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은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두 번째 섬이 가까워지자 선실에 있던 사람의 절반쯤이 갑판에 나왔다. 그 절반의 절반은 낚시 가방을 둘러 맨 조인( 釣人)들이었다. 갈매기들은 섬보다 먼저 이들을 맞았다. 삼삼오오 모여 날면서 짧은 울음소리를 내며 배 주위를 배회했다. 시원한 바람도 길안내를 하겠다며 멀찌감치 앞장섰다.
여행을 한가한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폄훼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속에 여지를 두면 생각은 바뀐다. 초록빛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이 없고, 신선한 바람이 피부에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꼭 먼 곳에, 돈 들여가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이나 알래스카의 거대한 빙하,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나 이탈리아 피렌체미술관에서 즐기는 여행도 좋지만 가까운 곳에서 적은 비용과 부담 없는 시간으로 즐기는 여행도 똑같은 여행이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1)
나는 이 섬을 지나 다음 섬에서 내린다. 어수선한 갑판에서 벗어나 선실에 들어왔다.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던 남자는 나를 바라보면서 태연하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섬에 내리자마자 숙소를 잡지 않은 것이라고 예상하는 듯했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바람소리도 유난히 커졌다. 목덜미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던 날도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져서 불안감을 느꼈다.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어둠이 대낮부터 내리더니 폭풍우가 몰려왔다.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면 소란을 떨며 비를 피하려고 노력했겠지만 혼자여서 그런지 태평했다. 나만 젖으면 그만이었고 주위에 사람이 없으니 눈치볼 필요가 없었다. 비에 젖는 게 싫지도 않았다.
비에 맞아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몽환적인 기분에 젖게 했다. 난행의 유혹이 느껴졌다. 사람들 눈치 보느라 도시에서는 할 수 없었던 갖가지 행동을 해보고 싶었다.2)
무미건조한 감정이 스몄다.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처량하게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다.
여행에 대한 기대는 첫 여행으로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여행은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자신과 싸우는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를 철철 맞으며 삶의 비애를 안고 격하게 버둥거렸다.
나는 시야가 탁 트인 언덕에 올라갔다. 고요하게 흔들리는 강을 바라보면서 바보 같은 나를 혼내 달라고 외쳤다. 삶을 찬미할 수 있는 그날까지 내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증오와 타락이 스며든 일상에도, 자신만을 쫓아 사는 나태하고 안일한 마음속에도, 욕망으로 내달음치는 동요와 충동에도 목마른 대지를 적시 듯 평안의 비가 내리길 기도했다.
폭풍우는 거대한 포용의 의식처럼 서서히 잦아들었다. 한 차례 난잡한 시간이 지나자 나는 안정을 찾았다. 여행과 자연의 부름으로부터 끓어올랐던 과거의 속박과 현재의 방황 그리고 미래의 절망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부터 나는 변모했다. 어지럽고 지쳤고 아팠지만 날카롭고 예민한 마음의 조각들이 마모되기 시작했다. 크고 카랑카랑했던 목소리는 낮고 신중해졌으며 사사로운 탐닉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삶에 대한 두터운 애정과 인내심을 갖게 됐다.
나는 고독해지기도 했다. 무수한 고독의 나날은 계속됐다. 고독이 준 선물은 지혜였다. 나는 사는 동안 맞서게 되는 현실적인 냉대나 죽음처럼 갖가지 신비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아름답고 추하고, 선하고 악한 것도 그대로 보고자 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인생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첫 여행은 짙은 어둠 속에서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때나 고난과 비통의 시간이 내 마음을 조각낼 때 앞길을 비춰 주는 작은 손전등과 같은 역할을 해줬다. 원숙한 정신세계로 인도했던 여행이었다. 거침없이 누리고 표현하는 자연과의 만남이 있어 가능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고하는 다짐이자 혹독한 성찰의 결과물이었고, 보석처럼 반짝였던 젊은 날의 방황 중 하나였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삶은 달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된 정화의 의식으로 초대됐다. 신이 나에게 정해준 시간을 소진하는 동안 외모는 변했고, 용기는 상실됐고, 지성은 퇴화됐고, 열정은 위축됐다. 그것을 비통해하는 나에게 여행은 피할 수 없는 혹독한 성찰로 인도했다. 앞으로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깃 넓은 날개를 휘날리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계속해서 바다로 가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1) 마음속 얘기를 하고 싶어도 할 데가 없었다. 그럴 때 여행을 떠나 대화했다. 바다 앞에서 모두 털어놓고 해답을 얻은 뒤 일상으로 돌아왔다.
2) 홀딱 벗고 산을 올랐다. 내게 덧씌워진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쩌면 저 산에 사는 멧돼지처럼 하고 싶은 대로 뒹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난 그때 답답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그럴까? 삶은 체험하고 느끼면서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것이지 욕망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우둔한 사람은 그것을 모른다. 물질과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까지 자신과 싸우는 행위는 삶에 어떤 의미를 주지 못한다. 단지 목적을 달성하는 것뿐이다. 노력하고 파고드는 사색, 다듬고 성찰하는 마음만이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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