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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 -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 신상옥 감독 1959년작

이동권 2022. 7. 30. 14:35

외무부 계단에서 영숙을 잡는 성희 ⓒ한국영상자료원


낳은 정이 클까, 기른 정이 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른 정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속담에도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라는 말이 있다. 낳는 것보다 기르는 것이 힘들고, 더욱 많은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에서도 아들은 낳아 준 엄마보다 매일 안아주고 키워 준 엄마의 품이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의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국적을 불문하고 다뤄지는 영화의 주제다. ‘출생의 비밀’ 또한 TV 드라마의 흥행요소 중 하나다. 드라마 같은 일은 현실에서도 가끔씩 일어난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뀌거나 재산 때문에 친자와 양자가 해괴망측한 법정 싸움을 벌인다. 얼마 전에는 기른 아들을 마치 친아들처럼 말하고 다닌다며 친부가 배우 차승원에게 소송을 거는 일도 있었다.

입양된 아이들이 사랑을 다해 키워준 양부모를 떠나 친부모를 찾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머리털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옛말도 그래서 나왔겠다. 인간이라는 짐승은 아무리 잘해주고 보살펴 줘도 은혜를 모른다는 얘기다. 부모들도 똑같다. 기른 자식이 아무리 효도를 해도 낳은 자식을 가슴에 더 품는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낳은 정은 기른 정보다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가족을 형성해주는 것은 단순히 핏줄이 아니라 사랑이다. 똥오줌 받아내며 마른자리에 눕히고, 아플 때는 뜬 눈으로 밤새며 간호하고, 언제나 훌륭하게 배우고 자라도록 기도하면서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와 교감, 추억을 단순히 피와 비교할 수 없다. 옛말에 ‘핏줄이 당긴다’, ‘물보다 진한 게 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피보다 진한 건 사랑이다. 아이를 낳은 산모들이 처음엔 자기 몸이 힘들고 아파서 자식보다 자신을 더 걱정하지만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내 새끼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영화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는 충분히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총으로 사람을 쏘는 설정은 다소 당황스럽지만, 충격적인 치정 스릴러로 위장한 반전 결말은 지금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핏줄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울러 이 영화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한국인들의 세계관도 보여준다. 부모는 아이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고, 재능과 능력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 그 의미가 크다. 이 영화에서 부모는 자식의 안위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바쁘다.

 

영숙(최은희)의 고민을 들어주는 성희(주증녀) ⓒ한국영상자료원
성희에게 달려가는 아들을 본 영숙 ⓒ한국영상자료원


주불공사 백상호의 부인 성희와 영숙이 외무부 계단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성희가 영숙을 총으로 쏜다. 이 사건은 치정 관계로 신문에 보도된다. 검사는 성희가 남편의 이중생활 때문에 영숙을 죽이려 한 것으로 오해하자 성희는 지난 일을 털어놓는다. 영숙은 건달과 사귀다 임신하고 수양언니인 성희에게 낙태 문제를 상의한다. 아이를 갖지 못해 고민이 많던 성희는 평생의 비밀로 하기로 하고, 영숙의 아이를 키운다. 성희는 남편이 외국으로 출장을 가자 영숙의 아이를 데려와 친아들처럼 키운다. 몇 년 후 영숙은 남편이 백만 원을 달라고 조르자 성희에게 부탁하고, 성희는 자신의 예물을 팔아 돈을 마련해주려고 한다. 이 일로 다시 성희와 영숙은 가까워지고, 영숙은 성희의 집에서 친아들을 보게 된다. 영숙은 마음이 바뀐다. 다 필요 없으니 아들을 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성희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영숙은 성희의 남편 백상호에게 모두 일러바치겠다고 외무부를 찾는다. 그때 성희가 영숙을 총으로 쏜다. 영숙은 검사에게 성희를 용서해달라고 하고, 풀려난 성희는 영숙에게 아들을 데려가라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낳아 준 엄마 대신 길러 준 엄마에게 안겨 운다. 영숙은 이 모습을 보고 그냥 떠난다.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는 기나 카우스의 소설 <아름다운 싸움>이 원작이다.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을 낳은 정과 기른 정을 주제로 얘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남성의 역할은 지극히 축소된다. 범행 동기를 밝히는 추리 형식을 취하지만 검사, 형사, 남편, 애인 등 여성을 둘러싼 주변 남성들의 모든 추측은 어긋난다.

이 영화에서는 당시 최고 여배우인 최은희, 주증녀의 연기대결이 볼만하다. 또 1950년대를 대표하는 미남배추 노능걸, 이민과 성격파 배우 전택이, 박경주, 주선태의 열연과 이후 유명한 감독이 된 장일호가 배우로 출연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