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하다.
섬 주민들은 갑판에 서 있지 않고 곧바로 선실에 들어갔다. 이들에게 배는 특별할 것 없는 교통수단이었고, 바다는 매일매일 마주치는 삶의 공간이었다.
갑판에 뱃짐을 부리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섬 주민 같았다. 남자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숙소가 정해져 있냐?"면서 "그렇지 않으면 자기 민박집에 오라."고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적당한 인사로 남자를 안심시키고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섬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바닷바람에 얼굴을 내맡기고 있던 여행객들이 하나둘씩 선실로 들어갔다. 청춘의 향기가 넘쳐나는 스무 살 갓 넘긴 대학생들만이 나와 함께 갑판에서 바다 냄새를 만끽했다. 아무런 근심 없는 표정으로 왁자하게 떠드는 청춘들을 보니 한때 내게도 있었던 젊음이 부러웠다.
시샘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나는 우울해졌다. 지옥 같은 입시경쟁에서 탈출했다고 믿는 청춘들 앞에는 또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80, 90년대 우리 사회는 어지럽게 돌아갔다. 좀 더 나은 앞날을 기약하며 공부에 열중하는 와중에도 공동체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청춘들이 많았다. 반독재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며 거리에 나왔고, 독재정권 타도와 광주학살 진상규명, 5공비리 척결 등을 요구하며 행진하기도 했다.
요즘은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세상 돌아가는데 관심을 가지는 청춘들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오직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악착스럽게 적자가 되려고 애썼다. 삶도 팍팍해졌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에 따라 사회의 계층화가 심화됐고, 부의 양극화가 교육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2호선이 지나는 대학은 족집게 과외를 받은 부자들의 자녀가 점령했다. 어느새 가난은 죄가 됐다. 어떤 학생은 좋은 승용차에 클럽을 전전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반면 어떤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등록금마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대학 사회는 불균형해졌다. 그뿐인가. 강남 8학군, 특목고와 일반고 출신의 서열이 정해졌고, 학과마다 등급이 매겨졌으며, 부모의 직업과 집안의 형편에 따라 계급도 결정됐다.
청춘들은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다. 입시 지옥에서 빠져나온 세상은 열등감과 상대적 박탈감,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사회의 잣대와 오랜 관습은 젊음을 발산할 기회까지 억압했다. 더 높이만을 외치며 경쟁을 강요할 뿐이었다. 간판주의에서 비롯된 경쟁은 대학을 벗어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았고, 그에 따라 이기주의는 날로 팽배해졌다. 청춘들은 경쟁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상처받고 병들어 갔다.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을 견디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믿었다.
사랑이나 결혼도 의미보다는 물질을 우선시했다. 학벌 좋고, 돈 잘 벌면 결혼 상대로 낙점했다. 시장에서 좋은 과일을 고르듯 사랑도 골라잡았다. 아니면 부모가 정해준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행여 사랑을 얘기하면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했고,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비웃었다. 정말 별 사람 없고,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사랑 없는 삶이 무료하지 않다면, 자식 키우는 재미로만 살 수 있다면, 좋은 집과 음식이 사람보다 소중하다면, 결혼 때문에 차버린 연인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더 이상은 할 말은 없다. 그저 슬플 뿐이다.2)
나는 청춘들에게 스스로 목소리를 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과거에 선배들이 부조리에 맞서고, 사회를 변혁하는데 힘을 쏟은 것처럼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경쟁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청춘들에게 미안해서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먼저 기성세대에게도 똑같이 물어볼 일이었다. 기성세대는 대학만 좋은 데 가면 행복이 주어진다고 믿게 했고, 경쟁에서 이겨야만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더 나은 삶은 오로지 경쟁으로만 얻어진다고 강조했고,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한 경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조건 이기라고 조언했다. 오로지 자기 자식만 잘되면 그만이었다.
바다는 싸늘했다. 물질만 남아 신음하는 청춘의 초상을 여과 없이 투영했다.
1) 죽는 날까지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그런 일을 찾고 싶다면 일단 고민부터 해야 했다. 단순히 뭘 할까, 뭘 잘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한 성찰이 필요했다. 거기에 시대를 간파하는 현명함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였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보니 그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젊었을 때 무엇을 하고 싶은 지는 확고했다. 이미 지났지만 그것으로 족하다.
2) 골룸은 반지에 대한 집착 때문에 늘 괴로워했다. 나는 물질에 눈이 먼 인간을 골룸으로 은유한 것 같아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내내 등골이 서늘했다. 술도 확 당겼다.
사랑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사랑이 아픈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열정이 앞서다 보면 슬픔에 겨워 숨도 가빠지고, 진실한 고백도 전할 수 없다. 누적된 피로와 괴로움, 공허와 불안도 만들어 낸다. 생활이 어렵고 벌이가 시원치 않을 때는 다툼도 파생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복제하거나 모방할 수 없는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서로 상해를 입히지 않고, 차가운 이익만을 탐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고통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사랑의 고통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낄 때는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고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문제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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