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박영희 장애여성 공감 대표 - 장애여성도 여자다

이동권 2022. 8. 7. 17:09

박영희 장애여성 공감 대표


박영희 장애여성 공감 대표의 눈은 맑았다. 장애여성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담겨 있어서일 것이다.  

박영희 대표는 사춘기를 겪고 장애여성으로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녀는 악의를 품거나 사람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자신을 낮추면서 작은 상처에도 공감하는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았고, 자신의 처지와 같은 장애여성의 인권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장애여성 '공감'에 대해 물었다.

"1995년에 여성 장애인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법적으로는 여성 장애인으로 되어 있는데, 장애 여성이라는 말은 공감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지요. 사회는 장애 여성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무성(無性)인 존재로 취급하고 있으며, 장애인은 쓸모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 공감은 장애를 가진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여성주의적 장애여성운동이지요. 사회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앨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안에는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애여성 공감은 1998년에 창립했습니다. 1999년에는 '공감'이라는 장애여성 전문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했지요. 부설시설로 장애여성 성폭력 전문상담소와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을 운영 중입니다.'숨'은 최초 장애여성 독립센터입니다. 장애 여성들이 독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비장애여성이 장애여성의 신변처리나 가사활동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의 도움을 받아 1인당 4,000원의 유료 봉사자들이 활동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박영희 대표는 늘 당당하게 맞섰다. 모든 일에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일이 없이 장애 여성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그녀는 현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로 활동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투쟁 중이다.

"사람들은 장애여성을 평생 소녀로 바라봅니다. 아이로 취급하고 성희롱도 많지요. 가정에서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언권이나 결정권도 주지 않습니다. 장애 여성은 결혼해도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많습니다. 한국에는 장애여성 가정폭력상담소가 없습니다. 성폭력 장애여성 피해자 쉼터도 3곳밖에 없고요. 일반 시설에서는 장애 여성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편의시설도 문제고, 피해자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죠. 보통 장애여성 성폭력은 정신지체자가 90%여서 자신이 성폭력을 당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주변에서 데려오지요…. 비장애인 중심으로, 남성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문제를 풀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박 대표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함께 추구하는 사람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장애인 중에서도 장애 남성과 장애여성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면에서 그녀의 깊은 사색은 다른 이들의 고민과는 차원이 달랐다.

"장애 여성의 가장 큰 어려움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편의시설 때문입니다. 동대문 운동장에 가면 4호선과 5호선을 갈아타는 곳에 고장이 잘 나는 리프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업혀라, 안아서 들고 가겠다'고 말합니다. 장애여성으로서 성적 수치심이 느껴집니다. 손을 들고 윙크하거나 어쩔 때는 웃기도 하죠. 나이가 사오십이 돼도 애로 취급하고 성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박영희 대표는 이 문제를 풀다 보니 자신이 까다롭고 못된 여자라고 소문이 났으며 관청과 싸울 때는 악역을 맡게 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1997년부터 장애여성과 함께 사는데, 주변 사람들의 보는 눈이 곱지 않습니다. 왜 나와서 사냐, 시설에 안 들어가냐, 뭘 먹고 사냐, 장애인인데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부업이나 해라 등등 말이 많죠. 어떤 때는 밤에 방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화장실 창문을 열어보기도 합니다. 정말 왜 그렇게 보는지 비장애인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경찰에 몇 차례 신고도 하고 그랬지요. 장애 여성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비장애인들의 폭력 때문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장애여성 공감은 독립하는 여성 장애인이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지지하고 지켜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자주 찾아갑니다. 처음에는 양손에 칼을 들고 밀림을 헤쳐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박영희 대표는 장애여성이라는 말을 모르는 분이 많다고 했다. 장애인으로 생각하지 여성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끔 모르는 사람들이 잘 살라며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용기 있게 이겨내라며 버럭 안아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성입니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수치스러움은 장애여성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 화장실을 보세요. 일반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돼 있는데, 왜 장애인 화장실에는 휠체어만 그려져 있잖아요. 장애여성 운동이 사회 속에서 반영됐으면 좋겠습니다. 조직력 있고 힘이 있는 운동이 성과를 가져가겠지만... 약한 장애 여성의 목소리도 사회 속에서 잘 전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다. 박영희 대표와 얘기를 나누면서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장애여성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을 알게 돼 놀랍도록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