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칼로 새긴 장준하

015. 장준하 일대기 02 - 조국 독립을 위해 탈출을 결심하다

이동권 2023. 8. 7. 17:07

핏발 선 흰자위 - 말똥 치우기

그해 겨울은 어느 해보다 유별나게 추웠다. 대동강은 바짝 얼어붙었고, 매서운 북풍은 사정없이 귀싸대기를 잡아챘다. 일본군 부대가 위치한 평양 외곽은 더욱더 맵찬 눈보라가 요동쳤다. 온몸을 발발거려도 손발에 온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장준하는 200여 명의 학도병들과 함께 일본군 제42부대로 끌려왔다. 학도병들은 이가 갈릴 정도로 날이 찬 데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까지 밀물처럼 밀려와 흰자 위에 핏발이 섰다.


장준하는 군대가 형무소 같았다.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에 끌려와 방한조차 되지 않은 막사에서 썩어야 한다는 생각에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다. 그러나 그는 머릿속을 짓누르는 고통을 인내했다.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부대 안팎을 염탐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군의 생활습관이나 동태도 세세하게 파악했다. 언제, 어디로 탈출하면 가장 좋을지 두루두루 살폈다.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한 번의 기회를 잡지 못하면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장준하는 부대에 배치된 뒤 말발굽을 손질하고 말똥 치우는 일에 배속됐다. 장갑이 지급되지 않아 맨손으로 일해야 했다. 그는 찬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자라목처럼 목을 움츠리고 말똥을 치웠다. 얼마나 추웠는지 손이 곱아 펴지지 않았다. 사지는 부들부들 떨렸고, 발가락은 얼어 감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말똥 치우기는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힘을 쓰는 고된 일이라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연병장에서 총을 들고 군사훈련(교련)도 받아야 했다. 실전과 유사하게 벌어지는 군사훈련은 급격히 몸을 쇠하게 했다. 추운 날씨와 영양가 없는 식사,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의 원기를 꺾어버렸다. 그래서 많은 학도병들은 날마다 가족들에게 면회를 와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 군사훈련에서 빠질 수 있었다. 


학도병에게 시행된 일본식 군사훈련은 해방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949년 자유당 정권은 학원을 통제하고, 학생들을 관변 단체로 이용하기 위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다. 학도호국단은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폐지됐다. 그러나 박정희는 1975년 학생회를 없애고 다시 학도호국단을 부활시켰다. 유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조직이 필요했다. 이후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따라 1985년 대학교, 1986년 고등학교에서 학도호국단은 해체됐다. 

엄지손가락에 새겨진 훈장 - 그와 나의 대결의식

장준하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동상이 걸려 불그뎅뎅하게 부었다. 장준하뿐만 아니라 많은 학도병들이 지독한 동상 때문에 통증을 호소했다. 동상은 예견된 일이었다. 혹한이 몰아지는 벌판에서 벌어지는 장시간 노동과 군사훈련이 낳은 결과였다. 


장준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밤잠을 설쳤다. 손등은 곯아버린 무처럼 혈기를 잃은 지 오래였고, 진땀은 통증이 일 때마다 등골을 타고 쭉 솟구쳤다. 그는 동상에 걸린 엄지손가락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성경책을 꺼내 잃었다. 동상에 걸린 아픔이 마치 나라를 잃은 민족처럼 느껴져 참고 이겨 내려고 애썼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를 대신해 궂은일까지 도맡아 해 주는 동료들의 믿음에도 보답해야 했다. 그러나 동상은 제때 처치하지 않으면 살과 신경이 썩어 문드러져 절단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는 나흘 동안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의무실을 찾았다. 


일본 군의관은 마취 없이 장준하의 생살을 메스로 찢어 고름을 짜내려고 했다. 그러나 고름이 아니라 붉은 피만 뚝뚝 떨어졌다. 군의관은 계속 고름을 찾기 위해 칼로 무를 베듯, 살코기를 저미듯 엄지손가락을 쓱쓱 난자질을 했다. 아무런 죄의식은 없었다. 의사로서의 실력을 입증하려는 것처럼 고름만 찾으려고 했다. 군의관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통증을 꿋꿋하게 참아 내는 장준하를 보면서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장준하는 뒷머리가 쭈뼛이 서도록 아팠지만 입술을 꽉 물고 참았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고 군의관과 맞섰다.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피를 바친 애국지사들의 고난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처럼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일제와 맞서고 싶었다.


장준하는 흉한 흉터가 남은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졌다.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청춘의 애통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골쇄신해 싸우겠다는 남아의 결심이 훈장처럼 자신의 엄지손가락에 새겨진 것이라 생각하며 미소로 변용했다. 


며칠 있으면 일본군 제42부대에서 중국 전선으로 파견할 학도병을 뽑는 날이었다. 장준하는 파견 학도병에 뽑히면 군영을 탈출해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비교적 쉽게 찾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동상에 걸린 오른손이 걱정이 됐지만 의지만 확고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다.

