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푸르다. 연둣빛 신록들이 번지고 시원한 바람은 짜릿한 기쁨을 전한다. 청잣빛 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풀어준다. 하얀 깃털 구름은 벌써부터 길안내를 하겠다고 멀찌감치 앞장선다. 사람들은 여행을 한가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폄훼한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초록빛 나무가 없는 곳 없고, 스쳐가는 신선한 바람이 피부에 닿지 않는 곳 없다. 일상이 곧 여행이다. 꼭 먼 곳에, 돈 들여가는 것이 여행은 아니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최영장군묘는 ‘고양동누리길’에서 고양향교, 중남미문화원, 선유랑체험마을, 벽제관지와 함께 꼭 둘러봐야 할 고양의 명소 중 하나다. 하지만 감안해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길 곳곳이 꽤 을씨년스럽다. 일행과 함께 동행하고, 낮에 들려보길 권한다. 반면 최영장군묘는 지역 문화재이다 보니, 보존이 아주 잘 돼 있다.
구파발에서 30여 분을 달리면 드라마 <정도전>에서 고려 왕실의 충직한 신하이자 최고의 장수로 그려진 최영장군의 묘역이 나온다. 드라마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이지만 자신이 꿈꾸던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정적에게 제거된 정치가 정도전의 삶을 그린 드라마다. 정도전과 이방원은 갈등이 많았다.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하는 왕도정치를 표방했지만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에 바탕을 둔 왕조국가를 지향해 서로 마찰이 많았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다. 요동을 정벌하라는 왕명을 거역한 이성계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쿠데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장 세력을 등에 업고 개경에 들어와 정권을 탈취했다. 그 당시 최고 권력을 갖고 있던 최영장군은 이미 군 대부분을 장악한 이성계와 맞서지 못했고, 이후 참형됐다.
최영장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다. 원래 이 말은 장군의 아버지 최원직이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었다. 최영장군은 성품이 강직하고 올곧아 아버지의 유언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최영장군은 외적을 막고 고려 왕실을 보호했으며, 고위관직에 있을 때도 청탁이나 뇌물 사건에 휩쓸리지 않았다. 게다가 청렴하기도 해 백성으로부터 매우 존경을 받았다. 최영장군의 인기는 고려가 멸망한 뒤 민간 무속 신앙으로 이어졌다. ‘최영장군’은 목숨과 태평을 관장하는 신으로, 지금도 무속에서 가장 많이 모시는 신령 가운데 하나다.
현재 최영장군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돼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이 묘는 고려시대 사각무덤 양식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으며 독특하게 뒤편에 부친 최원직의 묘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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