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래 그 영화

위플래쉬 - 최고란 명성인가 평판인가, 데미안 셔젤 감독 2015년작

이동권 2022. 10. 28. 00:29

위플래쉬(Whiplash), 데미안 셔젤(Damien Chazelle) 감독 2015년작


사람들은 대부분 최고가 되길 갈망한다. 그러나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삶의 목표를 ‘최고’가 아니라 ‘최고가 되는 과정’에 둔다면 관계없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활화산 불구덩이다. 자신의 몸이 탈 줄 모르고 뛰어드는 불나방이다. 이 불구덩이로 뛰어들 자신이 없다면 최고이고 싶은 꿈은 접는 게 좋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멋진 음악이 있다. 이 음악은 어떻게 탄생될까? 훌륭한 뮤지션과 작곡가, 지휘자가 만나야 멋진 음악은 만들어지겠다. 그럼 훌륭한 뮤지션과 작곡가, 지휘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재주가 있으면 조금은 쉽겠지만 뼈를 깎는 각자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명검도 대장장이가 뜨거운 쇳덩이를 꾸준하게 두드리고 다듬어야 만들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충격이 필요하다. 마음에 충동질을 일으키고, 진실로 갈망하도록 만드는 자극이 필요하다. 영화 <위플래시>는 이 자극에 대해 말한다. 그 방법이 꽤 파괴적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는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얼마나 많은 변수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최고가 되려면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대로 타고난 재주와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재주가 다 같지 않으니 노력 또한 달라진다. 노력의 가장 큰 지지자는 ‘열정’이다. 열정은 욕망과 다르다. 욕망은 명성을 부른다. 물론 명성은 얻기도 힘들고, 한 번 명성을 얻으면 유지가 되기 쉽지만 명성은 꺼지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평판이다. 평판은 체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가 되는 것은 평판을 얻는 것에 둬야 맞다. 

주인공 앤드류는 음악대학 신입생이지만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어떤 고통도 이겨낼 각오가 돼 있다. 그는 재즈 뮤지션 중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플렛처 교수에게 발탁돼 그의 밴드에 들어가지만 상상을 초월한 폭언과 학대가 기다린다. 플렛처 교수의 교육법은 음악가로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집착을 끌어내는데 집중한다. 그것만이 진정 최고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불완전함이 뒤따른다. 주위 사람이나 환경, 돈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갖가지 충돌은 벌어진다. 그러나 불변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는 최고는 없고, 노력은 삶을 유쾌하게 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고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불편하고 진부하며, 가끔은 너무도 모질어 경멸스럽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예술의 진실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진실하고 권위 있는 예술은 노력과 별도로 인간의 삶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최고는 오직 기교와 명성만 쫓는다. 예술가로의 최고는 결국 유명해지는 것일까. 아니다. 삶은 여러 방향이 있다. 그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에 집중하고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쨌든 최고가 되려면 우선 위험을 감내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명성을 얻은 뒤에도 겸손하고 공들이면서 평판을 얻어야 한다.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드럼솔로였다. 드럼 스틱이 마치 춤을 추듯이 빠르게 움직이며 심장을 움켜쥔다. 감상 모드를 깨는 것은 언제나 제자들을 닦달하는 교수다. ‘더 빠르게’ ‘더 느리게’, ‘더블 타임 스윙’ 등을 외치며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욕은 기본이다. 짜대기도 날리고 가끔은 의자도 던진다. 영혼까지 멍들게 하는 압박도 서슴지 않는다. 이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제자까지 생긴다. 하지만 모두들 최고가 되기 위해 이를 감수한다. 그런 교수법이 싫으면 그만하면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될 일이지만 학생들은 저항하지 못한다. 경쟁에서 떨어지면 인생도 끝나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플리쳐 교수는 계속해서 최고의 밴드를 꿈꾸고, 학생들에게 최고를 각인시킨다. 최고가 되려는 목표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질한다. 이 영화의 제목 ‘위플래쉬’는 ‘채찍질’이라는 뜻으로, 영화 속에서 밴드가 공연하는 재즈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와 함께 이 영화에서 ‘카라반’이 연주된다. 마지막 숨을 죽이듯 몰아치는 드럼은 정신까지 멍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