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박정호 장애인휠체어마라톤 선수 - 히말라야 'Hand Walking'

이동권 2022. 8. 11. 23:23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한 박정호 씨, 좌에서 두 번째 ⓒ박정호


히말라야에는 경이로운 눈물이 있다. 온전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뼈를 깎는 열정으로 오르는 길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기억 속에 영원히 담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희망원정대. 자연의 신묘한 음성이 으르렁거리며 인간과 경계를 만들어왔던 히말라야에 장애인 10명이 다녀왔다. 이들은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면서, 부서져 내리는 설산의 고함소리를 들으면서 히말라야에 올라섰다. 눈길에 미끄러지고 그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들판의 포효에 가슴 조이면서 히말라야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희망원정대는 KBS 장애인수기공모에 당선된 장애인 10명과 함께 셰르파(Sherpa) 70여 명이 포함된 100여 명의 대원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히말라야 산맥 북부 안나푸르나(Annapurna-8,091m)봉의 해발 3,193m 지점에 있는 푼 힐(Poon Hill) 전망대에 올랐다. 

희망원정대에 참가한 장애인 마라토너 박정호 씨를 만났다. 그는 6살 때 척추종양을 앓으면서 하반신에 마비가 왔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새롭게 알아가는 작은 일에도 호기심이 부쩍 늘었을 나이에 그에게 장애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희망원정대는 1월 24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태국 방콕을 경유,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포카라로 이동했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한 원정대는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다. 목발과 휠체어 장애인들은 각각 목발과 핸드 워킹으로 이동했으며, 길이 험한 곳에서는 셰르파들의 등에 업혀 산에 올랐다. 

"바닥이 미끄럽고 기후조건이 좋지 않아서 셰르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산증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했지요. 처음에 저도 셰르파에게 업혀 갔는데 동행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자,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자는 생각에 먼저 Hand Walking(손으로 걷기)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인이나 장애인이나 고생하는 것은 똑같거든요."

하체를 들고 Hand Walking(손으로 걷기)을 하는 동작은 팔 힘으로만 몸무게를 지탱하며 걷기 때문에 어깨에 상당한 통증이 온다. 그러나 박정호 씨는 힘든 내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남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간다는 생각에 더욱 힘을 내기도 했지만, 팀원들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호 씨에게 히말라야 희망원정대는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었다.

"희망원정대는 제 인생의 한턱을 넘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4년 10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는 꼴찌를 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원정대에 다녀온 후 불과 6개월 만에 국내 2위, 상금순위 1위, 세계 36위로 올라섰지요. 히말라야는 제 인생에 있어서 많은 변화와 기회를 준 일입니다."

박정호 씨가 히말라야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추억은 무엇일까? 깊은 눈길을 힘겹게 걸어가면서도, 벅찬 감동에 가슴이 떨려오고 목이 메도록 흐느끼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에게 기억에 남은 추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17살 셰르파 '옹추'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눈이 정말 예쁜 아이였죠. 제가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하얀 원숭이를 세 번이나 봤는데 '옹추'가 그러더군요. 이제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하얀 원숭이를 길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나 봐요. 또 손으로 걷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다리를 잡아줘야 하는데, 이 옹추라는 친구가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터 김상두 선생님도 저의 다리를 잡아주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날 그가 눈물을 흘리더군요. '자기 자신이 부족했다', '오히려 배우는 게 많았다'면서요. 처음 김 선생님은 언론에서 주최한 행사라서 영상 찍을 때만 대충하면 된다고 말하곤 했었거든요.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B형 터프가이'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B형 터프가이'라고 불렀거든요. 제가 말이 없어서 사람들이 어려워했습니다. 저도 정말 힘들었는데,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하는데, 제가 힘들다고 하면 모두들 더 힘들어했을 겁니다."

 

좌)Hand Walking중인 박정호 씨, 중)푼힐 전망대에 오른 박정호 씨, 우)밝은 성격으로 희망원정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네팔 셰르파 '옹추' ⓒ박정호


희망원정대에서 참가한 사람들은 장애인과 처음으로 생활한 사람들이다. 밖에서는 대접받으며 살았을 사람들이 남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박정호 씨는 그런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기 싫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희망원정대에 참여한 사람들은 히말라야 원정을 후원한 기업체의 간부들과 취재진들이었습니다. 저는 500만 장애인의 대표로 히말라야에 간 것이고요. 말보다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우선입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을 바꿔주고 싶었습니다. 장애인들은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당연히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회의 벽이 높습니다. 닫혀 있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비장애인에 비해 좁을 뿐 닫혀 있지는 않습니다. 장애인들이 먼저 자기 계발에 열정을 갖고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저도 신용불량자입니다. 개인적인 집안 사정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제 인생을 포기할 수 없어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한편으론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정책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마라톤 대회 때문에 일본에 자주 가는데, 일본은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인들을 위해서 복지정책을 꾸립니다. 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아주 유용하고 안성맞춤이어서 불편함이 없죠. 우리나라는 장애인과 노인이 따로 놉니다. 노인들이 편하면 장애인들도 편하다는 것을 모르지요. 장애인이나 노인이나 기본적인 복지정책의 마인드는 같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도 휠체어를 타게 되거나 노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