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은 강경파와 온건파가 차기 권력 계승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벌였다. 야당은 노재봉 내각사퇴, 내각제 개헌, 공안통치 등을 연결고리로 해서 민자당 온건파와 협공해 강경파를 공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경대의 죽음은 민자당 온건파와 야당에게 있어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이들은 처음부터 암묵적으로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노재봉 내각 사퇴와 내각제 개헌 무산을 목표로 움직였다.
5월 14일, 강경대의 민주국민장이 원천봉쇄로 무산됐지만 18일 제2차 국민대회, 노동계 총파업, 전대협 동맹휴업 등 각계각층에서 투쟁이 전개되고, 야당도 19일 옥외집회를 추진하자 민자당 강경파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5월 22일 노재봉 국무총리는 자진사퇴하고 정원식이 그 자리를 대신했으며, 4개 부처 장관이 경질되고 내각이 개편됐다. 또 28일에는 민심수습대책을 발표하고 내각제 개헌 포기를 명시했다. 이로써 민자당 온건파와 야당, 그리고 야당을 지지하는 주류 사회운동 세력들에게 더 이상 5월 투쟁은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변하지 않았다. 운동세력에 대한 폭력의 수위를 높였고, 내각 개편 이후 대책회의의 본거지였던 명동성당을 봉쇄했다.
6월 7일에는 대책회의, 전대협, 전노협 등 민주세력 관계자 107명에 대한 검거 작전에 들어갔다. 검거 시 1계급 특진과 정보 제공 시 1천만 원의 상금도 걸었다. 또 명당성당 경찰 투입설을 흘리며 불안감을 조장했으며, 5월 24일 광역의회선거를 6월 20일로 확정해 선거돌입 분위기로 국면전환을 노렸다. 이에 민자당 온건파와 야당, 사회운동 주류세력은 광역의원선거에 맞춰 투쟁 수위를 조절하려고 했다.
대책회의는 민주개혁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를 치루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전대협, 전청대협 등의 단체는 광역의회선거에 참여해 야권과 가능한 수준에서 연합공천을 모색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대책회의는 논의 끝에 선거와 관련된 어떤 방침도 세우지 않겠다며 결국 물러섰다. 민주정부수립을 염원했던 5월 투쟁을 자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5월 18일 이후 투쟁은 급속히 소멸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사회운동 주류세력의 판단으로 인한 결과만은 아니었다.
첫 번째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있었다.
5월 8일 오전 8시경. 김기설은 서강대학교 본관 건물 옥상에서 양복 상의를 벗어놓고 분신자살했다. 그 옷 바깥 주머니에는 그가 남긴 유서가 있었다.
연이어 일어난 분신 사건으로 예민해 있던 그때 박홍 서강대 총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분신 배후설을 퍼트렸다. 그리고 검찰은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에게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언론은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의 발표를 사실로 몰아가면서 사회운동세력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운동권은 죽음을 조장하고 유서 대필까지 할 정도로 비도덕적인 집단’이라고 흠집을 냈다.
민주세력은 이 모든 상황이 노태우 정권의 조작극이라는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했지만 ‘필적싸움’과 ‘대필 논쟁’ 자체는 이미 5월 투쟁의 국면을 전환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여론의 중심에 있었다.
강기훈은 유서대필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운동권은 이 사건을 끊임없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이 사건은 국과수가 16년 만에 ‘김기설의 유서는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고 필적감정을 번복해 진실이 밝혀졌다.
두 번째로 5월 투쟁의 열기를 꺾은 사건으로 정원식 밀가루 사건이 있다.
6월 3일 오후 6시 30분경, 정원식 총리서리가 국무총리 취임식을 앞두고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무리하게 마지막 수업을 강행하고 난 뒤 강의실을 나설 때였다. 분노한 학생들이 정 총리 서리에게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퍼부었다. 그가 강의 도중에 시위하는 학생들을 비난한 데다 민주화운동마저 매도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언론들의 생생한 중계로 전국에 방송됐고, 아침 신문 1면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특히 보수 언론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 사건을 운동권 학생들을 비난하는 데 이용했다.
극좌파 운동권 학생들이 반백의 노인 스승을, 어른으로 더구나 정부 권위의 최고 상징인 현직 총리를 달걀과 밀가루 세례, 발길질, 목조르기로 인질 취급하여 멱살잡고 끌어내 개 끌 듯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옆차기, 좌치기, 이단옆차기로 무차별 수모와 린치를 가함으로써 모욕감을 증폭시킨 계획된 조직적인 집단폭행으로 반인륜적, 반지성적, 비민주적, 반교육적 패륜이 인륜을 짓밟았다.
‘조선일보’ 1991년 6월 4일자
여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은 순식간에 스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패륜아’로 몰렸고, 전체 운동세력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노태우 정권이 보수 언론들의 기자들을 대동해놓고 파놓은 함정에 학생들이 걸려든 것이다.
민주세력은 정원식 총리 서리의 외국어대 방문은 순수한 강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총리취임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무마시키고 이미지를 미화시키려는 측면이 강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민주세력은 노태우 정권의 폭력성이 자신으로 전도된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못했다.
선미는 정원식 밀가루 사건을 지켜보면서 관제언론의 왜곡 보도에 대해 분노했다.
나는 이 나라의 모든 자주권이 유린당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관제언론이 이렇게 죽어 있고 왜곡돼 있는지 지금에야 알았다. 간교하고 거짓된 가식의 논리와 언어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현명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언론은 이미 양심을 잃어버렸다. 권력과 언론이 유착돼 권력에 아부하고 정권의 앵무새 노릇만 하는 언론을 진정한 국민의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비판과 감시의 사명을 저버리고 권력과 야합한 언론은 과장, 왜곡 보도가 아니면 조작, 침묵 보도를 통해 현학적 허세를 부리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어용언론의 대표이며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아온 조선일보는 너무 썩어 문드러져 도려낼 곳조차 없이 퍼서 내버려야 한다. 언론 본연의 임무인 공정보도, 진실보도를 저버리고 정권의 간교한 논리를 멋지게 포장하는 제도 언론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허울을 스스로 국민 앞에 사죄하고 참회하라.
노태우 정권은 외대 사건을 빌미삼아 운동권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배후에 있는 반체제 좌경용공세력 척결과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철저히 추적, 색출했다. 그리고 민자당은 광역의회선거에서 압승했다. 국민들이 노태우 정권의 올무에 걸려들어 살인정권의 편을 들어주고 말았다.
5월 투쟁은 폭력과 죽음으로 점철된 투쟁이었다. 폭력과 죽음이 5월 투쟁의 시발점이었지만 동시에 종착점도 돼버리고 말았다.
생존권에 대한 요구, 대안적 공동체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폭력과 죽음의 의미를 넘지 못했고, 이는 민주세력의 한계이자 저항적인 담론화의 부재로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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