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개망나니의 사색

025. 다시 바다에서 - 불안이 찾아와도

이동권 2024. 3. 12. 16:33


수많은 불행이 겹쳐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희망이다.



선실에는 영민하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 남자가 여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점을 봐주는 듯했다. 남자의 말투는 총명함을 타고난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배안에서 점을 보는 모습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이게도 했다. 점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은 물과 같이 언제, 어디서나 제멋대로 흘렀다. 바위 밑에서 흐르다 웅덩이를 만났고, 그 웅덩이에서 넘쳐 어디론가 또 퍼져 갔다. 때론 우거진 숲 속에서 소리 내 흐르다 물안개를 일으키며 증발했고, 때론 눈 속에 스며들어 그대로 얼었고, 때론 좁은 계곡에 사는 늙은 소나무의 잔뿌리도 적셨고, 때론 맥주의 흰 거품처럼 부풀어 올라 하얗게 말라붙었고, 때론 일곱 개의 영롱한 빛깔을 품은 무지개로 태어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와 같이 삶은 항상 꼬이거나 취해 있었으며, 아찔하게 줄을 타거나 어두컴컴한 뭔가에 뒤덮여 있었다.


나는 무속인의 삶을 취재하려고 전국에서 이름 좀 알려졌다는 점집을 여러 군데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들을 만나 미래를 척척 알아맞힌다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속인들은 가슴 아픈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친구였다. 나는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 모두 힘겨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내가 힘들다고 짜증을 부린 것이 못내 미안할 정도로 구구절절 기구한 이야기들이 많았다.1) 


점집에 들어온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앉아 점쟁이의 무르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일지라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면서 위안을 얻었다. 기적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점쟁이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내면에도 귀를 기울였다. 내가 밟고 있는 흙과 내가 흘리는 땀 냄새를 떠올리면서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새 살을 채웠다. 쓸데없는 걱정이 삶을 갈아먹지 않도록 이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눈가에 주름이 깊은 할머니는 작은 아들의 돈벌이를 걱정했다. 사업도 안 되고 빚도 많은 데다 아내를 폭행하고 이혼을 한 뒤에는 단 하루도 술 없이는 못 견딘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와 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물질이 근심을 만들거나 사람을 나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나쁘기 때문에 물질이 갖가지 불행을 몰고 다녔다. 사채업자들이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의 신체를 망가뜨린 뒤 보험회사에서 나온 돈으로 빚을 갚게 만든 뉴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일이 그 예였다. 


사람은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타고 난다. 나에게도 물론 그런 능력이 있다. 나는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여행을 떠나면서 기쁨을 향유했다. 그러나 사람은 물질에 집착하면서 즐거움에 둔감해졌다. 물질을 채우는 기쁨에 매몰되면서 불행하게도 일상에서 찾는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들조차 돈이 들지 않는 만족을 몰랐다.


삶은 모순덩어리였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잘 살기 위해,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더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상처받고, 아픔을 겪었다. 


나는 삶이 괴로울 때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았다. 일종의 ‘살풀이’였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희망은 ‘로또’밖에 없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섞어서 말하곤 했지만 희망이란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그리운 사람과 같았다.

 

마음속에 거부감이 들 때에도 희망이 이뤄질 날을 기약하면서 삶의 상처를 끌어안았다. 희망은 약속처럼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다. 생을 다할 때까지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지 몰랐다. 그렇더라도 그 끈을 놓으면 안 됐다. 희망이라는 정체가 묘연하고 불투명하더라도, 참을 수 없을 만큼 현실이 괴롭히더라도, 소중한 것을 잃어 자포자기하고 싶더라도, 희망을 가슴에 꽁꽁 묶어 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은 영영 사라져 버렸다. 아주 늦게나마 희망이 찾아와도, 꼭 그것이 아니라 희망과 비슷한 것이 눈앞에 보이더라도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1)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대나무에 깃발을 묶어 놓은 집들이 있다. 거기가 바로 점집이다. 사람들은 어둡고 굶주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어진 얼굴로 점집을 찾아간다. 한없이 수척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점쟁이를 만난다. 가슴 아픈 것은 이곳을 찾아가는 사람 중에는 걱정의 정점에 이른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무런 파란 없이 이곳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바다는 나에게 살면서 생기는 고통을 없애는 길을 비춰줬다. 고통은 마음이 조각나서 생긴 일이니, 그 조각을 붙이면 해결된다고 했다. 조각을 붙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깨진 꽃병을 본드로 붙인다고 해서 깨진 흉터가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니 그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깨진 조각을 인정하면 됐다. 고통도 그랬다.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떳떳하게 인정하고, 그 고통에서 회피하는 것보다 맞서 싸우면 고통이 줄어들었다. 어차피 마음이 조각난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