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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 무기를 들어라, 정성복 감독 2014년작

이동권 2022. 10. 27. 20:06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1789 Les Amants De La Bastille), 정성복 감독 2014년작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일까 저어했다. 로맨스가 섞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상업 뮤지컬의 한계겠다. 

아니었다. 뮤지컬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프랑스혁명의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계급투쟁, 더 나아가 시민혁명의 가치를 옹골차게 그려냈다. 

내용도 섬세했다. 혁명 조직 안의 다툼까지 밖으로 꺼내놓으며 프랑스혁명의 의미를 진중하게 되살렸다. 예를 들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과 집안 좋은 부르주아 대학생의 갈등에서 '혁명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을 강조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식이다.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뮤지컬 공연 실황을 녹화한 3D영화다. 세계 최정상의 유럽 뮤지컬을 극장에서 싼 가격으로 본다는 생각.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무대 위 현장감과 감동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다.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원판과 같은 생동감은 애초에 미디어의 성격이 다르니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감동은 제대로다. 객석에 앉아 있으면 보지 못할 세세한 감정표현, 시민의 절박한 마음까지 생생하고 실감 나게 그려낸다. 공연을 더욱 현장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 각도와 연출에도 신경을 쓴 티가 난다. 

섬세하고 장대한 음악과 배우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도 압도됐다.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 없다. 뭔가 근사하고 화려하며 노래와 무용에 도통한 이들이 한바탕 놀고 나간 것 같다.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 중간중간에 핏기 잘잘 흐르는 두 젊은이의 애절한 사랑을 삽입한 장면도 마음을 후벼 팠다. 그 혼란 속에 싹튼 연정이 주는 감동이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거른다. 혁명이 벌어지는 와중에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비상식적인 집념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삶이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어떻게 인력으로 막을 수 있나. 또 평범한 날보다 빛과 향이 온 천지를 감쌀 때 더욱 깊은 환상에 빠지듯, 사랑이라는 감정도 열정이 가득한 일에 투신할 때 더욱 깊어지고 만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더러운 피를 물처럼 흐르게 하자"
"바스티유로 진격하라"

직접적이고 민중을 대변하는 강렬한 대사들이 눈에 거슬린 사람도 있겠다. 이런 사람에게 이 뮤지컬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자유의 의미를 왜곡해 무조건 폄훼하거나 혁명이라는 단어에 두드러기가 돋는 사람도 이 뮤지컬을 멀리하길 권한다.  색안경을 벗고, 이타적인 삶과 사랑의 의미, 프랑스혁명의 역사와 가치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뮤지컬 막바지에 수많은 사람이 죽음으로 항거해 프랑스 혁명을 이뤄낸다. 그리고 프랑스 시민은 강렬하고 뜨거운 목소리로 인권선언을 제창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자유권과 재산권, 신체 안전에 대한 권리와 억압에 대해 저항한다"
"누구든 정치 종교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타파를 위한 계급혁명이자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시민혁명이었다. 왕과 귀족, 성직자들은 특권신분을 유지하며 평민층의 노동과 납세에 기생했다. 프랑스 국민은 사치와 향락에 젖어 나라의 재물을 탕진하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절대왕정 ‘루이 16’세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쟁취한다.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프랑스 뮤지컬 계의 거장 도브 아띠아와 알베르 코엔 콤비의 신작이다. 두 사람은 십계, 태양왕, 모차르트 락 오페라 등의 걸작 뮤지컬을 탄생시켰다. 

무대는 한눈을 파게 두지 않는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려한 무대 연출과 발레를 응용한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퍼포먼스에 눈이 즐겁다. 한 번만 들어도 귓가에 맴도는 팝 스타일의 뮤지컬 넘버도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앨범이 나왔다면 한 장 구매하고 싶다는 욕구를 부른다. 특히 이 뮤지컬은 프랑스 시민의 분노와 혁명의 기운에 저절로 가슴이 벅차 올라 뜨거워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