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정지영 큐레이터를 만났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선망하는 청춘들에게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매체에서 보이는 큐레이터의 이미지는 '우아하다'는 것입니다. 큐레이터가 되기 전, 저도 '고상한 직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전혀 다릅니다. 큐레이터가 되는 것도 힘들지만, 되고 나서는 더욱 힘들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갤러리는 근무시간이 깁니다. 주말에도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면 일해야 하죠. 겉으로 보이는 갤러리의 모습이 고요하고 한가롭기 때문에 '편하게 돈 버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전시를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일도 많고, 끊임없이 공부도 해야 하고요."
현명한 장군은 패배할 게 뻔한 전쟁을 일으키는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길 것 같은 마음'에 무모한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작가가 누구일지 무척 궁금해진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진정한 '그림보기'가 무엇인지 의문을 풀 수 있을 것 같아서 다. 전문가의 의견이라고 해서 무작정 추종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이유'만은 색다르지 않을까.
정지영 큐레이터는 송현숙 선생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그녀의 그림에서 고향의 향수가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송현숙 선생은 '장독'이나 '기왓장'등 한국적인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재독작가이다.
"송현숙 선생님은 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처럼 간호원으로 독일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함부르크 대학에 진학해서 화가가 됐지요. 송 선생님의 특별한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작품에는 많은 것이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전문가들이 좋아하거나 추천하는 미술작품은 일반인들의 시선과 사뭇 다른 듯 싶다. 일반인들은 보통 매우 아름답거나, 현란한 기교로 그려진 작품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 속에 담긴 정신적인 것들에서 진정한 그림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겉모습에 치중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래 큐레이터를 꿈꾸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위해 '큐레이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큐레이터는 전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림을 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직업입니다. 작가, 관람객, 기자와 만나기도 하고, 상업갤러리에서 근무하면 콜렉터들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성맞춤입니다. 미술작품도 보고, 공부도 하고, 사람도 좋아한다면 정말 권하고 싶은 직업입니다. IMF 이후에 미술계가 휘청했지만, 새로운 경매시장도 오픈하고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서 전망은 매우 밝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큐레이터의 80%는 미술대학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 전공자들이 유리하지요. 그러나 그림을 꼭 잘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술사, 예술학과, 아트경영 등 미술 관련학과를 전공해도 좋습니다. 또한 미술과 관련된 일을 했던 '경력'도 중요합니다.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더욱 많이 주어집니다. 미술에 대한 지식과 함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글쓰기 실력도 필수입니다.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글 정도는 써야 하거든요. 출근해서 매일 아침 처음으로 하는 일은 신문에서 미술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하는 일입니다. 공부도 하고 정보도 얻고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외국어도 필수입니다. 점점 해외 아트페어도 많아지고 작가와 작품 교류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지영 큐레이터는 학고재에 대한 특별한 애정를 과시했다.
"학고재에서는 훌륭한 고서화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사간동과 인사동에 있는 전시장을 오가면서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 있습니다."
1988년 인사동에서 문을 연 학고재는 '옛것을 익히는 집'이란 뜻이다. 이 말의 뜻처럼 학고재는 '옛것을 알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자세로 출발했다. 그동안 학고재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한국의 고미술을 발굴하거나 기획전을 통해 널리 알려왔다. 요배, 김정헌, 민정기, 신영복, 신학철, 오윤, 이종구, 이철수 등 1980년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시대정신을 부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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