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욕망의 양상이 다를 뿐이다.
선실로 들어갔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덕담이 들려왔다. 그들의 무리에 끼고 싶을 만큼 정겨운 풍경이었다. 특히 가볍게 나누는 술과 안주에 마음이 더욱 넉넉해지는 것 같았다. 중년 남자들은 속을 박박 긁는 옛이야기에도 서로 웃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오히려 마음을 더 쓰려고 했다.
술자리에서는 항상 자기 먼저 기분을 전환하고 상대방의 얼굴을 살피며, 진실의 시소에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농담을 웃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상대방의 진심을 쉽게 무시하면 고성만 오가는 술자리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런 술자리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개망나니가 될 때는 항상 즐겁고 유쾌한 자리였다. 슬프고 괴로울 때는 되레 술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배낭에서 주섬주섬 식은 맥주를 꺼내 마셨다. 홀짝홀짝 마신 맥주가 벌써 두 캔이나 됐다. 취기가 조금 오르자 꿈과 추억 속에 매몰된 장면들을 살며시 열어 보고 싶었다.
쓰라렸던 유년시절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먼저 떠올랐다. 회한이 가슴을 쳤다. 덜커덕덜커덕하며 순식간에 멀어져 간 청춘, 애틋하고 간절했던 첫사랑, 토막토막 눈물이 나는 이야기들, 또 과거의 아름다웠던 한때가 스멀스멀 기억나 가슴이 저릿했다.1)
현실로 돌아와 수많은 얼굴과 마주했다. 어떤 얼굴은 메말라 있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세상과 마주 선 것 같은 쓸쓸한 얼굴이었다. 다른 얼굴은 다소 과장돼 보였다. 기쁨과 안락이 지나쳐 어색했고 겸연쩍었다. 쇠약해진 얼굴도 보였다. 완벽한 물질의 노예였다. 얼굴은 멍한 표정으로 핏물 빠진 돼지머리를 들고 있었다. 또 다른 얼굴은 갈 길마저 잃어버린 듯 자신의 분신을 품에 안고 주춤거렸다.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부패 중인 시체였다. 여러 얼굴이 한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숙고에 빠져 들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눈부신 환영을 쫓다 무너져버린 상실의 부유물이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무의식을 공략해 풍요로운 미래를 세뇌시켰다. 또 개인의 욕망이 폭발하도록 조장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거세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기제로 돈이 총검을 대신했고, 부정부패가 폭력적인 압제를 갈음했을 뿐이었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배계층의 무분별한 탐욕과 횡포, 정의를 무너뜨리는 일도 계속되고 있었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정신 또한 세속화되면서 진리를 보는 눈도 멀어졌다.2)
부조리가 만연하고 인간의 도리를 부정하는 사회는 언제나 무너졌다. 자신의 뿌리를 갉아먹고 쑥쑥 자라다 어느 순간 죽어버리는 나무와 같았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 되돌아볼 시점을 이미 넘어섰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시대를 읽어 내면서 비판해 왔다. 자본주의 사회가 심어 놓은 환영 속에 떠다니는 인간의 심층을 들여다보거나 자본주의의 이면에 깃들어 있는 결핍과 타락, 퇴폐에 함몰돼 자기를 상실해 가는 사람들을 수렁에서 건져 올리려고 노력했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꼭 생각해 봐야 할 삶의 자세다.
내가 얻는 여행의 기쁨 중 하나는 세상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논평하는 눈을 키우는 것이었다. 여행에서는 수많은 길을 만났다. 넉넉하고, 고른 길도 있지만 좁고 울퉁불퉁한 길도 있었다. 어떤 길은 나이 든 노인도 쉽게 걸어갈 정도로 완만하고 평탄했지만 어떤 길은 로프를 타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가팔랐다. 그래서 여행은 여러 가지 경험이 기다렸고 색색의 사유와 명상을 불렀다. 또 여러 사람과 만나 기쁨이나 슬픔, 의미나 가치를 발견하면서 논리와 비평의 기초를 쌓게 했다.
여행의 기쁨 중에는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었다. 먹는 재미를 스스로 억압하거나 애써 부인하는 사람들을 가끔 봤다. 음식을 밝히는 게 때론 아주 미개하고 탐욕스러워 보이는 까닭이겠다. 아니면 먹는 행위를 진심으로 귀찮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몸을 움직이고 뇌를 돌릴 정도의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으로 먹는 재미를 고사했다. 어떤 사람들은 입이 까다로웠다. 고기를 먹지 않기도 했고, 과일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정말 음식 취향만큼 특이하고 깔깔한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단한 음식을 먹더라도 껄끄럽고 낯선 맛보다는 입안을 즐겁게 해 줄 맛을 누구나 선호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인생의 행복 중 하나라는 방증이겠다.
1)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다. 스스로 주인이 되기도 하고, 노예가 되기도 하면서 마지막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투쟁했다. 내가 투쟁한 것은 모두 함께 더불어 잘살아 보자는 것이지 내 인생의 짐을 덜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2) 오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완하고 비인간화되는 사회를 좀 더 사람냄새가 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사회 건설을 위한 우리 모두의 열망과 사회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과 노동을 공유하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나누고, 나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면 우리 시회는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바다에 사는 생명들은 근사했다. 갯바위에 붙어 웅크리고 자라는 우뭇가사리부터 대양을 누비는 흰수염고래까지, 바다 쓰레기들과 함께 떠다니는 플랑크톤마저도 모두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이 생명들은 생태계 안에서 저마다 자기 몫을 다하면서 나에게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줬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간직한 아름다움을 밖으로 빼내 서로 배려하고 아끼며 나누는 삶이다. 특별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아름다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다른 이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자책하지 말자. 나도 개망나니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행복을 주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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