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을 내지 못한 한 가정에서 촛불을 켜놓고 생활하다 불이 나 잠자던 여중생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장애인 부부는 전기요금 체납으로 단전된 후, 촛불로 어둠을 밝히며 생활하다 참변을 당하기도 했다. 어떤 가정에서는 카드빚을 갚지 못하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들과 동반자살을 하기도 했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자식을 고층아파트에서 던져 죽이고 자신도 떨어져 죽는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빈곤으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카드빚이나 채무 독촉을 피해 이산가족이 되기도 하며, 마지막 남은 재산이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위장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빈곤과 채무, 가정불화까지 겹쳐 수많은 실업자가 날마다 거리를 방황하며 구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기 힘든 여성들은 술집이나 노래방의 도우미가 되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성매매의 강을 건너기도 하고, 부양가족과 함께 모자 노숙자로 전락하는 일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어떤가. 부모의 빈곤과 실직, 가정해체를 이유로 요보호대상이 됐다. 빈곤층 아동들은 사교육의 열풍에 휘말려 학업마저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탈빈곤의 수단인 교육에서 소외됨으로써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악순환을 이어가고 있다. 또 수많은 사춘기 학생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한참 꿈을 키워나갈 나이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잠을 청하며 비정한 현실을 깨우치고 있다.
IMF.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를 넘기면서 심각한 빈곤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당시 정부는 근시안적인 극약처방을 내놓고 이를 해결하려고 하다 막대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말았다. 내수를 늘리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한도 규제도 풀어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됐다. 이로부터 한국경제는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내수가 위축되는 기이한 현상이 되풀이되며 경제회복을 가로막았고,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해져 양극화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갔다.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를 만나 양극화 현상과 빈곤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눠 보았다. 그는 한국도시연구소의 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나와 만난 뒤 정확히 13년 지나 문재인 정부 때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조명래 교수는 극으로 치닫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복지세력의 혁명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예전 빈곤층은 가난했으나 미래에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살았다. 그러나 요즘 빈곤층에게는 희망이 없다. 잘 살 수 있다는 기대조차 상실하고 자포자기한 상태다.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확산에서 비롯한 것이다. 빈곤층은 과거에 도시 외곽이나 비닐하우스촌, 제조업이 밀집한 공단, 지하셋방이나 무허가 주택이 모여있는 동내에 살았지만 지금은 어느 지역에 빈민층이 모여 산다고 규정짓기는 힘들다. 재개발로 달동네의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고 취약지역에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현재 빈곤층은 점적으로 산재해 있는 상태다. 강남 타워팰리스 뒤 구룡지역 같은 경우는 남아 있기도 하지만."
빈곤층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가 심화돼서 그렇다. 구체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우선 신빈곤층의 확산은 고용 불안정이 주된 원인이다. 노인과 노동력을 상실한 노동자, 청년실업자 등 한계 노동자의 증가다. 또한 무절제소비형빈곤이 있다. 이는 신용카드나 채무관계로 빈곤해진 경우로서 소득이 있지만 과도한 지출이 부른 것이다. 신빈곤층의 절반은 유동형 빈곤층이다. 빈곤층의 50%가 유동적으로 빈곤층에 합류했다가 다시 그 위 계층으로 흡수된다. 가정해체형 빈곤인 소년소녀가장이나 Homeless(노숙자)도 있다.
빈민의 삶을 방관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가 그들을 학대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양극화 현상의 폭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시장의 경쟁논리로 지배되는 신자유주의의 확산 때문이다. 또한 빈곤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개인의 결점에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층의 문제를 단순하게 개인의 능력 부족, 노력 부족으로 돌린다. 교수사회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메커니즘이 따라 탈락하거나 재임용되며 연봉이 정해진다. 몸값을 상품화하는 것, 네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현상이다. 돈 버는 영역에서 보면 비정규직이 양극화의 출발점이다. 직종별 근로자 비중을 보면 IMF 때 전문직, 관리직 등에 종사하는 직업군의 수가 약간 줄었다가 지금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상근직화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파트타임, 서비스직, 판매직 같은 저임금 직종이 늘어나고 있다. 돈 쓰는 영역에서 보면 일상에서 쓰는 지출의 차이는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심하지 않다. 1 : 3~4 정도로 지출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소비재일수록 차이가 난다. 자동차, 여행, 문화활동, 고급가구 등의 측면에서 보면 1 : 300 정도가 된다. 또한 자산의 총규모를 보면 더욱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소득이 가장 적은 지역과 강남의 평균 소득 차이는 1 : 1.1 정도로 강남이 조금 높다. 그러나 금융자산은 1 : 4 정도가 된다. 분배가 제대로 안되니까 그렇다.
일반 국민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일반 서민들의 경우도 똑같다. 모두 맹목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해 투기꾼이 되고 있으며 참여정부의 정책에 저항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빈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혁명이다. 진정한 복지 실현은 복지 세력의 혁명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 개혁 세력이 보수세력과 맞서야 한다. 그것에서 정치적인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주류, 보수세력의 저항이 심할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정을 베풀어 주는 것에 대해 제도, 문화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은 정치세력과 싸워서 쟁취했다. 현재 한국은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부자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빈곤층에 대한 공적 시스템이나 분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계층 격차가 심하다. 주류문화에서 벗어난 이민자, 여성, 노숙자 등 New Under Class(신하층 계층)의 증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평균 연봉이 다른 지역의 8배에 이른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 빈곤계층에 대한 삶의 질에 대해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적구조를 늘려야 하며 한계 노동자에 대한 복지체계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부분을 늘린다고 총체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다. Community Welfare(공동체적인 복지)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답은 혁명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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