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하리수 배우 - 다 되는데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은 안돼?

이동권 2022. 10. 7. 20:43

하리수


잘 웃고 밝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만 같았던 일들이 많았을 테지만 강하고 의연했다. 여태까지 헤쳐왔던 척박한 길에 비하면 앞으로의 길은 비교적 평탄할 것이다. 모이고 뭉치고 발언하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는 조금씩 변하게 돼 있다. 아니, 성소수자들의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갈 길은 험난하다. 하리수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14번째로 열리는 퀴어 축제장에서 하리수 배우를 만났다. 하리수는 무대에 서서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당신과 함께 살고 있다"고 외쳤다. 퍼레이드 차량에도 착석해 대중과 눈을 맞추며 퀴어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들이 지독하게 손가락질을 할 때면 그만 나서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까지 못되게 굴 때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누군가는 나와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된다.”

성소수자들이 대중 앞에 나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성소수자의 인권과 평등권은 회복된다. 대중들은 여전히 하리수와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활동을 곁눈질하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이들이 마음속에 품은 희망을 실현해가는 여러 활동들이 모여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차별을 없애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스피노자가 내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것처럼.

 

차별금지법 대상에서 성소수자가 빠졌다. 달리 말하면 성소수자는 여전히 차별을 받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악’이라는 소리다. 해외에서는 동성결혼을 서둘러 합법화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결혼의 조건을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두 사람의 결합으로 수정했다. 인간의 행복을 성적 지향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변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차별금지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2000년 성소수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이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당시 제기됐다. 이것을 법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강제하지 않으면 성소수자들의 불이익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에 나온 복안이다. 그러나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으나 보수 개신교 등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꼬리를 내렸고, 2013년 2월에도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지만 같은 이유로 두 달 만에 철회되고 말았다. 하리수는 기가 막히다. 당신들이 왜 무슨 자격으로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폭언과 폭행, 성추행과 성폭행 등 불평등한 차별을 당해왔다. 나 같은 경우도 이렇게 표현해서는 안 되지만 정말 마음이 아파서 죽고만 싶었다. 어디를 가든지 차별은 많다. 차별금지법에 성소수자들만 뺀다는 건 진짜 차별하는 것이다. 다 되는데 너만 안 된다고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하리수는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기심, 자신과 다르면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오만을 꼬집었다.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차별을 더욱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면 단순한 색안경이나 벽견이 아니다. 거의 무지에 가깝다.

“1995년 성전환수술을 받기 전에 여성 호르몬 주사를 끊었다. 이후 호르몬에 관한 약이나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연예계에 데뷔해 활동할 때 스케줄 때문에 바쁜데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보험을 들어놓으면 나쁠 게 없으니까 바빠서 서둘러 하겠다고 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 호르몬 주사를 맞기 때문에 보험가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제가 호르몬 치료를 한 것을 봤냐고 물었다. 호르몬 주사는 수술 받기 전 6개월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고 따졌다. 편견이다.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무조건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들 식의 판단이다. 사람들은 자기들 밖에서 누군가가 굶어 죽어도 모르고 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법안 입법이 필요하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도 권고했다. 하지만 한국의 실상은 성적 지향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머지않아 새로운 가족 형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말을 맺을 것이다. 아빠, 엄마, 아들, 딸로 이뤄져야 한다는 가족의 굴레, 법적 테두리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앞서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