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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 다르게 생각할 권리, 누구를 위한 표현의 자유인가

이동권 2022. 7. 29. 16:35

의견이 분분하다. ‘표현의 자유는 무한대로 적용해야 한다’와 ‘반사회적인 표현의 자유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로 나뉘어 옥신각신이다.

 

최근 ‘표현의 자유’ 문제로 가장 이슈가 된 곳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이 커뮤니티에는 뒤숭숭한 이야기 천지다. 노골적인 전라도 혐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무시, 군사독재정권 찬양, 민주화운동에 대한 모멸 등 끝이 없다. 홍어 택배. 입맛 당기는 흑산도산 홍어가 배달 왔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베 한 회원은 ‘2009년 8월 20일 김대중 전 대통령 입관식에서 이희호 여사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사진’을 올려놓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홍어’로, 관을 ‘택배’로 묘사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된 광주시민들을 두고는 ‘홍어 말리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일베는 현역 정치인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을 성적으로 조롱하고 원색적으로 비꼰 ‘지롱갑 문재인 안철수 합방’ 게시물이 대표적이다.

 

일베는 사이트 운영 방식도 범상치 않다. 일베 회원들의 글은 추천을 많이 받은 순위에 따라 매인 페이지에 진열된다. 추천 방식은 보통 ‘찬성-반대’, ‘호감-비호감’, ‘추천-비추천’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일베는 ‘일베로-민주화’를 쓴다. 민주화란 반대, 비호감, 비추천과 같은 의미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베 회원들이 여러 개인과 단체에 소송을 당하고, 법학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일베를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아이러니하게도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그들이 싫어하는 민주화의 핵심이니 어딘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공익 저해하는 표현의 자유는 규제

 

겉으로만 보면 일베 회원들이 누구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진실을 거부하고 업신여기는 것을 보면 ‘청개구리’ 같고, 약자를 짓밟고 조롱하는 것을 보면 ‘순악질’ 같다. 또 자신을 스스로 일베충이라고 비하하는 것을 보면 ‘얼뜨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베 게시물이 도를 벗어난 것은 분명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올해 9월까지 신고된 828건 중 무려 779건을 삭제했다. 그럼에도 일베를 인정하자는 분위기가 있다. 그 이유 역시 표현의 자유다. 정치인에 대한 일베의 비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로, 박근혜 대통령을 닭으로 표현한 것처럼 표현의 자유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 그러나 표현이 아니라 차별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주민 변호사는 “우려스러운 것은 여성 비하, 지역 차별, 장애 희화화, 역사적 비극 혹은 죽은 자를 가볍게 보는 것이다. 일베도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표현이 아니라 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하지만 공익을 저해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면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베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음란물도 난무한다. 근친상간부터 성매매, 수간, 강간까지 반인륜적 범죄의 글들이 올라온다. 일베만 보면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후퇴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음란물에 대해서는 논란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누구도 인터넷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수간, 강간을 묘사한 콘텐츠가 음란하다면 음란물로 규제하면 된다. 그것은 일베만의 문제가 아니며 논란이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경찰 등이 음란물에 해당하는 것은 삭제 차단하거나 음란물을 다수 배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처벌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죄의 글’을 범죄시하고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성매매를 묘사한다고 해서 수간, 강간을 묘사한다고 해서 죄를 실제로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강간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강간 장면이 묘사되어야 한다. 어떤 범죄 행위를 묘사하는 글이라고 해서 그 글을 범죄시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거부되며 그것이 표현의 자유의 핵심이다. 즉 표현은 물리적 해악을 일으킬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을 때만 그 위험을 이유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부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후퇴했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와 정치권력, 정책에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면 법과 제도를 동원해 무리하게 처벌해왔던 까닭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인 글을 쓴 미네르바 긴급체포,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린 MBC 제작진 징역 구형,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수사와 관련한 칼럼을 쓴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기소, 불법사찰 문제를 제기한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 등 개인뿐만 아니라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도 비껴갈 수 없었다.

 

 

정치적 표현은 표현의 자유 핵심

 

근본적으로 보면 개별 법률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이유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정부 당국의 보복, 괘씸죄의 성격도 있다. 일베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억압이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 시작된 커뮤니티다. 하지만 일베는 정치 비판과 관련한 게시물에 대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보수적 발언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카키 마사오로 지칭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을 수첩 없이 말 못하는 수첩공주라고 쓴 누리꾼들은 고소를 당했다.

 

그럼에도 박경신 교수는 “정치적 표현은 표현의 자유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베가 욕설과 무지로 넘친다고 해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인정돼야 한다는 말이다.

 

박주민 변호사도 “기본적으로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 고위직에 대해서는 국민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비판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국가 기능을 떨어뜨리는 우려는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가용할 자원이 많다. 공식적인 브리핑, 방송을 이용하면 된다. 형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제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정부는 비판을 못 하게 한다. 반응이 너무 민감하고, 비판을 하면 적으로 간주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비판이 자유로워야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포털 사이트가 임의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문제다. 인터넷 정보 유통의 대부분을 포털이 장악한 상황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려의 목소리다. 박주민 변호사는 “포털 사이트 업체들은 명예훼손이 우려돼 게시물을 내린다. 내린 다음에 원 게시자가 ‘올려주세요’라고 하면 올려주고 책임은 원 게시자가 지명된다. 그런데 포털은 다시 올리지 않는다. 자기가 책임져야 하니까. 법에서 이 부분이 공백이다. 제도를 만들면 된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교수는 “포털 사이트 운영자는 자신이 제공하는 공간을 통해 표출되는 메시지를 통제할 기본권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털 또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 박 교수는 “포털이 이용자의 글을 지우면 그 이용자는 같은 글을 다른 포털에 올리면 된다. 그러면 포털 사이트 운영자의 표현의 자유와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가 조화를 이룬다. 문제는 여러 포털이 담합해 그런 선택권을 빼앗을 경우인데 그런 경우가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근간

 

일베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을 낳았다. 진보 진영은 과거부터 기득권에 대한 비판을 허용해달라는 표현의 자유를 얘기해왔다? 성향 탓에, 진보 진영이 일베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까닭이다. 이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표현의 자유를 담보하는 제도 또한 뒤따라야 할 때가 왔다는 방증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가까운 문제부터 제도를 마련하고 보완해나가자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첫째는, 실명제가 없어졌지만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는 남아 있다. 시정돼야 한다. 둘째는, 정치인 비판은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하는 경우를 없애든지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만 돼도 상당히 나아진다.”고 말했다. 박경신 교수도 “익명성 보장. 신원 정보도 프라이버시의 일부다. 실명제가 폐지되어야 하고 이제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많이들 하니 휴대폰도 익명으로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 신원 정보도 반드시 영장 등을 통해 취득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과 모욕죄 폐지, 허위사실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이를 유포한 경우에만 허위사실 유포죄 처벌, 공익적인 이유로 통신 비밀을 침해하거나 누설하는 경우에는 처벌 금지 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근간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고, 권력이 비판을 받아들여야만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그 대상이 포악한 글로 도배하는 일부 일베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박경신 교수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익명 표현은 인터넷이 갖는 정보 전달의 신속성, 상호성과 결합해 현실 공간에서의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구조를 극복하고 계층, 지위, 나이, 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해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게 한다.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익명 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헌법적 가치에 비추어 강하게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