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개망나니의 사색

032.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 부재한 사람들

이동권 2024. 3. 14. 15:51


부재는 곧 불필요로 정리된다.



새마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연평도를 소개하는 오래된 책에 해수욕장이라고 적혀 있던 곳이었다. 요즘 나오는 책에서는 해수욕장이라는 명칭이 사라졌다.

 

새마을 해수욕장은 물이라면 환장하는 어린아이조차 들어가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곳에는 모래사장이 아니라 조약돌이 듬성듬성 깔렸고, 물이 빠진 곳에는 개펄이 형성돼 있었다. 개펄은 간조 때 조개나 낙지를 잡을 정도로 면적이 넓었고, 여기저기에 양식을 했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새마을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는 4층 높이의 전망대가 있었다. 이곳에 서면 ㄷ(디귿)자 모양의 선착장에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과 연평도 근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반대편에는 1960년대 도시를 연상시키는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해수욕장 이름이 새마을이었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 이후 서구식 아파트 문화가 침습하면서부터 도시의 초가집은 자취를 감췄다. 이후 아파트는 한국인들의 주요 주거공간으로 거듭났다. 현재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수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고, 사람의 가치가 평가된다. 주거 소유에 대한 엄청난 집착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평등, 공정과 정의 의식까지 망가뜨렸다.


처음 아파트는 필요에 의해 건설됐다. 의식주 자체를 해결하기가 너무도 힘겨웠기 때문에 자연이나 문화유산을 생각할 만한 여유 없이 마구잡이로 아파트를 건설했다.


이면에는 보이지 않은 상처들이 난무했다. 아파트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진보적 결과물이었다. 안락한 주거와 단란한 가족 단위의 사생활을 보장해서 생활수준을 높였다. 그러나 아파트가 신분 과시의 표본으로, 재산을 형성하는 욕망으로 분출되면서 중산층을 대변하는 단어이자 모든 국민이 선망하는 주거의 모델이 됐다. 지금도 대부분의 신축 주거공간은 아파트가 압도적이다.


서울 시내 32평형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2인 이상 가구가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9년 1개월을 저축해야 한다고 한다. 전문가들 중에서는 29년이 걸린다는 예측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차마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이 우리 앞에 놓인 셈이다. 이러한 장벽은 계급 간의 갈등과 대립, 충돌을 불렀다.

 

아파트의 역사는 철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파트는 도시와 계급의 분열을 조장하고 사회적 관계를 단절시켰다. 1970년대를 전후해 서울 인구의 20%가 반강제적으로 이사를 갔고, 산동네 판자촌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철거민 투쟁과 폭력적인 철거가 벌어져 많은 사상자가 났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부재했다.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예 잊힌 사람이었다. 가장 격렬하고 비극적인 역사는 부재가 아니라 과잉에서 나왔다. 그들의 부재도 역시 자본주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집,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집, 살기 편한 집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이제라도 아파트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시각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고, 인간다운 주거 생활을 위해 건설된 아파트는 현재 어떻게 변했을까? 아파트는 근대건축운동을 주도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이상을 상징한다. 그는 ‘집은 주거를 위한 공간’일 뿐이라고 규정하고, 인간의 모든 생활과 연계된 대규모 공동주택을 지향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부르주아와 중산층이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을 선택하면서 아파트에는 하층계급과 이민자들이 몰렸다. 한국의 사정은 달랐다. 르 코르뷔지에의 이상과 반대 형태로 발전했다. 한국에서는 일제 식민지였던 시절 일본 기업의 기숙사, 일본인을 위한 임대아파트가 초기에 지어졌다. 민간아파트 건축은 해방 이후에 시작됐으며, 1962년 최초로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건설됐다. 마포아파트는 공공임대가 아닌 분양주택으로 공급되면서 미래 한국 아파트의 향방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