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안성기 배우 - 영화산업 떠나 문화주권까지 미국에 내주고 말 것

이동권 2022. 8. 27. 17:51

안성기 배우


정부가 한국영화의 의무상영 일수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하자 영화인들이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철야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때 대책위원장이었던 안성기 배우를 만났다. 그는 영화 '한반도'에서 대통령 역으로 출연하고 있었으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이후 연기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모든 영화제작을 중단하고 대규모 항의집회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 계획입니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고 내린 위험한 결정입니다. 대통령 신년연설에서 FTA를 추진한다는 말을 듣고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와도 관련이 깊어, 모임을 가졌는데 회의 도중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국익을 위해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겠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였지요.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당시 배우들은 스크린쿼터 축소되면 한국영화가 벼랑 끝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나날이 발전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각고의 노력과 감각이 발휘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한국영화와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유력 상업영화가 상영관을 독점하는 식의 영업방식 같은 것 말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저지하기 위한 영화계의 대응이 무엇보다도 주목됐다. 여론마저 한국영화의 성숙을 운운하며 스크린쿼터 축소를 찬성하는 분위기여서 향후 전개될 대정부 투쟁에 상당한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스크린쿼터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부터 불철주야 달려왔던 안성기 배우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심정으로 적극 인터뷰에 임했다.

"146일 의무상영일을 73일로 줄이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듣고 제 몸이 반쪽이 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정신 바짝 차리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도록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예전과 달리 국민들의 여론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국영화가 성장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입니다. 영화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고, 아직도 한국영화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바탕에는 스크린쿼터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간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영화산업의 미래를 떠나서 문화주권까지 미국에 내주고 말 것입니다."

아울러 안 위원장은 "FTA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내놓은 미국의 무례한 주장에도 경악을 금치 못 하겠다"고 성토했다.

"정부는 스크린쿼터를 지켜야 한다는 영화인들을 집단 이기주의자로 치부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영화계가 성숙했다', '혹은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여론 몰이를 하더니 갑자기 스크린쿼터 축소를 발표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각본대로 미국과 한국 정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정부는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기 위해 모종의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후안무치한 미국과 이를 따르는 한국 정부를 믿지 말고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를 지켜낼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께서 힘을 보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