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51. 5적 김지하, 박홍, 김동길, 김수환, 조선일보

이동권 2021. 11. 22. 13:54

발언하는 선미

 

노태우 정권이 분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중과 달랐다. 이미 ‘민주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분신은 민주화 투쟁에 대한 열망이 아니기 때문에 열사로 호칭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 분신은 ‘민주세력들이 꿈꿔온 이데올로기에 발붙이기 어렵고, 국민의 공감을 받기 힘들게 되자 벌어진 충동에 지나지 않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이런 해석을 지지해 준 것은 당시 5적이라 불리던 김지하, 박홍, 김동길, 김수환, 조선일보였다.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기고했다. 그의 글은 다른 이들의 글보다 더욱 부정적이었고, 파장 또한 컸다. 그는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 자살특공대,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이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파괴력에서가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충동에서다. ……. 

김지하의 글은 반론과 재반론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하지만 반론이 압도적이었다.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주도하고 강제했던 노태우 정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반론의 중심은 ‘분신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막는 것’에 있었다. 또 강경대의 죽음에 대한 항거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제압했던 상황에서 일어난 분신은 ‘노태우 정권의 타살과 같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선미도 ‘한겨레신문’에 반박하는 글을 보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분노했다. 당신의 가슴속에 가득 찬 허무주의적 생각과 뻣뻣하고 차가운 생명론을 보고 당신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당신은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 자식 나에게 달라.”고 애원하는 부모님께 아직도 정권은 동생을 돌려주지 않았다. 못 박힌 가슴에 잔인한 망치질을 해대고 있다. 누가 우리 경대의 죽음을 부풀려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들인가? 경대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말하는가? 당신의 양심에 묻고 싶다. 당신은 내 동생의 죽음에 고개 숙여 가슴 아파한 적이 있는가? 조문 한번 와서 살인정권에 분노하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하려고 생각했는가. 당신은 개인의 생명이 정권보다 소중하다고 했다. 그럼 내 동생의 생명은 어디 있는가. 당신은 정권에게 할 말이 없는가? 아니면 못하는 것인가? 당신은 오적의 하나라고 불렸던 정권의 편을 들어 어떻게 인간 본연의 양심마저 저버릴 수 있는가? …… 이제 당신은 허무주의자다. 내 동생과 동지들의 죽음을 모독한 부끄러운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나도 더 이상 학우들 죽음의 아픔을 보고 싶지 않다. 부모님께서도 더 이상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시고 가슴 아파하시지만 동시에 생명의 고귀함을 운운하는 당신의 거짓에 분노하신다. 자기 자신만큼 스스로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경대를 비롯한 여러 학우들의 죽음은 단순히 분노와 결단에 의해서만이 아닌 이 시대의 폭력독재정권이 잉태하고 있는 모순들 속에서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죽음으로밖에 저항할 수 없어 산화한 젊은이들더러 철부지, 경박한 사람이라 하는 당신이야말로 민중에게서 배우지 못한 자다. 생명론을 말하지만 희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만을 느끼고 있다. 운동이 끝장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운동의 대열에서 이탈했을 뿐이다. 젊은이들의 죽음을 더 이상 모독하지 말라. 이미 분신해 가신 분들이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몸을 태우도록 부추기지 마라.

하지만 다시 박홍 서강대 총장은 얼토당토하지 않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어둠의 세력이 있다. 죽음의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박 총장은 근거 없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기는커녕 서강대에서 열린 故 김기설 열사의 장례식에서 수모를 당할까 봐 몸을 숨기는데 급급했다.


검찰은 “분신자살이 2~3일 간격으로 연쇄발생하고, 한적한 곳에서 하는 등 방법이 유사하고, 호남 영남 경기 서울 등 분포를 이루고 있는 점을 보아 배후에서 조직적으로 이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운동권에서 제비뽑기를 통해 분신할 사람을 선택한다.’는 분신 배후설을 흘리면서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만들어냈다. 


5월 투쟁에서는 분신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강경대의 죽음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인물들도 있었다. 


김동길 연세대 교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강경대의 죽음을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은 정당화되면서 전경들이 쏘는 최루탄은 불법이라는 논리는 맞지 않고, 화염병을 던지지 않은 학생에게는 최루탄을 쏘지 않는다고 정권의 편을 들었다. 독재정권의 공안 통치와 부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서 최전선의 현상만 가지고 현실을 판단하고 재단해버린 것이다. 학생들은 즉각 들고일어나 김 교수에게 강력하게 항의했고, 김 교수는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5월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양비론적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는 “학생들도 이번 불행에 대한 울분, 슬픔을 충분히 표시했으므로 국가가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비난의 대상이 됐으며, 첫 사무활동을 시작한 진주에 가서 달걀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5적 중의 하나는 김지하의 글을 실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열사들의 죽음과 5월 투쟁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위해 국민의 냉담을 조성하는데 기를 썼다. 또 민주세력에 이끌려 정세판단을 흐리는 행동은 금물이라고 정치권을 공격하면서 더욱 강력한 시위 진압을 요구했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5월 투쟁 내내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