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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잔디협회 - 한국 천연잔디의 요람, 장성에 가다

이동권 2023. 3. 10. 20:56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잔디밭을 천천히 걸었다. 잔디의 푹신한 촉감이 발아래에서 느껴졌다. 구르고 싶을 정도로 고운 잔디였다. 아우라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기품이 곳곳에서 흘러내렸다.

 

멀리서 세찬 바람이 불어와 잔디를 뒤흔들었다. 육중한 농기계는 연신 왕래하며 잔디를 뿌리 끝까지 짓눌렀다. 그럼에도 잔디는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서서 제 모양을 유지했다. 가까이에서 잔디를 보니 옆으로 뻗어나간 줄기가 길고, 많았다. 여러 사람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처럼 짱짱했다. 모진 비바람과 압력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의 비밀은 거기에 있었다.

 

어떤 환경서도 강한 적응력과 생명력

 

장성은 국내 최고 품질의 잔디를 생산한다. 여러 대를 이어 내려온 잔디 재배 노하우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품종과 용도에 맞은 생산 인프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기장용부터 단독주택용까지 여러 종류의 잔디 생산이 가능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잔디를 재배한 곳이 장성이기 때문이다. 그 세월의 무게는 무려 30년이 넘는다.

 

잔디는 말끔하게 손질돼 있었다. 출하가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바닥은 평평했다. 잔디를 심기 전부터 토지를 탄탄하게 다진 결과였다. 토심도 깊어 보였다. 잔디는 수확 시 흙과 함께 잔디를 떼어 내기 때문에 복토가 필수다.

 

잔디 깎는 농민

 

잔디를 깎던 한 농민은 “장성은 흙이 깊어 여러 번 잔디수확이 가능하다. 여러 번 잔디를 떼어냈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장성에는 비가 적당히 내려 따로 물을 줄 필요가 없다. 잔디를 키우기 알맞기 때문에 장성이 최대 잔디 생산지가 됐다고 말했다.

 

장성중지는 다른 지역의 잔디보다 경쟁력이 뛰어나다. 모래와 점토, 미사가 섞인 황토에서 자라기 때문에 어떤 토질에도 강한 적응력을 유지한다.

 

현장에서 만난 잔디 재배 농민들은 “장성중지는 밀도가 높고 토질이 좋아서 뗏장 회전율이 1년에 1번 될 정도로 잘 자란다”면서 “‘떡시루 잔디(논에서 자란 잔디)’라 뗏장 강도도 강하다”고 소개했다.

 

장성중지의 무궁무진한 미래

 

장성에서는 여러 품목의 잔디가 생산된다. 그중에서 장성중지는 공원이나 정원, 학교 운동장용으로 그만이다. 사시사철 푸른색이 필요한 스포츠경기장이 아니라면 사계절마다 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장성중지가 으뜸이다. 장성중지는 봄과 여름에는 청신한 분위기로 타오르고 가을과 겨울에는 황금빛 변해 색다른 감흥을 연출한다. 사락거리는 감촉이 우수하고 전체적인 몸맨두리가 아기자기해 골프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품종으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근래 장성중지는 도시녹화와 거주환경 조경용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잔디보다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서양잔디는 보기에 아름답다는 평도 있지만 발로 밟아 뿌리가 상하면 죽는 경우가 있다. 또 서양잔디는 예초기를 돌린 후에 찌꺼기를 제거해주지 않으면 병에 걸리며, 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면 초토화되는 일도 발생한다. 반면 장성중지는 뿌리가 강하고 번식력이 뛰어나 어떠한 악조건에도 살아남아 번식한다.

 

짙푸른 잔디가 아기 담요처럼 포근해 보였다. 어찌나 부드럽고 섬세한지 넓은 잔디밭이 하나의 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잔디밭을 바라보는 농민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잔디 가격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그는 “요즘 잔디가격이 내려서 걱정”이라며 “재배면적이 늘었지만 골프장과 건설현장 수요가 감소하면서 가격하락을 이끌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1헤배당 최소한 5천 원 정도는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보송보송한 잔디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장성잔디협회 관계자도 “통일밖에 해답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어렵다”면서 “이듬해는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장성군과 장성잔디협회, 잔디 재배 농가의 단합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품종발굴과 고품질 잔디생산, 잔디생산기술교육도 끈기를 갖고 추진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판로 개척이다. 현재 천연잔디로 운동장을 조성한 학교와 빌딩 옥상에 조성된 공원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장성중지의 미래가 무궁무진하다는 반증이다.

 

 

수확한 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