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성진 34통(3040 통기타 동호회) 회장 - 환자 위로하는 기타 선율

이동권 2022. 8. 10. 16:15

이성진 34통 동호회 회장


음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사랑과 추억 속에 음악이 있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젊은 시절의 정의가 노랫말에 흐르고, 삶의 힘겨움 따위는 쓴 소주와 함께 통기타 장단으로 이겨왔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삶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다들 그 나름대로 정체된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의 칼날과 맞서는 날이 깊어가면 갈수록 음악을 멀리하는 정도는 심해지는 것 같다.

이성진 4통 회장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일까. 그에게 있어 음악은 일상의 모든 행적 속에서 종잡을 수 없이 피어나는 모든 피로함을 잊게 해주는 매개체일 것이다. 또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삶의 밑거름처럼 보인다. 혹은, 음악이 그의 존재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에게서 느껴지는 음악에의 열정이 막 터질 순간을 기다리는 마그마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

그가 순한 눈을 살짝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내뱉은 말이다.

음악은, 라이브 음악은 확신의 예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형태로 태어나 시시때때로 변하는 불확실한 존재이며, 실존하는 물체 같으면서도 환영처럼 주위를 잠시 둘러보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순간의 예술이다. 그래서 라이브는 선율과 가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좀처럼 하기 힘든 예술이다. 요즘은 CD나 MP3 등이 있어 언제든지 듣고 싶은 음악을 똑같은 음원으로 들을 수 있지만, 라이브에서 느껴지는 전율을 영원히 따라올 수는 없다. 라이브 음악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나,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확신이 소멸하면 계속 만들어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개인적인 욕심은 없습니다. 어찌 보면 남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은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민자치위원회 학부모들 같은 경우는 정말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세상은 낮은 곳에서 노력하는 사람들 때문에 움직입니다. 앞에서 끄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묵묵히 낮은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의 얘기는 돈과 명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은 우리 사회를 더욱 피폐하고 침울한 삶으로 만들어간다는 뜻이었다. 또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낮은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역할도 무척 소중한 것임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저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한동안 열심히 불렀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정말 가슴에 와닿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를 가슴에서 우러나오게 부르다 보면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공연을 통한 수익금은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두 기부합니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성진 회장의 얼굴은 어려 보이는 중년의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순진한 표정이 있다. 이 표정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깨끗하고 맑은 심성이 담겨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을 풍긴다. 이 회장을 움직이게 하는 일상의 동력은 균형 잡힌 삶의 철학에서 나온 듯싶다. 에너지 넘치는 노래 또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의 정신을 이루는 중요한 모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공격적인 성향이 많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서로 비난하는 글이나 무조건적인 안티가 넘쳐납니다. 내 이웃이요, 친척이요, 가족이라면 이해의 폭이 넓을 텐데 아쉽습니다. 남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서 그렇습니다. 예전보다 사람을 미워하는 글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오해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당사자들은 이유도 없이 코너에 몰려 돌멩이를 맞으면서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고통을 호소해도 멈춰지지 않습니다. 만약 거짓 내용이 언론이나 네티즌들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라면 당사자는 얼마나 속이 터지겠습니까. 배신당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해하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아름다운 사건이나 사람을 발굴하면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이버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음악가들은 보통 두 가지 삶을 산다. 하나는 홀로 고독한 상상에 파묻혀 살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열중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러한 명상의 삶에서 잠시 빠져나와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상을 조롱하듯 제멋대로 삶을 달려가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볼 때 이성진 회장은 두 가지의 삶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기쁨에 충만해 노래를 부르면서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란병원 옥상에서 3년째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처음 병원에서 '가족노래잔치'라는 음악회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일반인들도 듣기 부담스러운 클래식 일색이었거든요. 이후, 저희가 맡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저희 무대의 관객인 환자나 보호자, 동네 주민들은 연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30대를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어 70~80년대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반응이 그렇고 그래서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가수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듣는 대상에게 맞춘 것입니다. 환자를 위한 자선공연이지만 병원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습니다. 이 돈은 모두 불우이웃 돕기를 위해 쓰고 있지요. 공연이 끝나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약간의 간식도 나눠줍니다. 실외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날이 추워지거나 비가 오면 공연을 올릴 수 없습니다. 몸이 성치 않은 환자들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수지에서 살고 있는데, 공연하는 날 비가 오면 하늘만 보고 있습니다. 어서 그치라고요. 한 번은 공연을 취소할까 생각해서 전화해보니, 서울은 비가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자선공연과 별도로 34통 회원들은 년 5회 정기 콘서트를 엽니다. 이날 모이면 잘하든, 못하든 자기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쑥스러운 마음에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좀 지나면 자유롭게 참여하더라고요. 아산병원에 게스트 공연을 나가도 했고, 라디오 방송국에 출연도 하고 그랬습니다."

34통은 3040통기타 동호회의 줄임말로 엠파스 자선노래공연 동호회이다. 처음에는 별도 사이트로 모임을 꾸렸으나 엠파스에 카페를 만들면서 주무대를 완전히 바꿨다.

이성진 회장의 말에 따르면 34통은 노래를 통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한다. 34통은 30대와 40대가 주축이지만, 동호회의 문은 20대까지 열려 있다. 위로는 60대 회원들도 활동하고 있어 그 층이 매우 다양하다.

"34통은 30대와 40대가 가장 많으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입니다. 연주하는 악기도 다양하지요. 통기타 동호회이지만 색소폰이나 피아노 등을 연주하는 분도 계시고요."

이성진 회장에게 온라인 동호회에서 오프라인 행사가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다. 요즘도 밴드니, 카페니, 페이스북이니, 유투브니 등을 통해 온라인 동호회가 많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대답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입니다. 온라인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오프라인 행사가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오프 행사에 나오면 기타를 연주하거나 노래도 부를 수 있어 음악동호회의 순기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합니다. 지방에 있거나 정기 콘서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온라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온라인 34통은 실명으로 운영합니다. 진실로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회원도 정기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모임이라는 것이 가입만 하고 한 번도 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고 보면 온라인 동호회는 몇 명의 회원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관심과 응집력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