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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 돈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빚은 비극, 김소동 감독 1958년작

이동권 2022. 7. 30. 14:25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절망하는 봉수 ⓒ한국영상자료원


돈을 쓰지 않고 모으는 것에만 급급한 사람들은 인간을 사랑할 줄 모른다. 사람보다 돈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돈이 귀중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돈은 타인을 위해 써야 더욱 가치가 있다. 예술가들이 예나 지금이나 구두쇠나 수전노를 인색한 추물로 표현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면 세상은 디스토피아가 된다.

영화 <돈>은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그려낸다. 어렵고 힘든 현실을 핑계 삼아 헛된 탐욕에 사로잡히면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된다고 일러준다. 돈은 소금물과 같다. 짠물을 마시면 계속 갈증이 나듯이 돈에 대한 욕망은 집착으로 이어지고, 인간의 순수한 마음까지 송두리째 잡아먹어버린다. 돈에 대한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악의 근원은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한 인간의 애착일지도 모르겠다.

<돈>은 한국전쟁 후 참담했던 농촌의 현실을 보여준다. 1950년대는 풍년이 들어도 근근이 입에 풀칠할 정도로 농촌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빚도 많은 데다 수확한 곡식을 지주에게 대부분 내줘서다. 특히 가난한 농민은 춘궁기가 되면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춘궁기’는 가을걷이로 수확한 쌀이 동나고 보리를 수확하기 전까지 곳간이 텅텅 빌 때로, 흔히들 ‘보릿고개’라고도 한다. 보릿고개는 배고픔의 고통이 태산의 고개만큼 넘기 힘들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보릿고개가 되면 농민은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었다. 소나무 속껍질을 빻아 물에 담그면 하얀 섬유질이 나왔다. 이 섬유질은 배고픔의 고통은 없애줬지만 소화가 되지 않아 대장에서 말라붙었고, 대변이 밤알처럼 단단하게 굳어 항문으로 나오지 못했으며, 똥을 눌 때마다 항문을 찢어지게 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가난 중에서도 최고의 가난을 표현할 때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다’는 말을 쓴다. 구황 식물 중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식량은 상대적으로 배변이 용이했던 칡뿌리 녹말이었다.

보릿고개가 구조적으로 정착된 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10년대였다. 일제는 토지를 수탈하고 소작농의 토지경작권마저 빼앗아 계급구조를 지주와 소작농으로 양극화시켰고, 우리 농촌을 식량기지화했다. 보릿고개의 고통은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최고조에 달했다. 1945년 광복은 농민의 고통을 해방시켜주는 계기가 됐지만 남북 분단과 정치사회의 혼란은 보릿고개를 1960년대 초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1950년대 당시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농민은 지주의 배를 불리며 죽도록 일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계속되는 가난의 악순환에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반면 지주들은 소작농들을 괴롭히며 ‘갑질’을 했고, 지주들의 곳간은 일하지 않아도 계속 늘었다. 하지만 지주들은 곡식을 가난한 농민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돈으로 돈을 불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됐고, 편법으로 세금조차 내지 않고 부를 대물림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전혀 존경할 만한 것이 없는 현재 우리 시대의 부자들이다.

 

노름을 하는 봉수 ⓒ한국영상자료원
영호와 옥경 ⓒ한국영상자료원


봉수는 순박하고 바보스러운 농사꾼이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딸 순이의 혼인도 미루고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마을로 돌아온 아들 영호는 억조 집에서 장사를 돕고 있는 옥경을 사랑한다. 봉수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경한다. 하지만 고리대금업자 억조의 꾐에 넘어가 전 재산을 날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억조는 잠들어 있는 옥경을 겁탈하려다 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 와중에 봉수는 ‘돈, 돈, 돈’을 외치며 억조가 바닥에 흘린 돈을 줍다 억조와 만나 싸우게 되고, 얼떨결에 그를 죽이고 도망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옥경은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 영호에게 일부를 주고 서울에서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옥경은 살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에 붙들려가고, 경찰은 옥경과 영호를 억조의 살인범을 지목하고, 이들을 기차에 태워 본서로 압송한다. 봉수는 그 기차를 쫓아가면서 “억조가 죽은 건 너 때문도 나 때문도 아니고 돈 때문이다. 나를 잡아가시오”라고 외친다. 하지만 기차는 봉수에게 끝끝내 절망을 안겨주며 속절없이 떠나간다. 그 시절 농촌의 암담함과 절망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영화 <돈>은 당대 농촌의 참혹한 실상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당시 대부분 영화들은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와 맹목적인 해피엔딩으로 일관됐지만 이 영화는 척박하고 절망적인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낸다. 그래서 당시 일부 평론가들은 이태리 네오리얼리즘과 이 영화를 비교하기도 했다. 네오리얼리즘은 파시스트 정권의 예술적인 억압에 대항해 형성된 영화 운동으로, 현실의 왜곡을 비판하면서 대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이 영화는 제2회 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