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의 악몽 - 철조망 너머…
연병장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막을 터뜨릴 것 같은 고함과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본군은 학도병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영육을 혹사시켰다. 전투훈련 시간을 무리하게 늘리거나 군가, 훈련교본 등을 외우게 하면서 학도병들이 아예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장준하는 쉼 없이 펼쳐지는 군사훈련 중에도 인근 지형지물을 관찰했고, 탈출 경로를 파악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일본군 교관에게 억지로 말을 붙여 중국군의 상황을 알아냈다. 임시정부에 가지 못하더라도 인근에 주둔한 중국군 부대로 탈출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중국도 일본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군에 입대해 일본군과 싸웠다.
장준하는 동북방으로 탈출 방향을 잡고,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아내에게는 로마서 9장 3절의 성경 구절을 인용해 탈출 감행을 알렸다. 아내는 성경 구절이 적힌 편지를 받고 남편이 탈출에 꼭 성공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일본군은 학도병들에게 탈출하면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길거리에 매어놓고 본보기를 보이겠다고 협박했다. 이들의 협박은 말뿐이 아니었다. 군법이 엄연히 존재했지만 학도병의 신변은 전리품과 같았다. 일본군 장교가 재량에 따라 처리해도 뒤탈이 생기지 않았다.
학도병들은 일본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학살사건을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 1923년 9월 1일 일본에 큰 지진이 발생하자 사회질서가 무너졌고, 우익과 좌익 사이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싹텄다. 일본 내무성은 사회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의 명령을 받은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일삼으며 일본인을 죽이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극우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 죽이기에 혈안이 됐다. 죽창과 몽둥이, 일본도, 총으로 무장하고 조선인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고, 찔러 죽이고, 총으로 쏴 죽였다. 조선인 노동자들을 밧줄로 묶어 강물에 던진 뒤 헤엄쳐 나오면 도끼로 찍어 죽이기도 했고, 조선인의 몸에 기름을 부어 산 채로 태워 죽이기까지 했다. 그 당시 학살 당한 조선인은 공식적으로 6천여 명에 이르렀다. 일본군도 자경단과 다르지 않았다. 침략전쟁에 동원된 이들에게 조선인은 전쟁에 필요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선을 넘어 - 느티나무 아래로
1944년 7월 7일 일본 ‘다나바타 마츠리’ 경축일. 형형색색의 천에 소원을 적어 대나무 가지에 걸어놓는 날이 왔다. 천황은 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을 격려하기 위해 직접 술을 하사했다. 일본군들은 술을 마시고 하나둘씩 만취했고, 학도병 막사의 점호도 불가능해졌다. 술에 취한 주번사관은 어쩔 수 없이 학도병들의 야간교육을 취소하고 15분 이내에 목욕을 마친 뒤 취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날이 왔다. 장준하는 김영록, 홍석훈, 윤경빈과 함께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목욕 시간에 철조망을 넘어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나자고 결의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조국 독립의 밀알이 되겠다는 꿈은 산산이 부서질뿐더러 목숨마저 보장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일본군과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고는 천지간이 죽은 듯이 적막했다. 철조망을 순찰하던 일본군들도 취기가 올랐는지 몇몇을 제외하고는 동공이 풀렸다. 장준하는 짙은 어둠에 몸을 맡기고 선선한 밤바람이 부는 공터를 지나 철조망으로 향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조용히,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뗐다.
장준하는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철조망을 기어올랐다. 철조망은 말뚝에 단단히 고정돼 있어 흔들리지 않았지만 철사가 얼기설기 촘촘하게 쳐 있는 데다 쇠꼬챙이가 군데군데 돋아나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미터에 이르는 철조망을 넘는데 집중했다. 촌각을 다퉜지만 다치지 않게 조심했다. 철조망을 넘은 뒤에는 고난의 뜀박질이 기다렸다. 급한 마음에 함부로 몸을 놀렸다가는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철조망을 넘고 방어호를 무사히 미끄러져 내려가 느티나무 쪽으로 엉금엉금 기듯이 달렸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장준하는 동지들이 보이지 않자 온갖 사념에 사로잡혔다. 함께 탈출하기로 했던 사람 중 한 명이 변심한 터라 가슴이 더욱 조마조마했다. 행여 탈출 계획을 미리 발설했다면 총살형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독립운동가 중에는 동지들의 배신으로 체포돼 사형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일신의 이익을 위해 동지를 배반한 것이라 이가 빠드득 갈릴만큼 분한 일이었다.
뜻밖의 실수 - 운하를 건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괴괴한 달빛이 가라앉아 정적이 감돌았다. 장준하는 나무 아래 바짝 엎드려 동지들을 기다렸다. 어디선가 뭇 짐승과 같은 발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몸을 낮춘 채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걸어오는 동지였다. 어찌나 살살 걸어왔는지 고라니가 발을 내딛는 것 같았다.
