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기세 싸움 - 착검을 한 일본군 “무슨 일로 왔소?”
수송기는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며 유구히 흐르는 한강을 저공으로 선회하다 여의도에 착륙했다. 미군사절단과 장준하 일행은 기관총을 손에 쥐지 않고 어깨에 엇비슷이 멘 채 수송기에서 내렸다. 포츠담선언을 이행하겠다고 해도 바로 당장 무기를 놓고 순순히 항복할 저들이 아니었다. 천황에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일본군들은 항복 대신 통탄의 눈물을 흘리며 자결을 선택하거나 총을 겨눌 수 있었다.
유난히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한강이 출렁출렁 물살을 일으키자 덥고 습한 강바람이 비행장으로 불어왔다. 햇볕은 시멘트 바닥을 녹일 정도로 내리쬈고, 바닥은 뜨겁게 달궈진 구들장 같았다. 장준하 일행의 이마에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발그레한 목덜미에는 땀이 흘러 옷에 스며들었다.
수송기는 주변에 일본군들이 착검한 총을 들고 사열했다. 침착하게 보일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지만 일행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매서웠다. 일본군 참모가 앞으로 걸어 나와 용건을 물었다. 미군은 일본 천황이 항복한 전단지를 보여주면서 전후 처리를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군 참모는 도쿄로부터 어떠한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며 돌아가라고 위협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둘 사이에 험악한 기세 싸움이 오가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팽팽한 긴장감을 누그러뜨린 건 일본군 대좌였다. 대좌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딱딱한 인상을 풍겼다. 언행이 몹시 신중하고 말소리도 차분해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같았다. 대좌는 미군사절단에게 그늘 쪽으로 가서 얘기를 하자고 권했다. 장준하 일행은 일본군이 제공한 맥주와 사이다를 마시며 흘러내리는 땀을 식혔다. 그러나 일본군의 거동이 수상했다. 대좌가 나타날 때부터 왠지 모르게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더니 함께 동석했던 일본군 장교들이 하나둘씩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범석 장군은 이상한 기미를 눈치채고 기관총을 손에 쥐고 대좌에게 총구를 겨눴다. 30년 넘게 전쟁터를 누비며 체득한 감이었다. 미군사절단과 장준하 일행도 모두 집총하고 여차하면 기관총을 내갈길 태세를 취했다. 일본군들도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장준하 일행을 포위하고 총을 들었다. 대좌는 적의를 내보이는 병사들을 막을 길 없으니 당장 돌아가라고 점잖게 요구하면서 일본군에게 총을 거두라고 명령했다. 이범석 장군도 일행에게 총을 내리라고 지시한 뒤 돌아갈 뜻을 전했다.
서서히 걷히는 마포 물안개 - 희미한 남산과 아득한 삼각산
대립각을 세우던 미군사절단과 일본군의 마찰은 미군사절단이 돌아가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연료가 부족해 수송기를 못 띄울 형편이었다. 일본군은 당장 비행기 연료를 구할 길 없어 다음날 보충해 주기로 했다. 장준하 일행은 본의 아니게 일본군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미군사절단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일인당 두 명씩 일본 헌병대의 경호가 붙었다. 사절단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사절단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감시하려는 의도였다.
대좌는 다다미가 깔린 방에 목욕물까지 준비하며 미군사절단을 예우했다. 저녁에는 간단한 주연 자리도 마련했다. 이범석 장군은 일본군이 권하는 맥주를 마셨다. 이 장군은 일본이 패망했으니 조용히 돌아가라고 대좌에게 충고했다. 장준하는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댔다. 김준엽이 승리의 잔을 한 번 들어보라고 권해서였다.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안인 데다 가풍이 검소하고 엄격해 절제가 생활화됐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술을 거절할 수 없었다.
장준하는 강렬하게 증오했던 일본에게 칙사 대접을 받자 기분이 묘했다. 약소민족으로서 당했던 갖가지 모멸이 이 한잔 술로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이제 민족의 원분은 모두 털어내고 튼튼한 자주독립 국가를 만드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일본군이 물러나도 떵떵거리며 사는 친일파들이 없도록, 자유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도록, 부패한 지배 계층의 무분별한 횡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면 됐다.
그는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서울 하늘 아래 어디에서 총질하고 있을 자신을 떠올렸다. 남산이나 삼각산을 숙영지 삼아 종횡무진 일본의 주요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있거나, 무지막지한 일본군의 총칼에 진즉 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
주연장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일본군 한 무리가 출입문을 발로 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미군사절단을 죽이자는 말소리도 들렸다. 주연 분위기가 급속하게 가라앉았다. 헌병대가 일본군을 막아서며 시끄럽고 어지러운 난동을 잠재우긴 했지만 주연은 곧장 끝나고 말았다.
