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받을 복까지 차버린다.
어느새 배가 첫 번째 경유지인 덕적도 선착장에 들어섰다. 연평도까지는 두 개의 섬을 거쳐야 했다. 덕적도는 청정한 빛이 감도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이곳은 삶에 지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푸르디푸른 제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냈다. 바다에 내려앉은 회색 빛 구름 무리, 은빛 물고기를 실어 나르는 고깃배, 어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청신한 바람은 바다의 자혜 그 자체였다.
나는 배표를 손에 쥐고 주물럭거리다 다짜고짜 배에서 내렸다. 돈이 아까웠지만 이곳에 삽시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목적지도 없이 가는 것이 바로 여행 아니었던가.1)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나는 배에서 내려 한참을 서 있었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내 마음을 온전하게 다스리고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볼품없이 마르고 피곤이 가시지 않은 몸으로는 불가능했다.
땅을 밟자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노란 부리의 갈매기도, 미끌미끌한 선착장도, 코를 간질이는 습한 향취도, 검게 탄 어민들의 얼굴도 낯설지 않았다. 부둣가 한편에서는 햇빛에 말라가는 검은빛의 물고기들이 살려고 꿈틀거렸다. 나는 잠시 연민이 일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밥상에 구워져 올라가는 것이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의 운명이었다. 물고기는 태어난 그대로 자신의 삶을 다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습적인 성공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좋은 자리에 오르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했으며, 기성세대 또한 그것을 위해 노력하라고 설교했다. 삶의 의미를 더 많이 갖는 것에 둬서 그랬다. 그들은 밤낮 일만 하면서 벼락부자가 되기를 원했다. 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당연시했고, 부자가 된 뒤에는 자만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힘들어했다.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술잔을 비웠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럴까 마음이 답답했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창조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나의 강한 개성이 평범한 업무에 깃들기를 바랐고, 새로운 결과물을 내길 원했다. 창조를 위해서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된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틀에 박힌 사고를 먼저 비워내지 못하면 새로운 것이 들어갈 공간은 없었다.
성공도 비슷했다.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면 빈 공간만 수두룩하게 드러났다. 스스로 마음의 빈곤함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단순하게 즐기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가슴 깊이 느끼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있어야 성공도 자연스레 뒤따르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성공은 인내심을 갖고 자신에게 열중하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긍정하며 살아가는 것, 자신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신이 내린 재주와 능력이 없더라도 결코 비관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가장 큰 동기를 기쁨과 그 결과로 얻어지는 행복, 그리고 사람들과 나누는 가치를 아는 것에 두었다. 자신을 잃어버린 채 헛된 꿈을 위해 삶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1) 내가 살면서 가장 놀랍고 아름다웠던 순간은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랑의 힘에 농락당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얘기가 진실로 증명된 셈이었다.
옛 선각들은 가장 아름다운 삶을 단순함에서 찾았다. 단순함이란 생활의 단순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생활의 단순함에서 얻어지는 마음, 인간 본연의 정서에 가장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이다. 쉽게 얘기하면 사랑을 발견하는 심성이 민감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점점 굳어졌다. 나를 향한 애증만 더욱 두터워졌다. 무엇을 버리지 못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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