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한용운 겨레말큰사전 편찬실장 - 체제 통일 이전에 언어 통일 해둬야

이동권 2022. 10. 7. 22:04

한용운 겨레말 큰사전 편찬실장


반세기 넘게 분단이 고착되면서 남북의 어휘는 많이 달라졌다. 어떤 말은 제주 방언처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통역이 필요할 정도다. 학자들은 2005년부터 남북 어휘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 ‘겨레말큰사전’ 만들기를 시작했다. 남북과 해외동포들이 사용하는 겨레말을 총 집대성한 사전이다.

겨레말큰사전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故 문익환 목사는 평양을 방문해 ‘통일국어대사전’ 편찬을 제안했고, 김일성 주석이 이에 동의해 사업의 초석이 다져졌다. 하지만 국내외 사정으로 진전이 없다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2005년 첫 삽을 뜨게 됐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 겨레가 함께 이용할 사전인 동시에 언어의 ‘통일’이라는 중대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교류가 전면적으로 단절될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남북공동 편찬회의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징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남북공동 편찬회의도 전면 중단됐다.

겨레말큰사전 작업에 열의를 다해왔던 한용운 겨레말 큰사전 편찬실장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부 조치다. 따를 수밖에 없다. 편찬 사업이 정치적인 문제로 중단됐지만 하루빨리 다시 시작되길 바란다. 사전은 집 짓는 일과 같다. 3년 있다 집을 다시 지으면 부실한 집이 되듯이 편찬 작업도 지속성이 중요하다. 남북 어휘의 이질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60여 년의 긴 세월을 왕래 없이 생활한 결과다. 남북 의사들은 함께 수술을 진행할 수 없고, 남북 건축가들은 함께 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 남북의 언어 차이는 오랜 기간 동안 진행돼 왔고, 그 차이가 체제와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단번에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체제 통일 이전에 착실히 언어 통일을 위한 작업을 해둬야 한다. 이것이 분단 상황이지만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그동안 남북 학자들은 ‘겨레말큰사전’ 편찬 일정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남북 관계 악화로 편찬 사업은 중단됐고, 편찬 일정 조정도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사업이 연장된다. 국회 표결만 기다리고 있다. 여나 야나 90% 이상 찬성해서 시작한 사업이다. 별다른 이견은 없을 것이다. 현재 해결해야 할 낱말이 30만 개가 남아 있다. 1분기당 2만 개 정도를 소화한다. 1년이면 8만 개를 해결할 수 있다. 편찬 작업을 완료하고 책까지 내려면 최소한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용운 실장이 처음 편찬 사업에 참여할 때는 학자로서 개인적인 호기심이 컸다. 굵직한 사전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가 기존의 사전과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일러두기로 편찬될 사전 편찬을 앞두고 지적 흥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편찬 작업에 들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개인의 호기심보다 민족을 위한 책무를 더욱 크게 느꼈다.

“평양을 방문하고 북측 선생님들을 뵈면서 꼭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은 민족을 위한 일이다. 내 전공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북한 학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북에서는 한 번 그 일을 하면 끝까지 한다. 정년이 없다. 그분들은 이 사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명감이다. 그런데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사전 편찬 내적인 문제는 학자들이 충분히 합의해서 풀 수 있다. 그러나 사전 편찬 외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편찬 작업도 난제의 연속이다. 같은 말이지만 뜻이 다르거나 남북 한쪽에서만 쓰는 단어들이 있다. 이러한 간격을 좁히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남북 학자들은 편찬 지침을 만들었다. 남북의 어휘 차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세부적인 내용을 정해, 뜻에 차이가 있으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남북 어느 한쪽에서 사용하면 모두 사전에 수록하기로 했다. 남측의 주민등록증도 표제어로 수록하고, 북측의 공민증도 표제어로 수록하는 식이다. 하지만 혁명정부나, 혁명동지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이념적인 낱말은 수록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언어를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보아 적극적인 언어 정책을 쓰지 않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을 교육하기 위해 적극적인 언어 정책을 펼친다. 남북의 어휘 차이도 이러한 언어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다. 북측의 경우 혁명정부, 혁명정신 등의 낱말들을 인위적으로 많이 만들었다. 또한 동무처럼 기존의 낱말에 이념적인 뜻을 추가했다. 겨레말큰사전에는 이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낱말이나 뜻은 사전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객관적으로 낱말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문화예술계는 교류를 통해 통일의 물꼬를 터왔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 또한 정치나 경제 못지않게 서로 신뢰를 다져나가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그래서인지 한용운 실장은 말미에 두 가지를 입이 마르게 강조했다. 하나는 남북 학자들이 함께 기거하며 편찬 사업을 할 수 있는 겨레말의 집을 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겨레말큰사전 완성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상설 기구를 설립하는 일이다. 시대가 변하면 말과 글도 따라서 변하는 까닭이다.

“집필 작업이 완수되면 교정교열을 봐야 한다. 남북이 함께 같은 공간에 숙박하면서 일을 했으면 한다. 개성에 겨레말의 집을 지으려다 무산됐다. 1년에 4번 정도의 만남으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수시로 만나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또 겨레말 큰 사전을 관리하는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 사전 편찬이 되더라도 깁고 더하는,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완성됐다고 끝나버리면 안 된다.”

남북은 모두 한글을 기념하는 날이 있다. 남한은 한글을 반포한 10월 9일, 북한은 한글을 창제한 1월 15일이다. 남북이 교류 없이 지낸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편찬 사업으로 한글날까지 통일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서로의 한글날을 알고 기념하는 것은 나쁠 게 전혀 없다. 이후 상황은 지켜볼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