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비극일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왜소해진다. 더 예쁘고, 더 잘나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이간질시켜 사랑하는 사람을 독차지하려고도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사랑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동이 아니다. 싸워서 얻어내는 사랑도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이 계속될 것 같아 사랑을 더욱 갈망하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을 진심으로 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용기와 의지가 뒷받침돼야 유지된다. 사랑은 오롯이 이타적인 마음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인연이 되지 않더라도, 사랑의 감정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고, 그리워지는 것 자체가 굉장히 기쁘고 상대방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또 사람이 마치 물건인 것처럼 소유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짝사랑하는 사람과 우정을 영원히 나눌 수 있다. 우정은 사랑이나 지성이 주지 못한 다른 차원의 행복을 선사한다. 그런 대상을 괴롭게 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쉽게도 짝사랑을 불행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게 한다. 영화 <화심>이 던지는 메시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메시지를 풀어내는 방식은 여지없이 신파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삼각관계로 남녀의 갈등을 그리는 멜로드라마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이 영화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쟁취하려는 여인과 사랑에 연연하지 않고 숙명을 따르는 여인이 대조되면서 사랑의 참 의미를 알려준다. 두 사람 중 마지막에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는 이는 물론 후자다.
인간은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투쟁해야 할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래서 한순간이라도 운명론자나 허무주의자, 패배주의자가 돼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살다 보면 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마법이 아니고서야 바람의 방향을 어느 누가 바꿀 수 있겠나.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은 순리대로 푸는 것이 가장 좋겠다.
홀로 어렵게 자란 금희는 금숙과 함께 살고 있다. 금숙은 상필을 좋아하지만, 상필은 금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금숙의 이간질로 상필은 금희 대신 금숙과 결혼한다. 하지만 금숙과 상필의 결혼생활은 원만치 않다. 금숙의 오빠 영재는 주화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영재는 어머니 병간호로 생활이 막막해진 주화가 회사 전무와 만난 것을 알고 그녀를 버린다. 그리고 주화는 영재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소문나 회사에서 쫓겨난 뒤 기생이 된다. 버림받은 금희와 주화는 함께 살게 되지만 주화가 병석에 눕자 금희도 기생이 된다. 그러나 금희는 폐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상필은 그녀를 보러 온다. 금희는 상필에게 사랑했었다고 고백하며 죽고, 금숙은 금희를 보면서 참회한다. 주화는 다시 영재와 만나 화해한다.
이 영화에서 금숙의 방에 걸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윌리엄 홀덴의 사진이 시선을 끈다. 수영복을 입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뽐내는 금숙의 모습도 꽤 인상 깊다. 1950년대 할리우드 글래머 배우들은 팜므파탈 스타일로 세기의 유행을 선도했다. 당시 한국 영화의 멜로물에서도 늘씬한 신체와 풍만한 몸매, 마치 남성을 잡아먹을 듯한 요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많았다. 수입된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여배우들의 영향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195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의 흥행으로 전 세계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여 들였다. 할리우드의 성공은 고전적인 영화의 의미가 산업으로 이전되는 중요한 변화였고, 이러한 현상은 이후 40년 동안 가속화돼 지금에 이르렀다.
<화심>은 요즘 얘기하는 킬링타임용 영화다. 이 영화의 의미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영화에 미친 여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단지 영화의 일부분이 훼손돼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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