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규 사진가는 ‘두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나는 ‘도시’다.
최신규의 ‘도시’는 명쾌하고 찬란한 조감이다. 한 작품만 떼어 놓고 관찰하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작위적이고 과장되게 느껴지지만 여러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 서울,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자주 들르는 관광명소를 역사적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인식하게 만든다. 겉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속은 비어있을 거라는 속단은 사라지고 ‘멋짐’이 풍기는 그 내면 깊숙한 곳에서 건축, 미술, 디자인, 문학, 음악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한국의 총체적 문화예술과 마주하게 된다. 장면을 포착하고, 구도를 잡고, 빛을 파악하고, 여러 번 촬영하고, 끊임없이 실험하면서 작품에 창의성을 부여한 결과다.
최신규의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은 도시의 명승지, 고궁, 번화가, 문화재, 정원이다. 예를 들면 숭례문, 남산타워, 광화문, 북촌마을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누구나 한 번쯤 들렀던 장소다.
최신규가 기록한 도시 풍경은 굉장히 중의적이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눈요깃거리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의 시선으로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곳은 시간과 빛 그리고 계절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변하는 딴 세상이고, 다종다양한 체험과 감성, 노동과 지식이 녹아들어 있는 별천지다.
다른 하나는 ‘결’이다.
최신규의 ‘결’은 교차하고 반복되고 중복되는 패턴이다.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삶의 공간이다.
최신규는 단조로운 일상의 단면을 생동감이 넘치는 풍경으로 박제한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빌딩 창문, 실용적으로 분할된 그릇 진열대, 창호지가 발린 문창살에 스며든 빛줄기, 에어컨이 덕지덕지 설치된 상가건물에서 다양한 결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부여하면서 색다른 사색을 제공한다. 먹고살기 바쁘고 고달픔과 힘겨움이 격자무늬처럼 얽히고설킨 일상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겸손이나 배려, 기쁨이나 사랑 같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는 삶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최신규의 작품은 타이폴로지(유형학)의 전형이다. 감성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동일한 유형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탐닉한 작품이다. 타이폴로지는 한 장의 사진보다 여러 사진들이 하나로 모여야 비로소 강력한 힘을 갖게 되고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최신규는 물질화되고 기능화된 도시 문명이나 삶의 길목 여기저기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구조나 형식을 유형화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타이폴로지에 그치지 않고 무뎌진 지성까지 자극한다. 그는 창문과 벽, 일종의 틀들이 되풀이되면서 만들어지는 선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들을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입혔다. 일종의 작가의 포토에세이 같은 작품이다.
최신규 사진가의 ‘두 개의 시선’전이 9월 1일부터 호텔더디자이너스 서울역점 2층 온화라운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이방인에겐 흥미로움을 선사하는 한국의 다양한 풍경과 반복적인 구조에 아름다움을 부여한 작품이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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