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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복 대한택견협회 회장 - 태권도에서 택견으로 전향했어요

이동권 2022. 8. 8. 15:01

이용복 대한택견협회 회장


균형이 잡힌 얼굴에서 매우 맑게 빛나는 두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예에 능통한 사람은 눈이 살아 있는 법이니,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역시 이용복 대한택견협회 회장의 눈은 날카로운 예지가 흘렀고, 상대의 기를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평생을 무예에 전념한 그에게서 풍기는 이 느낌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는 실제로 그 쪽 업계에서 '큰 선생'으로 불린다.

흐느적거리는 택견의 기본자세는 매우 자연스럽다. 하늘을 날던 새가 먹이를 발견하고 우아한 날개를 접으면서 공격 지점에 돌격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며 정확하고 강하다. 또 막는 기술보다 공격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자유로운 신체의 리듬을 생명처럼 여기지만 상대를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따뜻함도 지녔다.

"택견의 견자는 개견(犬)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택견협회라고 하니까, 풍산개, 삽살개, 진돗개 등을 키우는 전통견 협회인지 압니다. 처음 택견협회를 설립했을 때 정보과 형사가 찾아와 왜 개가 없냐고 물었던 적도 있었지요. 태권도의 고형(古形)으로 생각하거나, '이크, 애크'하면서 손을 젓고 몸을 이상하게 흔들어대니, 전통춤으로 연구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이용복 회장은 처음 택견을 보급하면서 겪어야 했던 해프닝을 얘기하면서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켜오고 키워왔던 택견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자부심 어린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저는 태권도에서 택견으로 전향했습니다. 택견이 발전해서 태권도가 된 줄 알았으나, 전혀 다른 무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더군다나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사람이 없어 책임감을 느끼고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지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젊은 기자들이 택견을 신문에 실어주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현재 보급률로 따져보면 태권도가 1등, 검도가 2등, 합기도가 3등, 택견이 4등 정도지요."

택견에 관한 옛 문서를 보면 '수박'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지금의 택견을 뜻한다.

태종실록에는 '의흥부에서 군사를 뽑을 때, 수박희를 시켜 세 사람을 이긴 사람을 방패군으로 삼았다'고 실렸다. 세종실록에는 '향리나 관노들이 수박을 잘하는 자를 군사로 뽑아 쓴다는 말을 듣고 모여 서로 다투어 수박희를 하였다', 고려사에는 '수박 경기로 재물을 내기하는 자 곤장 1백이며 이를 금지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여산군에서 해마다 7월 15일에 가까운 전라, 충청 양도의 백성들이 한데 모여 수박으로 승부를 다투는 풍속이 전해 온다'고 기록됐다.

택견은 중요무형문화재 76호다. 1984년에는 대한택견협회를 결성하고 대중화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1998년 국민생활체육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대한택견협회는 대한체육회 가맹 문제로 단체명을 잠시 협회 대신 연맹으로 변경했으나 현재는 대한택견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용복 회장은 대한택견협회 회장에 이어 대한택견회에서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다. 이 회장은 택견이 씨름을 대신하는 국민 스포츠가 될 거라고 자신했는데, 참 아쉽다. 씨름마저 사람들의 관심에 멀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 택견은 한국의 저항의식과 용기를 없애기 위한 정책 때문에 금지되고 사라졌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일제의 잔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요. 친일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중학교 교과과정에서도 가라데, 유도, 검도 등을 가르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고요. 더욱 큰 문제는 그때 그 사람들이 유단자로 졸업하고 사회 각계의 지도층이 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완전히 뒷전에 물러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해방이 됐다 하더라도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제가 어려워 먹고살기 바빠서 일반 사람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지요."

그는 일제강점기의 우민화 정책과 전통문화 말살정책의 대상에 택견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발굴과 친일청산 없이 서양문물과 자본이 무분별하게 침투해 우리 것에 대한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일제는 '택견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라는 명분으로 택견판을 열지 못하게 했다. 민족의 정기를 끊어 놓겠다는 속셈이었다. 조선시대 마지막 택견군으로 알려진 송덕기는 18세 때 당시 유명한 택견 스승으로 알려진 임호 선생에게 지도를 받고 널리 알려졌으나, 일제강점기 때 순사들의 협박에 못 이겨 그만두게 됐다고 전해진다.

