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칼로 새긴 장준하

018. 장준하 일대기 05 - 나라 잃은 설움을 참다

이동권 2023. 8. 9. 23:03

일념 - 빨리 오시오, 먹어요

장준하 일행은 중국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을로 내려갔다. 일본군인 양 행세해 밥을 얻어먹을 궁리였다. 중국인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일행은 순찰을 도는 척하며 음식을 얻어먹고, 수통에 물도 채웠다. 15리 밖에 쓰카다부대가 있는 것도, 30리만 걸으면 중국군이 주둔해 있는 것도 알아냈다. 이들은 마지막 행군을 준비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일행은 주머니에 남은 돈을 모두 털어 음식과 과일을 구입하고 북쪽 산을 넘기로 했다. 산은 가파르진 않았지만 쉽게 오르내릴 경사는 아니었다. 


장준하 일행은 양지바른 자리에 앉아 배낭 속에 넣어둔 과일을 꺼내먹고 막 일어날 참이었다. 어디에선가 고함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청년들이 오라고 손짓하면서 지르는 고함이었다. 일행은 청년들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는 도망가는 게 상책이었다. 이들은 당황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는 시늉을 하며 반대쪽으로 달렸다. 중국군이든 일본군이든 자신들을 발견한 이상 끝까지 쫓아올 게 뻔했다. 중국군 입장에서는 일본 군복을 입은 적군이었고, 일본군 입장에서는 탈영한 학도병이었다. 


장준하 일행이 몸을 틀어 도망치자 청년들이 탕 하고 총알 한 방을 날렸다. 위협사격이었다. 일행은 산의 적막을 깨며 앙칼지게 울려 퍼지는 총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망쳤다.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들을 방어벽 삼아 요리조리 몸을 피하며 달렸다. 연이어 연발의 총소리가 탕탕 터져 나왔다. 콩을 뒤볶는 소리처럼 허공을 뒤흔들며 귓가에 파고들었다. 무차별적인 근접사격이었다. 일행은 몸을 숙이고 옥수수밭을 향해 달렸다. 어젯밤을 보냈던 잠복 장소에서 숨어 있다가 빈틈을 노려 몰래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지리에 익숙지 않은 산으로 올라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게 뻔했다. 


옥수수밭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장준하는 총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자 깜짝깜짝 놀랐다. 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뛰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임시정부로 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다. 그는 산길을 내달리면서 학대와 부림을 참지 못하고 도망치던 조선 시대 노비들의 심경을 느꼈다. 노비들의 삶은 탈출이 아니면 산 송장과 다르지 않았다. 정체 모를 청년들에게 쫓기는 장준하의 상황도 똑같았다. 자신도 그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의 총알받이일 뿐이었다.

731부대 - 탕~ 옥수수밭으로

장준하 일행은 어른 키만큼 자란 옥수수밭으로 들어갔다. 수염을 늘어뜨린 옥수수가 어깨에 부딪치며 싸락싸락 소리를 냈다. 일행은 바람에 넘실거리는 옥수수 사이에 몸을 숨기고 청년들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그러나 총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사방에 총을 난사하며 일행을 따라붙었다. 일행은 옥수수밭을 방패 삼아 마냥 숨어 있을 수 없었다. 옥수수밭을 몰래 빠져나와 수수밭, 콩밭, 감자밭을 가로질러 달렸다. 여기서 총에 맞아 죽으면 그대로 산짐승 밥이었고, 산 채로 잡히면 총살을 당하거나 731부대 행이었다. 


일본군은 하얼빈 일대에 세균전 부대를 세웠다. 독립운동가나 전쟁포로, 사상범, 적군 양민을 이곳에 끌고 와 세균실험과 약물실험을 자행했다. 부대에는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조직이 있었고, 이곳에서 마루타라고 불리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생체실험에 사용됐다. 생체실험은 참혹했다. 남녀 수용자에게 질병을 감염시킨 뒤 마취 없이 해부하고 장기를 적출했으며, 그 대상은 임산부나 영아도 가리지 않았다. 흉흉한 소문에 따르면 731부대는 잔인무도한 생화학 실험도 자행했다. 흑사병, 콜레라, 탄저 병원균을 담은 도자기 폭탄을 개발해 중국인 40만여 명을 학살했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큰 강이 흘렀다. 한여름의 태양을 반사하며 은빛으로 가물거리는 강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강물 앞에서 주춤했다. 뒤에서는 총소리가 들려오고 앞에서는 강이 가로막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일행은 강가를 따라 거슬러 올라갈지, 물에 뛰어들어 강을 건너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강을 건너자고 의견을 모았다. 강을 건너기만 하면 잡힐 확률도 낮아지고, 청년들이 강을 건너면서까지 쫓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나룻배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강을 타고 내려왔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도선이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자 배가 출렁하며 올랑 댔다. 그래도 사공은 중심을 잃지 않고 노를 저었다. 장준하 일행의 급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잔한 물살에 몸을 맡기고 유유자적했다.  


