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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 트라우마의 현재, 기억속의 ‘전쟁’은 현재진행형

이동권 2022. 7. 29. 16:11

 

사람들이 죽었다. 산 자들은 “그나마 죽었으니 다행”이랬다. “꿈쩍도 못 하고, 똥오줌도 못 가리고, 아비 어미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 바”에야. '공권력'의 폭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때리고, 가두고, 고문하고, 죽인 '무자비'를 경험하고 목도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를 안겼다. 그러나 공권력의 폭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그중에서도 노동 현장은 공권력의 폭력이 가장 악랄하게 표출되는 곳이다. 2년 전 극심한 노사분규로 '옥쇄파업'이 벌어졌던 쌍용자동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쌍용차 노동자 중 휴직 또는 해고 뒤 자살 충동을 자주 느낀 이들이 무려 52.5%다.

 

'사서 고생하는' 미덕이 있었다.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고통이 때론 삶을 이해하는 데 성숙한 토대라고 믿었다. '마음의 상처' 또한 마찬가지. 연인과의 이별, 부부간의 이혼, 가족 간의 사별 등은 모두 커다란 슬픔을 동반하지만 대신 '교훈'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타산지석'은 없다.

 

지난 5월 13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강종완(46) 씨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파업에 함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희망퇴직서를 쓴 것에 대한 울분”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상당수 희망퇴직자 중 한 명이었다.

 

종완 씨의 죽음은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15번째. 행방불명 뒤 자살, 우울증으로 투신, 중증장애 취업난으로 자살, 생계무책 자살 등 눈앞이 먹먹해지는 부음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유가족들은 비통한 눈물을 쏟아내면서 말했다. 이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라고, “해고가 빚어낸 결과”라고 분노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파업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물론,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희망퇴직서를 낸 사람들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옥쇄파업에 참여한 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계영대(38) 조합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영대 씨는 쌍용자동차 천안 물류센터에서 15년간 근무하다 해고당해 형 영휘 씨와 함께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영대 씨는 고립된 공장 상황과 생명에 대한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노사 대타협을 며칠 앞둔 7월 29일 아침, 공장에서 나왔다. 경찰과 사측이 파업을 풀고 공장 밖으로 나오면 귀가 조치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 하지만 경찰은 영대 씨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갑을 채워 연행했고, 포승줄로 묶은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했다. 결국 영대 씨는 경찰의 강압수사와 사측의 협박에 못 이겨 희망퇴직서를 썼다.

 

영대 씨는 희망퇴직서를 쓰고 난 뒤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무시무시한 환상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정신분열 상태에 이르렀다. 종내에는 술을 마시고 시비가 붙어서 수갑을 찬 채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다. 영휘 씨는 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뒤 동생 아파트를 찾았다. 그곳에서 영휘 씨는 뜻밖의 상황과 마주쳤다. 아파트 안에는 생수 80박스(960병), 햇반 30박스(360개), 쌀과 라면을 포함한 갖가지 부식 등 거의 2년 치가 넘는 식량이 있었고, 베란다에는 밖을 감시하기 위한 망원경, 안방과 거실에는 감시와 통신을 위한 노트북 6대가 설치돼 있었다. 영휘 씨는 “옥쇄파업 당시 공장 안은 공권력에 의해 식수나 의약품 등 모든 물품이 금지되고 철저히 차단 됐다”며 “동생은 몇 년 치 물품을 집 안에 쌓아놓고 자기 나름대로 공장 안에서 파업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옥쇄파업 과정에서는 공장 안에 갇힌 채 극한의 고립감을 느꼈고, 공권력과 '전쟁'을 벌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다. 또 파업이 끝난 뒤에는 '세상에 대한 무력감'과 '변하지 않은 현실'을 참담하게 인고해야 했고, 사회적으로는 '빨갱이'로까지 내몰렸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잡혀가고, 실려 가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본 아이들이 입은 상처도 크다. 아이들은 경찰과 회사에 대한 공포,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주 작은 웃음조차 잃어버렸다.

 

'옥쇄파업' 이후 조합원과 그 가족들에게 정신치료를 했던 한 정신과 전문의는 말한다. “의학적으로 봤을 때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 모두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모든 노동자가 자살 충동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언제라도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공권력이 폭력을 사용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하는데 상식적인 선을 한참 벗어나는 무자비한 폭력이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