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이 음악 좋다

김오키 -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인간의 자유 권리 평화

이동권 2022. 10. 13. 23:44


애절한 슬픔이 매절 스며 있다.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질 않는 노래다. 그토록 진지하고, 엄숙하고, 고독한 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탄식하듯, 공기를 굴려내는 소리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러닝 타임 11분 55초. 입술을 잔주르며, 미간을 찌푸리며, 음 하나하나를 귀에 꽂았다. 

처음에는 짧고 굵은 마디가 계속되며 치달아오르다 서서히 낮은 음조로 읍소한다. 그 순간 가난한 현실에서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으며 애처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애환이 가슴을 통통 친다. 그러다 음악은 땀과 피와 먼지가 엉킨 채 격정을 향해 솟구친다. 그 어떤 즐거움조차 느낄 수 없는 고통이 세상에 대고 질러대는 통곡의 소리다. 

현실의 아픔 앞에, 영혼의 불멸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오키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김오키는 춤을 추던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흑인 음악을 좋아했고 비보이 활동을 하며 젝스키스, 구본승 등의 백댄서로 춤을 췄다. 춤을 추다가 연습실에서 잠이 들었고, 깨어나면 다시 몸을 음악에 맡기는 일상을 보냈다. 자유롭기 위해 선택한 춤이었지만, 그것이 점점 자신의 몸을 틀 안에 가두고 있다고 회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2002년 색소폰을 들고 재즈에 입문한다. 

그가 재즈에 입문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였다.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고자 춤을 그만두고 새롭게 선택한 장르인 재즈는 도리어 오랜 전통과 체계를 가진 엄숙한 세계였다. 한국에서 재즈의 전통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과 프리 재즈라는 장르를 고려하더라도 재즈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데에는 기존 인물들과의 교류 등 일반적인 과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김오키는 독학으로 색소폰을 연주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밴드를 이루어 음악을 만들며, 기존의 관습을 비아냥거리기라도 하듯 도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2009년부터 재즈 클럽 무대에서 연주했다. (물론 현재는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타악기 연주자 박재천이 이끄는 집단 즉흥 연주 프로젝트 SMFM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SMFM에서 만난 베이시스트 김성배와 함께 독립 레이블인 일일 사운드 IL IL Sound를 만들고, 2013년, 자신의 첫 앨범인 <천사의 분노(Cherubim’s Wrath)>(2013)를 발표했다. 그는 이 앨범으로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최우수 연주’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