장준하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 나룻배를 타면 빗발치는 총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사공을 향해 양손을 흔들며 ‘태워 달라.’고 소리 질렀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처럼 필사적이었다. 

흘러내린 눈물 - 다급한 손짓

사공은 손을 세차게 흔드는 장준하 일행을 발견하고 뱃머리를 돌렸다. 강을 건너는 교통수단은 나룻배밖에 없었고, 사공은 사람이 손을 흔들면 자연스레 강가에 배를 대는데 익숙했다. 장준하 일행은 나룻배가 강가에 닿기도 전에 물속으로 뛰어들어 올라탔다. 나룻배는 물살을 가로지르며 건너편으로 향했다. 


장준하는 웬일인지 똥 누고 밑을 닦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김영록이 나룻배에 타지 않았다. 세 사람은 뒤늦게 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질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도망치기 바빠 김영록을 챙기지 못한 자괴심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나 배를 돌릴 수 없었다. 청년들이 총을 쏘며 바짝 추격하는 상황에서 뱃머리를 돌리는 건 다 죽자는 소리였다.


세 사람은 강을 건넜다. 길게 자란 수풀 숲에 숨어 김영록을 기다렸다. 총에 맞지 않았다면 분명 헤엄쳐서라도 올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시 총소리가 쩌렁쩌렁 허공에서 흩어졌다. 청년들이 나룻배를 타고 건너오면서 총을 갈기는 소리였다. 장준하 일행은 김영록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채 다시 도망쳤다. 수수밭을 가로질러 허겁지겁 뛰었다. 아랫도리는 뻑지근했고 근육은 뭉쳐 통증이 느껴졌다. 숨도 가빠졌고 두 팔도 힘이 풀려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래도 이를 꽉 물고 달렸다. 이국의 땅에서 죽는 건 이 세상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통한이었다. 


한참을 달리자 을씨년스러운 마을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소에 수레를 걸고, 보따리 짐을 짊어지고, 노인과 아이가 손을 잡고 피난을 떠나는 중이었다. 천재지변 때문에 마을을 떠나는 건 아니었다. 세간이며 이불까지 모두 싣고 가는 것을 보니 전쟁의 포화를 피해 일가족을 이끌고 나선 길이 분명했다. 부상당한 사람도 없었고, 통곡하는 사람도 없었다. 


장준하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다. 김영록을 잃고, 전쟁을 피해 피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복받치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땅바닥에 벌러덩 누워 신에게 운명을 맡겼다. 홍석훈, 윤경빈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란히 자빠졌다. 김영록이 기적적으로 살아오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장준하는 김영록의 부모를 떠올리자 두 눈에서 눈물이 좌르륵 흘렀다. 일본군에 끌려간 아들이 죽어 돌아가는 것만큼 불효는 없었다. 그는 꼭 김영록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믿어야 산다 - 한국 청년

장준하 일행은 정신을 놓고 잠에 빠졌다. 총탄을 피해 정신없이 내달린 피곤과 김영록을 잃어버린 무기력 때문이었다. 일행을 깨운 건 심장을 겨눈 청년들의 총구였다. 장준하는 총구를 보자마자 오뚝이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늑대와 마주친 토끼 새끼 같았다. 코앞에서 총구를 들이미는 낯선 사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정체불명의 청년들은 장준하 일행이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긴장을 늦췄다. 장준하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딱히 떠오르진 않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장준하는 재빨리 ‘우리는 한국 청년’이라고 밝혔다. 일본군 부대에서 탈출해 중국군 진영을 찾아간다는 얘기도 했다. 청년은 자신이 팔로군이라면서 자신의 본거지로 가자고 화답했다. 장준하는 그들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따라가지 않으면 적군으로 간주돼 사살당할 게 뻔했다. 


팔로군은 일본군과 싸운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로 일본 후방 교란과 게릴라전을 담당했다. 이들은 부농에 대한 즉결처분을 단행해 공포심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대다수 인민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3대 기율과 8항주의 때문이었다. 팔로군은 인민의 실 한 오라기도 공짜로 취하는 법이 없었고, 모든 전리품은 공유했다. 또 구타나 욕설을 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상명하복 관계를 만들지 않으며, 부녀자를 희롱하지 않았고, 포로를 학대하지 않았다. 파손한 물건은 반드시 배상했고,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며, 말할 때는 온화한 말투로 하는 게 규율이었다.


청년들은 장준하 일행을 끌고 가는 동안 소지품을 모두 빼앗았다. 폭언이나 폭행은 없었지만 장준하는 서글픈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나라 잃은 설움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비운을 참고 달려온 이 길에서 또다시 다른 민족의 총구에 유린당하는 일은 커다란 비애를 느끼게 했다. 게다가 말로는 팔로군이라지만 마적단일지 몰랐다.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은 만주 벌판에서 양민의 재물을 약탈하는 마적단 무리가 있다는 소리를 오래전부터 들은 터였다. 일단 그는 안심하기로 했다. 믿지 않으면 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