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초창기 한국영화30선

모정 -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은혜, 양주남 감독 1958년작

이동권 2022. 7. 30. 14:23

아들 신호와 이별하는 엄마 ⓒ한국영상자료원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동시에 여러 여자와 부부관계를 맺는 일부다처제가 있었다.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으나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일부다처제는 남자가 밖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고, 많은 자손을 거느려 가문의 세와 노동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로 이용됐다.

우리나라의 일부다처제는 서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과는 성격이 달랐다.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여성들은 자신과 자식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재력 있는 남편을 합법적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자가 직접 부인 선택했다. 후사가 없을 경우에는 첩을 들여 자식을 낳게 하거나 친인척의 자식을 양자로 삼아 제사를 지내게 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은 정실 혹은 조강지처로 불렸지만 두 번째 부인부터는 ‘첩’이 돼 아내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고, 자식들도 적서의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관습은 구한말을 거쳐 1950년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부부 불화의 원인이 됐다. 남편이 첩을 보면 아무리 무던하고 착한 부인도 배신감이 들기 마련이다. 또 돈으로 첩을 얻는 경우가 많아 가세가 기울기도 했고, 첩의 자식을 대신 키워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당시 여성들은 이혼을 하지 못했다. 이혼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따가웠고, 자식들 걱정 때문에 꾹 참으며 살았다.

영화 <모정>은 한국전쟁 당시 남편의 외도로 생긴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남편의 실수 혹은 잘못으로 생긴 아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슬픈 마음도 살피지만 반대로 어머니의 마음이라면 모두 거둬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다소 가부장적인 교훈을 설파한다.

<모정>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얘기하면서 자식의 효를 강조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열 명 낳아도 훌륭하게 키운다. 하지만 열 명의 자식은 한 어머니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다. 또 용돈만 주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자식들도 많다. 아니다. 어머니가 늙으면 멀리 떨어지지 말고 곁을 지켜야 하며, 마음으로 공경해야 한다. 공자는 효를 백행의 근본이자 교화의 근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인간의 첫 번째 도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가까이하지 말라는 의미다.

왕의 아내든, 농부의 아내든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며 정성껏 키웠고, 사랑으로 보살폈다. 그렇다면 우리도 노년이 된 어머니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모정>의 첫 장면은 슬픈 바이올린 음색과 기찻길로, 아들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눈물과 노래로 결말을 암시한다. 노랫말은 애통하다. ‘철로길 서러운 길 어머니 이별한 길. 아버지 찾아가라 한 마디 남기시고. 돌아서 손 흔들며 눈물 어리신 어머니 모습을 꿈엔들 잊으리오.’

 

신호에게 인형을 사다 준 혜옥, 아역 배우는 안성기 ⓒ한국영상자료원
신호를 구하고 죽은 엄마 ⓒ한국영상자료원


혜옥은 의사인 남편 학수와 함께 단란하게 산다. 하지만 후사가 없어 고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아들이라는 신호가 집에 들어온다. 신호는 7년 전 한국전쟁 당시에 하룻밤을 보낸 계순의 아이였다. 계순은 아무도 몰래 아이를 키워왔지만 키울 사정이 되지 않자 신호를 학수에게로 보냈다. 남편이 출장 간 동안 배신감에 치를 떨지만 신호를 보면서 모성애를 느끼고 사랑으로 키운다. 집에 돌아온 학수는 혜옥에게 용서를 빈다. 신호는 날마다 기찻길에 나가 엄마를 기다린다. 하지만 어머니를 찾기 위해 기차를 쫓아가다 기찻길에서 넘어지고, 엄마는 신호를 구한 뒤 죽음을 맞는다. 신호를 찾아 밖에 나온 혜옥과 학수는 엄마의 시신 옆에서 울고 있는 신호를 발견하고, 혜옥은 신호를 꼭 안아준다.

<모정>은 1950년대 신파 영화의 다작현상 속에서 만들어진 멜로물이다. 이 영화에는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어린 안성기가 출연한다. 안성기는 1957년 다섯 살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데뷔했으며, 이듬해에 이 영화에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십 대의 반항>(1959), <하녀>(1960), <돼지꿈>(1961), <얄개전>(1965)에 출연했고, 영화 <십 대의 반항>으로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서 아역 연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