내팽개친 자존심 - 굴욕

기상나팔 소리가 울리자 연병장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장준하는 수척해진 몸을 굼적굼적 일으켰다. 오른손을 감싼 하얀 붕대는 길게 늘어뜨려 목에 걸고 연병장으로 향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는 대낮처럼 밝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본군 부대장은 정렬한 학도병 사이를 거닐며 점호를 시작했다. 부대장은 붕대를 감고 나타난 장준하를 바라보면서 실낱같은 양미간을 찡그렸다. 장준하는 부대장에게 의연한 목소리로 ‘중국 파견 부대에서 싸우게 해 달라.’며 경례를 붙였다. 부대장은 의아해했다. 모두들 파견에서 빼달라고 뇌물을 바치거나 향연을 베풀기 바쁜 와중에 오직 장준하만이 보내 달라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부대장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장준하를 추켜세우며 허락했다. 그의 승인에는 어떤 시련이 있을지 모르는 길, 어쩌면 죽음과 마주하는 상황조차 감내해야 한다는 묵언의 조언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장준하의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탈출이었다. 그는 자신의 뜻을 아내에게도 알렸다. 장준하는 부대로 면회 온 아내에게 매주 편지를 보낼 것이며, 그 편지들 중 성경 구절로 끝나는 편지를 받으면 자신이 일본군 부대에서 탈출해 임시정부로 간 줄 알라고 일렀다.


일본군들은 폭력과 굶주림으로 학도병들을 제압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선심 쓰듯 던져주며 받아먹게 했다. 학도병들은 음식 앞에서 민족의 자존심까지 사정없이 내팽개쳤다. 하이에나떼처럼 우르르 몰려들어 짐승 사료 같은 음식을 두고 다퉜다. 장준하는 공부 꽤나 했던 지식인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며 한국인의 품위를 더럽히는 행동거지에 심한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배고픔을 강요하고, 죽음을 강요하고, 짐승이기를 강요하는 일제의 만행에 모욕을 느껴 홀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일본군이 먹다 남긴 음식은 먹지 말자며 ‘잔반불식동맹’을 만들었다. 아무런 의식 없이 잔반을 주워 먹기 바쁜 학도병들에게 민족의 긍지를 심어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누렇게 빛이 바랬다. 음식을 먼저 차지하려고 옥신각신하는 실랑이는 매일매일 반복됐다. 


장준하는 중국 쉬저우 부대로 파견 나간지 3개월 만에 다시 규율이 세고 감시가 삼엄한 쓰카다 부대로 전속됐다. 학도병들의 탈출이 늘어나자 탈출 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쓰카다 부대로 학도병들을 모두 전출시킨 것이었다. 그는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암담했지만 탈출은 그대로 감행하기로 했다. 

수포로 돌아간 쉬저우 탈출 - 하늘의 별이 차갑게 빛났다

장준하가 일본 쓰카다 부대로 가기 전이었다. 그 당시 쉬저우 부대에서 학도병 예닐곱 명이 탈영한 뒤라 일본군들이 학도병들을 위협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한국인 출신 일본 장교도 마찬가지였다. 탈출병이 생기면 칼로 베어버리겠다며 학도병들을 강박했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이었다. 장준하는 겸허와 우애가 아니라 오만과 배신이 일상화된 한국인들의 친일 언행에 적잖게 분노했다. 하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참고 참았다. 탈출에 성공해 임시정부로 가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했다.


장준하는 탈출에 성공하기 위해 장교들의 호감을 살 기회를 살폈다. 일본군 선임들의 반인륜적이고 파렴치한 행태를 참지 못하고 탈출을 감행하려다 일본군에 충성하기 위해 마음을 돌렸다는 식의 각본을 짰다. 일본군은 학도병들을 대할 때 오만불손하기 그지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청소나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지 않았다고 욕설을 남발했다. 마치 짐승을 훈련시키는 것처럼 매서운 눈초리로 얼차려도 돌렸다. 


장준하에게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찬스가 찾아왔다. 일본군 상등병이 그에게 식판이 더럽다고 트집을 잡았다. 장준하는 가슴에서 울분이 솟구쳤다. 자신에게 괜한 트집을 잡아 들볶는 건 견딜 수 있었지만 일본군의 행태가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노기가 어렸다. 그러나 그는 끓어오르는 울분을 가라앉으며 일본군의 지시대로 따랐다.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 


장준하는 불침번을 교대한 뒤 내무반장을 찾아가 일본군 상등병에게 당한 모욕을 전부 일러바치면서 탈출하려고 했으나 내무반장님의 애정과 보살핌을 배신할 수 없어서 그냥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무반장은 장준하의 계교에 넘어가 상등병을 매질한 뒤 3일 동안 영창에 보냈고, 장준하에게는 무한한 신임을 보냈다. 내무반장의 신임은 장준하의 탈출에 지대한 도움이 될 일이었다. 장준하는 내심 기뻤지만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탈출사고가 계속 발생하면서 장준하는 쓰카다 부대로 전속됐고,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장준하는 쓰카다 부대로 떠나기 하루 전 불침번을 서면서 밤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밤이 깊어 갈수록 더욱 차갑게 빛나는 별들을 쳐다보면서 서러운 마음을 달랬다. 생사기로에 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곱씹고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