장준하는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창문 밖을 주시했다. 처음에는 남산과 삼각산의 윤곽만 보이더니 한강 수면에 낀 물안개가 걷히자 소나무들이 다복다복 돋아 예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안도의 한숨 - 리원리, 후원자 장군
장준하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포 시가지를 걷는 모습을 발견했다. 멀리서나마 동포를 볼 수 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반가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동안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생 많았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었다. 그는 해외에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며 살았던 동포들도 자신처럼 한국 땅을 밟고 눈물을 터뜨릴 것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애국가를 불렀다. 수통에 물도 가득 채웠고, 흙 한 줌도 봉투에 챙겼다. 고국산천을 그리워하는 시안의 동지들에게 고국의 물과 흙을 만져보게 하고 싶었다.
수송기에 급유가 됐다. 수송기는 이륙하자마자 높이 떠올랐다. 최고 고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비행했다. 일본의 폭격기가 뒤따르며 총탄을 퍼부을 수 있었다. 장준하는 양손을 맞쥐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번째 시도까지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머릿속을 급습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느긋이 가져야 했다.
수송기는 연료가 불량했는지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 시안까지 날아도 충분했던 연료가 벌써 바닥났다. 기장은 일본군이 관할하는 산둥성 웨이현 비행장에 불시착했다. 일본군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수송기를 겹겹이 포위했다. 바위처럼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철통같이 지킬 뿐이었다. 이미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데다 성조기가 그려진 수송기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범석 장군은 장준하 일행에게 총을 들고 일본군을 경계하라고 지시했다. 밤에는 순번을 전해 집총 자세로 보초를 세웠다. 그래야 돌아가면서 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오랜 경험과 훈련에서 나온 원숙한 대응이었다.
일본군과의 대치는 이른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일본군이 자리를 비우고 비행장 전체 경계에 들어갔다. 그 사이 한 중국 청년이 수송기 근처로 다가와 기웃거렸다. 이범석 장군은 그 청년을 불러 일본군에게 일본은 이미 항복했으니 물러가라는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중국 청년은 리원리 장군 휘하의 유격대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청년은 산둥성에 후전자 장군도 진주해 있다고 알렸다. 이 장군은 리원리, 후전자 장군과 오래전부터 두터운 친분을 맺어 온 사이였다. 이 장군은 반가운 마음에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초소 지키는 한국인 관리자 - 포로수용소
장준하 일행은 안전을 위해 수송기에서 나오지 않았다. 식사 대용으로 초콜릿을 나눠먹으며 허기를 견뎠다. 일본의 항복 선언에도 전쟁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고, 살얼음판 같은 충돌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일본은 여태까지 저지른 죄악이 워낙 간악 무쌍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열강의 권좌에서 얌전하게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자 리원리 장군이 중국군 2개 대대를 대동하고 비행장에 도착했다. 리 장군은 부하들에게 삼엄한 수비를 지시하고 이범석 장군을 만났다. 두 사람은 적년회포에 잠기어 두 손을 마주 잡고 긴 인사를 나눴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형제를 만난 것처럼 우애를 나눴다.
리 장군은 미군사절단을 위해 웨이현 성내에 깨끗한 숙소를 마련하고, 술과 음식을 내왔다. 음식은 진수성찬이라 할 만큼 풍성했다. 테이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일행은 리 장군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말끔하게 그릇을 비웠다. 술잔이 두어 순배 오가자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리 장군도 취기가 올라 술을 돌리며 한국의 독립을 축하했다.
미군사절단에게 전통이 하달됐다. 웨이현에 대기하면서 서양인 포로수용소 상황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사절단은 트럭을 타고 30여 분을 달려 수용소로 향했다. 수용소 입구 허름한 초소에는 총을 든 한국인이 지키고 있었다. 수용소 관리자도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 경비원을 모집해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일을 시킨 것이었다.
수용소에는 선교사를 비롯해 상인, 교사, 기술자 등 600여 명이 수용됐다. 이옷에는 젊은 남자들을 끌고 가 총살을 시켰는지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이 많았다. 인도적인 대우는 없는 듯했다. 포로들은 맨발에 누덕누덕 기운 헌 옷을 입었다. 얼굴 모양과 머리카락 색깔만 달랐지 동냥질하는 걸인 같았다. 또 얼마나 못 먹었는지 황달을 앓았고, 폐렴과 피부병으로 신음하는 사람이 많았다.
포로들은 미군사절단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포로 신분을 벗고 자유의 몸이 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환호했다. 사절단은 수용인들에 대해 간단히 실태조사를 한 뒤 식량과 의료품을 먼저 보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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