장준하는 한 명의 동지가 철조망을 넘었다는 기쁨을 뒤로하고 뛰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발각되면 자신의 탈출도 성공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곧바로 추격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땀에 흠뻑 젖은 군복이 몸에 달라붙어 등골이 다 드러나고, 연방 흘러내린 땀방울이 흙먼지와 뒤엉켜 얼굴이 미끄덩해질 정도로 사력을 다해 뛰었다.
그는 나무 사이를 헤치고, 고구마밭 고랑을 가로질러 옥수수밭에 들어섰다. 웃자란 옥수수에 몸을 감출만 하자 잠시 쉬면서 방향을 살폈다. 거기에는 이미 세 명의 동지가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포옹을 하면서 감격을 나눈 뒤 다시 뛰기 시작했다. 탈출 사실이 알려지면 추격대가 쫓아올 터였다.
눈앞에 검푸른 바위산이 펼쳐졌다. 무성한 나무와 삐죽 솟아난 바위들이 마구 뒤얽힌 산이었다. 일본군에 잡히지 않으려면 무조건 바위산을 넘어야 했다. 장준하 일행은 허겁지겁 바위산을 올랐다. 팔꿈치와 무릎이 까지고 옷이 찢어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산을 타 중턱에 이르렀다. 장준하는 몸에 밴 땀을 잠시 식힐 겸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았다. 멀리 쓰카다 부대에서 퍼져 나오는 으슴푸레한 불빛이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중국군이 주둔한 부대에 가기 위해서는 100여리를 더 달려야 했다. 장준하 일행은 바위산 밑으로, 밑으로 달렸다. 내리막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차게 달리다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걸려 미끄러지거나 자빠지길 반복했다. 일행은 30여 분을 달려 바위산 아래에 당도했다. 일행을 기다리는 것은 강물을 끌어다 댄 거대한 운하였다.
장준하 일행은 물러설 수 없었다. 뒷걱정은 일이 벌어지면 하기로 하고 서둘러 운하에 뛰어들었다. 물 깊이는 가슴 높이 정도였지만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던 장준하에게는 두려운 결정이었다.
뒷걱정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군복을 입고 운하를 건너는 바람에 성냥, 나침반 등 탈출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이 물에 젖어버렸다. 일행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목마름과 배고픔 - 위기의 순간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곧 시작될 것 같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흘렀다. 바위산을 넘고, 운하를 건넜지만 일본군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아직도 한참이었다. 장준하는 한때 조선 민족의 터전이었던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에게 쫓겨야 만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곳의 자연을 즐기며 한가롭게 거니는 방법은 조국 독립밖에 없었다.
장준하 일행은 점점 지쳐갔다. 발가락이 붓고 몸에 피로가 쌓이는 것은 그나마 참을 만했다. 입 안이 타들어 가는 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수통의 물도 바닥난 지 오래였다.
서로의 얼굴을 육안으로 뚜렷이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았다. 일행은 양지바른 조밭을 은신처로 삼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장준하는 혹시라도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허리까지 자란 조를 뿌리째 뽑아 동료들의 몸을 덮었고, 자신도 똑같이 위장한 뒤 잠을 청했다.
오전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쬈다. 젖은 군복과 땀이 뒤엉켜 온몸이 끈끈하고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장준하는 동지들보다 일찍 기상해 성경책을 들여다보다 귀를 쫑긋 세웠다. 트럭 엔진소리와 히라가나(일본어)가 얼푸름하게 들렸다. 장준하 일행을 뒤쫓아 온 일본군이었다. 일본군은 조밭뿐만 아니라 인근 수수밭까지 일일이 수색했지만 이들이 누워 있는 곳은 발견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이었다.
한낮이 되면서 살인적인 더위가 몰아치자 숨이 턱턱 막일 지경이었다. 대지를 삶아대는 열기 때문에 갈증은 더욱 심해졌고, 시장기도 몰려왔다. 장준하 일행은 탈출할 때 가지고 온 쌀을 조금씩 나눠 먹었다. 쌀이 속에서 부풀어 오르자 그만큼 갈증은 더했다. 대동강 물을 통째로 마셔도 해갈되지 않을 것 같은 목마름을 느꼈다. 몸을 식힐 방법은 단 하나였다. 일행은 알몸으로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누워 뒹굴뒹굴했다. 수색 중인 일본군 때문에 꼼짝하지 못하기도 했다.
한낮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밤이 찾아왔다. 장준하 일행은 머리를 맞대고 어디로 갈 것인지 상의했다. 한 사람의 의견보다 네 명의 의견을 모아 실수를 줄였다. 일행은 불빛이 보이는 마을이나 시야가 트인 평야를 피해 밭고랑으로, 골짜기로, 바위틈으로 몸을 숨기며 걸었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절정에 달해 오고, 다리는 천근처럼 무거웠지만 일본군에 잡히지 않기 위해 강행군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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