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이 1981년 국민을 강제이주 시켜 생긴 마을이 포이동 266번지다. 지금은 행정구역 상 개포동이지만 '포이동 재건마을'로 불린다. 국토부는 2018년 포이동 재건마을 부지에 신혼희망타운을 지어 2022년부터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재건마을 주민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고 외면했다. 주민들은 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토지변상금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다.
강제이주 25년. 언제 쫓겨날지 몰라, 잡혀갈지 몰라 뜬 눈으로 지새웠던 삶. 흐르는 눈물이 마를 날 없이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 위원회 조철순 위원장을 만났다.
"강남구청이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을 불법 점유자로 취급하고 쫓아내려는 이유는 땅값 비싼 이곳에 타워팰리스와 같은 건물을 세워 돈을 벌어보자는 것입니다. 정부는 포이동 주민들의 인권 유린을 당장 중단하고 과거의 죄를 사과 보상해야 하며, 말소된 주민등록을 다시 등재하고 죄 없는 사람들에게 부과한 토지변상금을 철회해야 합니다. 강남구청은 우리를 거지 취급하며 함부로 대했습니다.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해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이대로 앉아서 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가 없어요. 여기저기에 내버려진 재활용품들을 모아 팔면서 생계를 이어온 지 25년이 지났는데도 가난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으니까요."
조철순 위원장의 절규처럼 붉은 '빈철연' 깃발이 거센 바람에 몹시 펄럭인다. 비탄에 젖은 주민들의 절실한 마음을 옮겨 놓은 듯 힘찬 기운을 쏟아내며 휘날린다.
"포이동 266번지에 25년 동안 살면서 인간다운 삶은 없었습니다. 강제 이주 당시 이곳은 원주민들이 연탄재나 쓰레기를 버리던 곳이었어요. 생활공간이라고는 전기, 수도도 없는 비닐하우스가 다였지요. 우리는 꺼진 땅도 메우고 다시 판자로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하우스 비닐이 햇볕에 타서 다 부서지고 난리가 아니었거든요. 그때는 또 관리자들의 감시도 심했어요. 제복 입은 경찰들이 무서워서 시키는 데로 다 했지요. 서울 올림픽이 개최될 때에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고요. 그 당시 '후리갈이'라는 게 있었어요. 경찰 간부들이 직원들에게 개인당 몇 건씩 잡아들이라고 할당량을 주는 것이죠. 딱히 단속할 게 없는 경찰들에게 가장 만만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었어요. 무작정 끌려가서 물고문도 받았고, 폭행과 폭언은 말도 못 했지요. 실제로 삼청교육대 같은 데 끌려가서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초 위원장은 어디에다 하소연 한 번 못하고 살았다. 먹고살기도 바빴고, 부랑자, 고아, 넝마주이가 대부분인 주민들은 그저 고통 속에서도 '하늘 같은' 경찰들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잘못 대들었다가 더 큰 불이익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삶이었다. 그러다 '빈철연'을 세운 이후에서야 참아왔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 경찰서에 끌려간 사람들 중에는 정신병자처럼 폐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에 칼 십여 개를 놓고 살고 있지요.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당하면서 누군가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는 망상 때문입니다. 정말 올림픽 때까지는 마음대로 밖에도 못 나가고 살았습니다. 밤에 우거지를 주워와 국 끓여 먹고살았으니까요. 그런데도 정부는 모든 증거를 없애고, 포이동 주민들에게 토지변상금을 물리고, 주소까지 없앴습니다. 우리는 나라의 희생물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자활 의지를 키우겠다고 군대식으로 인권유린을 행하고 강제 이주시킨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 벌어졌던 만행들의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같은 약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줘도 모자랄 판에 토지변상금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주했던 분들은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시면 진실이 묻힐지 모릅니다. 관공서의 모든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고요. 다행히 자활근로대원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어서 이렇게 챙겨 뒀습니다."
조 위원장은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예전에 자활근로대원으로 감시 감독을 받았다는 증거라며 '자활근로대원증'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강남구청은 주민들에게 전입조치를 하라는 행정자치부의 지침도 무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정자치부는 '빈곤층 집단 거주지역 주민등록 전입 관련 지침'을 내리고 '빈곤층 집단 거주지역 실제 거주 주민이 전입을 원하는 경우, 주거목적과 각종 민원발생소지 등 각종 여건을 시군구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극적인 전입조치를 시행'하라고 시달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강제적이지 않은 점을 악용하여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에게 아직까지도 전입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정부는 거주자들을 실질적인 거주민으로 인정하고, 현주소를 주민등록에 등재해야 합니다. 비닐하우스, 쪽방 등 빈민층 집단 거주지역도 실태조사를 해서 주소를 내줘야 하고요. 이 문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풀어야 하며 행정책임자들이 직접 움직여서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포이동 266번지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1981년 이곳에 강제로 이주되면서 전입신고를 했다. 그러나 조철순 위원장은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빨리 떠나려고 했다.
"거지마을에 산다는 말이 너무 기가 막혀 오래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하니 주소가 없어 전입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1989년 다시 주소가 없어졌어요. 포이동 200-1번지가 포이동 266번지로 바뀌면서 주민들은 모두 등재되지 못했지요."
강남구청은 구획정리를 하면서 이곳 주소를 아예 포이동 266번지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266번지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주민들의 주민등록에는 전입신고 당시의 주소 200-1번지로 되어 있으며, 개포4동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사람들도 옛날 주소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주소가 없으니 학교에도 가지 못합니다. 공과금도 과태료를 무는 경우가 많고요. 언제 세금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고, 우편물을 받지도 못했는데 공과금을 안 냈다고 독촉을 당하기 일쑵니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이주를 시켜놓고 이제 와서 무단 침입자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토지변상금을 물라고 합니다. 그 액수도 상당합니다. 한 가구당 7,000만 원에 이릅니다. 지자체가 되면서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커졌어요. 강남구를 구청장 자신의 소유로 생각해요. 과거에 인정했던 주민등록도 인정하지 않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는커녕 서민들에게 억울한 누명만 씌워 돈을 물리고요. 마치 여기를 구청장의 사유재산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웃기지도 않습니다. 주민등록 정리기간 때 동사무소에 가서 266번지로 올려달라고 하니 해줄 수 없다고 해요. 강남구청에서 해야지 동사무소는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 주민등록 정리는 동사무소에서 하는 일인데도 오리발입니다. 주민등록 정리기간은 살면서 주민등록을 정리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제도인데, 저희는 25년 넘게 살아도 안됩니다. 포이동 266번지는 강남구청이 치밀한 계획 하에 벌인 일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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