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이념 문제 아닌, 다시 망각 없는 윤석열의 ‘친일’

이동권 2024. 9. 11. 16:26

 

망각 없는 삶은 없다. 수많은 허세와 실패, 가식과 증오, 오만과 질투, 실수와 과실도 신의 은총처럼 시간이 흐르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매번 사소한 과오와 허물이 머릿속에서 되새김질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겠는가. 두통, 불면, 귀울림, 어지럼증, 과민, 손떨림증. 아마도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을 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고난과 시련이 장시간 계속되거나 똑같은 기억이 반복되면 머릿속에 각인되고 만다.

박근혜 정부 때는 ‘유신’이 그랬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 선포로 한국의 헌정이 중단되면서 1979년 10월 26일까지 유신시대가 이어졌다. 유신시대는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였다. 도덕과 이성은 마비됐고, 세상은 혼란했다. 한편에서는 유신을 경제발전의 화신으로 기억하지만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은 민주인사들의 항거와 민중의 저항이 빗발쳤던 시대였다.

문화 또한 쇠퇴했다. 유신 군사문화와 천박한 대중문화, 소일본화가 극에 달했다. 어린이들이 보는 TV만화영화조차 일본작품만 반영될 정도로 ‘일본색’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의 문화예술은 ‘유신’으로 회귀했다. 문예지 『현대문학 은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몽테뉴 수준의 작품이라고 추켜세우는가 하면 원로작가 이제하의 소설이 유신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연재를 거부했다. 한국시인협회는 근대 인물 112명을 다룬 시집 사람 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했고, 주요 언론들은 방미 중 몇 번이나 한복을 갈아입는 박 대통령의 쇼를 ‘한복 입고 문화홍보대사’라고 추어올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박정희기념관은 비판 없는 치적으로 둘러싸였으며, 역사교과서는 왜곡과 날조로 누더기가 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는 ‘유신’ 대신 ‘친일’이 각인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친일 행적으로 일관했다. 백선엽의 친일행위 문구 삭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시도했다. 광복절 기념사에서는 친일 과거사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진실화해위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독립기념관장에 친일 뉴라이트 인사들을 임명했다. 외교는 종일굴종으로 일관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일본의 편을 들어 적극 용인했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판결은 제삼자 변제로 무마했으며,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는 강제징용 표현 삭제에 동의했다. 일본의 터무니없는 독도 영유권 주장에 심심한 항의조차 하지 않고 독도해역에 자위대 진입을 허용했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행보는 보수 우파와 결이 다르다. 전통 보수 진영은 우파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친일에 관대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 전두환마저도 모두 친일에 날을 세우며 경제적 실리를 취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친일을 용인하고 있다. 일본에 머리를 숙이고 식민사관 인사를 등용하면서 친일을 종용하는 듯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친일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 역사적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위협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화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역사적 교훈과 가치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여태까지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옥죄어 온 친일 문제를 청산해서 진정한 화해를 이뤄나가자는 의미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정말 노골적인 역사부정과 사대매국은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