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개망나니의 사색

030.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 가난에 대한 소고

이동권 2024. 3. 14. 15:09


진짜 가난은 마음이 가난한 것이다.



도시의 번화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선착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두 눈을 두리번거렸다. 이들의 표정에는 가슴속에 외로움이 넓게 젖어 있는 듯 웃음기가 없었다. 나는 인적이 닿지 않았을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먼바다였다.


나는 복잡한 도시를 걸을 때면 폐 한쪽을 들어낸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훑어봐도 어떠한 감정조차 느낄 수 없었다. 젊은 연인들의 고함소리,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배기통 소음,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끙끙거리는 아주머니들의 한숨만이 이곳이 삭막한 도시라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어쩔 때는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가깝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 걸어가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부딪친 것도 아닌데 큰 싸움이 벌어질까 봐 무서웠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나 많았고 날카로웠다.


나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허무하고 고독한 심회를 맛봤다. 타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비굴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버텼다. 출구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쳤다. 자신을 속이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그것을 운명처럼 안고 살았다. 나는 일상에 녹아있는 소소한 즐거움도 발견하지 못했다. 애달픈 심정이 들 때면 하늘을 자주 쳐다보는 게 다였다. 쓸쓸함이 뻗어오는 날에는 평화와 고요의 시간이 찾아오길 기대하면서 더욱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보면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졌다.


그것도 먹히지 않을 때는 술을 마셨다. 몸도 못 가눌 정도로 고주망태가 됐다. 이상하게 사고는 별로 생기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길도 멀쩡했다.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1)


사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애상이 찾아들면 옛사람이나 자연과 벗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혹독한 세상사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 변함없이 추악한 손길을 내밀더라도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지치고 찡그린 얼굴을 다스렸다. 특히 순수했던 시절, 멋진 장소, 예술의 감동, 자연의 향취와 같은 기억은 넓은 마음으로 삶을 관조하도록 도왔다. 


선착장은 코끼리 코처럼 유독 길쭉했다. 한꺼번에 많은 배가 들어와도 모두 정박할 수 있을 정도였다.2) 

 

연평도 사람들은 조기가 많이 잡혔을 때만 해도 도시 못지않게 떵떵거리며 살았다. 하지만 조기가 사라지고 해전이 벌어지면서 연평도는 참담한 섬으로 변모해 갔다.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뚝 끊어졌고 덩달아 주민들의 생활도 곤궁해졌다. 조기가 잡히지 않아 수억 원씩 빚을 지고 사는 주민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3)


주민들은 조기가 떠나자 꽃게를 잡으며 생활을 버텨왔다. 연평도 꽃게는 씨알이 굵고 맛이 담백해 최고 상품으로 거래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어획량이 감소해 주민들의 한숨 소리는 커져 갔다. 관광객이라도 많이 와줬으면 좋겠지만 뱃삯도 비싼 데다 내세울만한 관광명소도 없어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 이외에는 찾질 않았다.


그나마 연평도는 나은 편이다. 도시 빈민의 삶은 더욱 처참했다. 생계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 차원에서 경제적인 궁핍을 해결해야 하지만 부자들 세금만 대폭 삭감해 곳간은 텅텅 비었고 빚만 늘었다.


가난한 삶은 가치가 있었다. 자발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것을 병들고, 배고프고, 억울한 사람들과 나눴기 때문이다.4) 하지만 가난 때문에 배곯아 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단순한 빈곤이나 결핍의 상황이 아니었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지경에 이르면 가난은 생과 사의 문제였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 산다고 떵떵거리지만 60년 전만 해도 태어나면서부터 젖배를 곯아 죽은 아이들이 많았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꺼멓게 썩은 고목에서 자란 독버섯을 먹고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도 풍족한 세상에 살다 보니 거짓말처럼 들리는 젊은이들도 있겠지만 실제 아무런 힘도, 지식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살았다.


모두 다 가난할 때는 가난이 천지이니 마음이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지금은 예전보다 모두 잘살게 됐다지만 삶의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이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잘살게 됐다. 한쪽에서는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졌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이런 현실을 보고 한숨이 나지 않으면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 부자, 특혜 받는 자들에 대한 푸념이나 부자로서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지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부자에게 관대했다. 못생긴 것보다는 잘생긴 것, 보이지 않는 내면보다는 외면, 실속보다는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부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재벌과 대기업 집중 육성,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법률지원, 세금, 국가 인프라 구축 등 수많은 부분에서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부자들이 대다수의 국민들을 먹여 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민에게는 모두가 함께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세뇌했다. 하지만 부자들이 거둬들인 열매는 골고루 나눠지지 않았다.


나는 우리 사회가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대량실업 등 여러 현상들을 둘러보면 희망의 가닥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지역, 어떤 아파트, 어떤 제품, 어떤 사람 등을 정해 놓고 막무가내로 그것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시대가 정상으로 보일 리 없었다.


우리 사회가 성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비성장 시스템을 지향했다면 달랐다. 내가 아니라 우리, 우리 가족이 아니라 이웃,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위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판이했다. 소유의 개념을 조금만 바꿔도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었다. 생활이 불안하고 삶이 불행하지 않은 세상에서 크게 웃으며 살 수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현대인들은 무조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많이 소유하지 못해 애걸복걸하며 괴로워했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과 참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능력을 오직 소유하는 것을 위해 썼다.


가난은 현재도 유효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궁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하다. 하우스푸어, 실버푸어, 렌트푸어 등 신빈곤층이 생겨났다.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깊어지고, 생계형 범죄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안정망 없이 거리로 쫓겨나고 노점상과 철거민, 노숙인의 숫자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전세대란, 임대주택 감소 같은 얘기도 남의 일이 아니며, 따뜻했던 인간의 정마저도 메말라 가고 있다.


예로부터 가난한 사람은 있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굶주리는 10억 명의 이웃이 있다. 반면 누군가는 그들을 알게 모르게 착취하며 매우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엄청난 부를 쌓아도 주위를 돌아볼 줄 모르고 더 많이 벌어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나는 도시에 살면서 개망나니가 됐다. 시골에서 산다고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다. 그러나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조금이나마 더 너그러웠을 것 같다.

2) 선착장은 모두 코끼리 코 같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코끼리를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수많은 신들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세 가지 신은 가네샤, 락시미, 크리슈나다. 그중에서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신이 가네샤다. 인도인들은 가네샤가 지혜와 복을 상징하며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고 보호한다고 믿고 있다. 나는 한때 열대 지방에만 가면 코끼리 모양의 예술품과 장식품을 샀다. 이것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방구석구석에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3) 조기는 민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동해, 서해, 남해에서 산다. 포와 젓갈로 먹는 해산물 중에서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4) 가난한 사람의 마음이 부자보다 더욱 편안할 수 있다. 지킬 게 없어서 마음이 편한 게 아니다. 살림은 궁색하지만 할 일이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들이 올바르게 커가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가 뿌듯하다. 이들은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삶에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마음을 가다듬을 노력조차 필요 없다. 형편에 맞게 대처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삶을 즐기면 된다. 긍정적이고 성실한 삶으로 형제애를 가르치며, 자존감을 습득한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가난조차 이겨내고 있다. 산다는 것은 모두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뇌의 능력을 평생 동안 5%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세계적인 석학 아인슈타인도 10%밖에 활용하지 못했다. 생각해야 한다. 각성해야 한다. 인류가 공생할 길을 찾아야 한다. 지구의 미래는 젊은 세대의 에너지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분출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