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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 이주의 끝, 그들의 꿈과 삶

이동권 2022. 7. 29. 16:26

스스로 노동조건 선택하는 안정적인 체류권 보장돼 

 

지난 7월 15일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현장. 노동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중국동포는 3명. 며칠째 내린 폭우에도 공사가 강행돼 벌어진 인재다. 정확히 보름 뒤, 노량진 사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방화대교 연결도로 공사 현장에서 상판 일부가 붕괴했다. 현장에 있던 크레인이 다리 상판을 건드려 일어난 사고다. 사망자는 중국동포 2명. 다친 1명도 중국동포였다. 이 사고는 지난 5월 대불산업단지에서 벌어진 산업재해의 희생양을 떠올리게 했다. 조선소에서 갑자기 떨어진 10톤짜리 선박 구조물에 깔려 중국동포 1명이 사망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사고가 늘고 있다. 최저가 낙찰제와 하도급 구조에서 노동자의 임금과 안전관리비도 덩달아 줄었기 때문. 대기업의 위험 요인이 하도급 업체에 전가된 상황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발주 공사비 삭감과 저가 수주로 이주노동자, 그중에서도 말이 통하는 중국동포가 아니면 공사가 안 될 정도”라며 “당연히 안전 대책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들은 안전교육이나 안전설비 없이 현장에 바로 투입돼도 항의하지 못한다. 항의했다가는 해고를 면하기 힘들다. 노량진 수몰사고 당시 현장 관계자는 “위험해도 작업을 강행하는 사업장이 부지기수”라며 “그래도 항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작업장이 위험에 노출됐을 때는 작업을 중지하고 노동자를 대피시켜야 하며,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합리적인 근거를 대고 대피하면 이를 이유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운 중국동포에게는 다른 나라의 법이다. 산재 혜택도 그렇다. 국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고용주가 돈이 급한 중국동포의 약한 고리를 자극해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업 같은 경우 산재 처리 건수가 늘어나면 사업을 수주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중국동포와 합의해 무마하려고 한다.

 

중국동포는 합의할 때도 벙어리 냉가슴이다(가슴앓이다). 합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이를 빌미로 해고를 당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합의금을 받고 참아 넘기기 일쑤다. 불법체류자인 경우는 더욱 심하다. 현행법상 불법체류자도 법적으로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본국으로 쫓겨나야 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린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연구개발원 원장은 “건설현장은 ‘십장, 오야지’ 체계로 돼 있다. 원청 기업에서 하도급을 주면 하도급이 또 새끼를 친다. 밑에 조그만 업체로 일이 떨어져 나간다. 그런 업체는 대부분 부실하다. 어떤 업체는 악질적으로 임금체불을 하기 위해 바지 사장을 내세우고 중국동포들을 고용하고 임금을 떼먹는다. 정부에서는 계약서를 쓰고 일하라는데 현장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오야지가 외인부대처럼 10~20명을 이끌고 다니면서 일하는 업체다. 일할 때 계약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계약서도 없다. 중국동포가 계약서를 쓰고 일하자고 하면 그냥 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다치면 쉬쉬하면서 한 달 치 월급을 주거나 병원비 주는 것으로 끝낸다. 어디에다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나마 하소연할 데라도 있는 회사에 들어간 사람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취업한 이주노동자 수가 53만 명을 넘었다. 이 중 중국동포는 22만 9,607명으로, 전체 이주노동자의 42.6%에 이른다. 이들 상당수가 한국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제조업, 건설업에서 단순노무직으로 일한다. 최저 수준의 임금 때문에 한국인이 떠난 자리를 중국동포가 대신하는 셈이다.

 

중국동포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국내 ‘3D 작업장’에서, 중국동포 3명 중 1명은 주당 평균 60시간 이상 일한다. 진폐증과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먼지 속에서, 비가 오면 물이 새고 화장실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기숙사에서, 근무 중 사고를 당해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현장에서 근무한다. 설사 산재 혜택을 받아도 중국 현지 기준으로 배상비가 책정된다. 비자 차별 때문이다.

 

정부는 중국이나 구소련 지역의 재외동포들과 미국이나 일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들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중국교포는 재외동포로 분류되지만 영주권비자(F4)를 받기 어려워 대부분 방문취업비자(H2)로 입국한다. 이 때문에 100% 사업자 과실로 일어난 사고도 산재보험급여를 공제하고 나면 실제로 남는 게 거의 없다. 또 F4 비자는 3년마다 갱신만 하면 사실상 상시 체류가 가능하지만, H2 비자는 4년 10개월까지만 체류가 허용된다. 그리고 만기 출국자는 1년이 지나야 재입국할 수 있다. 그마저 추첨에 의해 재입국이 결정된다. 중국동포들이 짧은 기간에 돈을 모으려고 하는 이유다.

 

서영희 한중사랑교회 목사는 “비자 기간을 제한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돈 벌어 중국에 1년 다녀오면 다 써버린다. 그런 측면에서 비자 개방과 자유 취업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금체불 문제도 심각하다. 신분의 약점을 이용해 대놓고 떼먹는 고용주들도, 직업소개소와 업체 사장이 짜고 취업시킨 뒤 한 달도 되지 않아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직업소개소는 소개비 명목으로 돈을 챙기고 업체 사장은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식이다.

 

서영희 목사는 “집회 때 한국에 들어와서 일한 뒤 돈 못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을 들더라. 우리나라 법을 보면 임금체불을 해도 노동부에서는 ‘줘라’라고만 얘기하지 강제성이 없다.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서 동포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신뢰하며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중국동포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해법은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동포들을 안는 마음, 중국동포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자유롭게 왕래하며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기돈 이주노동자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중국동포들에게 중요한 체류권을 열악한 노동조건과 맞바꾸고 있다.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면서 열악한 제조업, 농업, 노동 현장에서 장기간 노동을 추진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안정적인 체류권이 보장돼야 한다. 지금은 정부나 자본이 원하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연구개발원 원장도 “중국동포들이 우리나라 재외동포임에도 불구하고 고국의 자유 왕래, 자유 체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한국에 들어오는 동포들이 가족 이산 현상이 일어나고, 부부가 떨어져 살다 보니 가족이 붕괴한다. 정상적인 체류가 보장돼야 한다. 출입국, 법무부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데 전문가들의 분석은 중국동포 중 한국에 들어올 사람들은 거의 다 들어왔고, 부작용도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