
엄중섭 씨는 "형님(넝마공동체 윤팔병 대표)은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아름다운 가게에 옷 3,000벌을 기증하고, 북에도 옷을 보내기도 했으며, 한 신문사에는 기부금 2,000만 원을 후원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곳의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우리가 피해를 줍니까, 도움을 달라고 합니까, 사람들을 위협합니까? 가만히 놔두면 잘 살 텐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강남구청의 행정대집행 이후 넝마공동체 식구들 중 몇몇은 쉼터에 가서 겨울을 보낸 뒤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추위 앞에서는 장사가 없잖아요."
강남구청은 포이동 266번지 옆에서 7년 동안 거주했던 넝마공동체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공영주차장을 짓겠다는 이유다. 그래도 이들이 떠나지 않자 강남구청은 다시 철거에 들어가 컨테이너와 가재도구들을 모두 싣고 가버렸다.
현재 이들은 적십자 혈액원 옆 청소작업장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하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다시 영동5교 밑으로 터전을 옮겼다. 하지만 장소가 비좁고 원래 생활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어 모두 들어오지 못하고 쉼터에 들어가야만 했다.
갑자기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한마디 했다.
"12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전기도, 물도 끊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행정을 펼치라고 했습니다. 서울시 이명박 시장도 동절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말만 내세우지 실제 정책은 그대로입니다."
부드러운 미소가 일품이었던 한 할머니. 넝마공동체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는 그 할머니는 "여기가 살기 좋고 편하다"면서 나에게 아직도 신을만하다고 헌 신발을 내놓았다. 유통기한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버렸다며 한방차를 건네기도 했다.
할머니는 강남구청의 행동에는 못마땅한 듯 "우리의 터전을 빼앗는 사람들과 싸워 지켜야 한다"며 "어느 누구도 이곳을 강제적으로 밀어붙이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가 어찌 됐든 넝마공동체에 들어온 노숙인들은 노숙인이 아니다. 국가의 땅에서 기거하지만 컨테이너로 만든 집에서 먹고 자며 일하기 때문이다. 넝마공동체 이준형 사무국장도 "일하고자 하고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노숙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가 없어 노숙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 사회가 노숙인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그늘에 가려 절대 빈곤층은 점점 늘어나는데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정부는 노숙인들에게 쉼터에 들어가서 생활하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된다고 여기는 것이죠. 정말로 노숙인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경제적인 사정만 나아지고 거처만 있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노숙인들은 쉼터를 싫어합니다. 출입 시간을 지켜야 하고, 번 돈도 직원들이 관리하며, 한 방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인간 취급을 못 받는 것이죠.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도 이들을 이용해서 후원이나 지원을 받으려고 하니 참담하고요. 넝마공동체는 노숙인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자립기반을 만들 것입니다. 또 이후에는 빈곤 가족들을 위해 시설도 운영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의 사정은 어려운 사람이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노숙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양성화하는 복지정책을 펴달라는 것입니다. 땅을 내주고 합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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