태권도 9단인 이용복 회장은 택견을 시작할 당시 송덕기 옹을 직접 찾아가서 택견을 배웠다. 상처를 주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택견의 기술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라고 무릎을 쳤다.

"택견은 맨손으로 하는 전통무술입니다. 도구 없이 순수하게 맨몸으로 하는 운동이지요. 맨몸 무술의 본질은 상생, 공영, 호혜입니다.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분발하고 노력하라는 자극과 충격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택견은 한쪽에게 치우침 없이 서로 번영하고 나눠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았다. 서로 겨루면서도 정신적인 교양을 주고받는 평등의 원칙이 숨어있으며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협력하면서 정을 나누려 했던 우리 민족의 '두레'나 '품앗이'의 정신과도 닮았다.

 

이용복 대한택견협회 회장


택견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는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민족의 얼과 지혜를 배우고, 신체 수련과 대인 격투를 통해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함께 강인한 정신력도 키울 수 있는 운동이다.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있다거나 허약한 체질과 나약한 정신으로 고민하는 현대인에게는 그만인 듯싶다. 이용복 회장에게 택견의 대중화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의와 그 실체는 무엇인지 물었다.

"택견은 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운동입니다. 에너지 소비량도 많아 비만에 좋고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으로 갖가지 병적인 증세들도 말끔하게 해소되지요. 택견은 맨손으로 하는 전통무술로 도구 없이 순수하게 맨몸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태권도처럼 차고, 씨름처럼 잡고 넘기기도 하며 유도와 합기도 등의 기술도 포함된 종합무예입니다. 신체를 부드럽게 꼬아주고 비트는 호흡을 하면 기가 모였다가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적인 수양을 통해 단전에 기를 모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심신을 움직이면서 단전에 기를 모으는 것으로, 이 기분을 느끼면 깊이 매료되고 말지요. 택견만의 독특한 호흡과 기합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만드는 훌륭한 건강법입니다."

그랬다. 택견이 대중화에 성공한 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전통무예'라기보다는 택견만의 특별한 매력 때문이었다. 또한 이용복 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도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우리 것에 대해 호감이 많습니다. 그러나 택견의 대중화가 용이했던 이유는 성별, 연령, 시설, 장비에 관계없이 손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택견은 한 사람이 회비를 내면 직계가족 모두 무료로 하고 있으며, 전수관은 통합경영개념으로 운영하고 있어 회원이 되면 전국의 모든 전수관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수관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내보자는 취지입니다. 이 방법은 연령층 확장을 통해 택견 인구를 늘리는 효과를 냈습니다. 택견을 가르치는 지도자들도 협회에서 직접 관리하고 전수함으로써, 일정한 자격이 있는 지도자가 직접 회원들에게 무예를 전수해 신뢰도가 큽니다."

그는 IMF 외환 위기 때,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려운 시기라고 하지만 택견은 예외였다고 했다. 실직자 무료 강습, 가족회원 제도 등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국난의 시절에 국민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택견은 세계의 어느 무예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 민족의 무예임이 분명하다.

"지도자나 선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택견은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겠지만, 인기 있는 직종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택견은 여성들에게도 매우 좋은 운동입니다. 여성 호신술 강습 때문에 비디오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책하고 같이 나가면 좋겠다고 해서 호신술 책 '위험할 때 호루라기 세 번’을 낸 적이 있습니다. 실전을 바탕으로 만들었지요. 실제로 여성분이 강도를 만나면 쉽게 저항하지 못합니다. 밀어라, 비틀어라, 낭심을 차라고 하지만 강도들이 쉽게 제압되는 경우는 없거든요. 연약한 여성은 손만 잡아도 기절할 것입니다. 무서워서 도망도 못 가고요. 택견을 배운다는 것은 담을 키우는 것입니다. 소리를 크게 질러 상대방의 기를 꺾고 도망칠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것입니다. 허리를 흔들고 무릎 굴신력이 좋아져 비만에도 그만입니다. 택견은 여성스러운 운동이라서 초기단계에는 여성이 배우기 쉽고 진도가 빠릅니다. 무척 부드럽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면 남성들이 훨씬 잘하고 기술도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