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아워 플레이스(Our Places). 산뜻한 캐주얼 차림의 배우 홍석천 씨가 손님에게 낼 커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그래서일까? 그가 찻잔을 옮기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손님을 맞는 일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탓이리라. 아니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 처음 맡게 되는 어떤 배역이라도 풍부한 감성으로 풀어낼 수 있는 예능인으로서의 끼에서 우러난 것일 테다. 그러니, 그가 어떤 동작, 표정을 취한다 해도, 단박 드라마의 한 장면과 겹쳐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홍석천 씨가 쉴 때였다. 아니, 커밍아웃하고 외면당할 때였다. 그때 그의 나이 35세, 그를 처음 만난 지 벌써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야속하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 옷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깔끔한 액세서리, 영화 '왕과 나'에서 여배우 데보라 카가와 열연한 율브리너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분위기는 '그래서 그가 배우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하는 말솜씨가 탁월했다. 낯선 사람이 서로 만나 말문을 열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특유한 분위기에 빨려 들게 했다. 그가 성소수자라는 점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가 멋진 사내라는 말에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커밍아웃.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힘과 동시에 그는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겪었다. 그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외면당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며, 어느 완곡한 이성애자들에게는 한낱 놀림감 정도로 치부됐던 일도 겪었을 것이다. 그의 변화에서도 이런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공인이라는 신분의 배우 홍석천 씨에게는 동성애자라는 고백이 더욱 큰 상처가 됐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신은 정상인데, 너는 비정상이야'라고 말하는 사회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얼마나 그가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하물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도 이런 선입견이 먼저 생기니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지고 만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그와 직접 만나서 인사하고 얘기를 나눠보니 사람들의 우려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권에 대해 얘기할 때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입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인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깨달을 것입니다.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됩니다. 비장애인이었을 때 장애인이 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꿔나간다면 자신이 장애인이 됐을 때 편하게 살지 않을까요. 성소수자의 문제도 가족, 친구, 이웃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귓속이 먹먹했다. 그의 마음속에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가지를 친 상처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고서는 모든 일이 하찮고 단조로운 법이다. 뭔가를 얘기할 때도 '함께'보다는 '나'가 중요한 세상이 아닌가. 똑같은 이성과 감성을 지닌 사람을 비틀게 보고 알랑거리는 세상에 고해 본다. 우리 함께 나누며 살자고.
"연기자 홍석천보다는 동성애자,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로 커밍아웃한 배우로 규정짓는 언론이 가장 폭력적입니다. 이성애자 원빈, 이성애자 장동건,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언론의 폭력 때문에 저는 '사회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다시 환기되고 맙니다. 배우로서도 힘이 듭니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배역을 맡기 위해 다른 배우들보다 한참 뒤에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방송국에서도 인간 홍석천, 배우 홍석천이 아니라 먼저 동성애자 홍석천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랬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을 계속해서 화제로 올리며, 재탕 삼탕 우려먹는 것이 언론이었다. 그때그때 사회분위기에 맞춰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언론은 드라마 소개를 하더라도 배우 홍석천이라는 이름 대신 동성애자 홍석천을 사용했다.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라면 케케묵은 에피소드라도 끄집어내는 것이 언론의 정서였다. 그는 한 인간의 성향을 이슈로 만들어 왜곡하는 언론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웃는 모습 뒤에 큰 슬픔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슬픈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많죠. 커밍아웃한 후 누군가를 만나는 게 두렵고 부담스럽습니다. 동성애자라고 밝히기 전에는 사람들과 편하게 만나고 잘 지냈는데, 그게 편치 않아요. 사람들도 꺼리고"
자신의 품위나 사회적 관계에 따라 사람을 바꿔가며 만나는 것이 이 사회가 가진 진실한 모습일까. 저녁을 배불리 먹고 화장실에서 한판 배설해 버리면 그만인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일까. 사회적인 이해관계나 외형적인 잣대 없이 모두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는 세상이 그리운 날이다. 배우 홍석천 씨에게도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자연스럽게 인다.
연예인 사회에서는 술 한 잔 마셔도 온갖 소문이 떠돌아다닌다. 소소한 가십거리에서 재미를 찾거나,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에서 연예인들에 대한 풍문은 대화의 화젯거리로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 대고 그는 커밍아웃을 했다. 한편으로는 이 참혹한 세상에 왜 커밍아웃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일 텐데... 그렇다면 할 말이 없다. 단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를 원망하면 그만이니까. 갑자기 '속수무책'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맡긴 배역을 연기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것조차 못하면 능력이 부족한 것이니 연기를 그만둬야지요. 저는 멋지게 살고 싶습니다. 연기에서도, 일상의 생활에서도 '배우 홍석천은 멋지게 살고 있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는 '멋지게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하면서 활짝 웃었다. 인생 항로에 얽히고 얽힌 덧이 없다면 행복을 느끼기란 요원한 것인데, 그는 물질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는 사람과 달리, 삶에서 '멋지다'라는 하나의 상을 그리고 열심히 매진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비단, 그가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커밍아웃한 후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행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운명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평화로운 마음과 미소를 잃지 않듯이 수많은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원숙한 삶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었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동성애가 정상적인 성적 취향인 만큼 이를 변태적 성행위로 보는 것은 동성애자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여전히 동성애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반대론자들의 항의가 거세다. 판단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배우 홍석천 씨에게 동성애 홈페이지의 유해성에 따른 미디어 검열에 대해 물었다.
그는 '검열'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그동안 소수자로서 겪었던 아픔을 견딜 수 없었다는 듯 잔등과 어깨를 잠시 움츠렸다. 실제 그는 동성애자라고 발표하고 나서 배우 활동을 잠시 접었던 적이 있다. 그는 그때 천직으로 생각했던 연기를 사회의 편견에 의해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검열에 의해 말이다.
"동성애라고 하면 먼저 걱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 고쳐나갈 수 있는데, 그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앞서서 막고 있지요. 분명 동성애 홈페이지나 커뮤니티에 나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음란사이트로 치부하거나 충분한 대화 없이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더욱 나쁜 것입니다. 그럴수록 수면으로 꺼내놓고 고쳐나가자고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오버'해서 걱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는 미디어 검열에 대해 성소수자 스스로 자정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먼저 막아야 한다고 우려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또 다른 인권침해라는 것이다.
기실 포털사이트나 언론에서 동성애 정보를 검열하거나, 동성애 코드가 섞인 영화 장면에 가위를 들이대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영화를 보면 청소년들이 모두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동성애는 해괴망측하고 남사스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하나의 형식이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무작정 터부시 할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어깨 걸고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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