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을 만나면 늘 반갑다. 산이 주는 특유의 넉넉함 때문이다. 산은 얽히고 뒤엉킨 세상사가 어떻게 흘러가든,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참으로 넓은 품이다.
권중효 씨는 힘든 일을 금방 마치고 왔는지 어깨너머로 피곤이 뚝뚝 떨어졌다. 쌀쌀한 날씨에도 뒷목을 적신 땀냄새가 간간이 배어 나온다. 따뜻하게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은 무겁고 딱딱했으며, 거친 자국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노동의 냄새였으며, 아름다운 사람의 향취였다.
그는 언제나 등산복을 의젓하게 입고 다닌다. 시간과 장소에 거리끼거나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경제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등산장비만은 좋은 제품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산에 계속 다니려면 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좀처럼 산에 가기가 쉽지 않지만 언제나 마음은 산에 있다.
"산은 평등합니다. 산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가면 주머니 사정이야 그대로 드러나겠지만, 산에서는 그런 게 없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힘들고 어려운 것은 마찬가집니다. 열 사람에게 한 그릇의 밥밖에 없더라도, 산에서는 함께 나눠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권 씨의 직업은 '로프공'이다. 암벽, 빙벽 타기를 생활로 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적성을 잘 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밧줄에 의지해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로프공'은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사람을 말한다.
그의 말로는 암벽이나 빙벽을 탈 때보다도 안정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에 잠시 한눈을 팔면 떨어져 죽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권 씨는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은 잡초 같은 생명력이 있다"고 걱정하지 말란다.
권 씨는 참으로 어렵게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중퇴. 그 시절에는 일주일에 두 번 도시락을 싸갔는데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그마저도 가져가지 못했다. 창피한 마음이 든 그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공터를 방황하다 집에 돌아가곤 했으며, 그 뒤 집안 사정이 더욱 나빠지자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나서 야구장 볼보이부터 시작했습니다. 테니스장에서 롤러질도 하고요. 전두환이 대통령이었던 5공 시절에는 최루탄 터지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중국집 배달부로 일했습니다."
17살이 되자, 권 씨는 동대문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전태일 열사가 죽은 지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동대문의 작업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숨이 턱 막혔지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미싱사가 일하고 퇴근하면, 그다음에는 제가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새벽 4시에도 전화가 와요. 물건이 부족하니 내달라고요."
이때부터 권 씨는 배우지 못한 한 때문에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권 씨는 2002년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7살에 도전하기 시작해서 32살에 마무리했다.
"항상 제가 혼자라는 것을 느꼈기에 몸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돈은 못 벌어도 몸은 피곤하게 해야 한다고요. 만약에 제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더욱 힘들었을 겁니다. 저 혼자만 힘들면 그만이니까 마음의 부담이 적은 편이었죠."
어려운 살림에도 산으로 떠나는 길을 망설이지 않는 권중효 씨.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녀 초본을 떼면 몇 장 된다고 했지만, 산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산을 '왜' 좋아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대상이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정말 이유는 많지만, 딱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어떤 아가씨랑 사귄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저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버르장머리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귀지 말라고 타이르곤 했죠.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산도 이와 같아요."
권 씨는 매번 산에 갈 때마다 새롭고 즐겁다고 했다. 스키나 인라인 같은 레저를 즐기기도 했지만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여운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렵게 오른 산은 언제나 생각이 나고 감동과 여운도 길다"면서 "갈 때도, 다녀온 뒤에도 모두 즐거운 것은 산뿐"이라고 웃어버린다. 하지만 그는 산에 갈 때 "매우 조심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자연은 포근한데,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냉정합니다. 산에 대한 지식이나 대비 없이 가면 사고가 나거나 죽기도 하죠. 그래서 다른 사람이 산에 간다면 준비물을 열거하는 일이 입에 붙었습니다."
권 씨는 북한산에서 번개에 맞을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산에는 많다면서.
"한 번은 달리 갈 곳이 없어 여름휴가를 북한산으로 갔습니다.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살을 태우자는 마음으로 웃통을 벗고 암벽을 올라가는데 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라고요. 좀 전만 해도 날씨가 아주 좋았는데 말입니다. 암벽에 번개가 떨어지면 쇠붙이로 된 장비를 몸에 두른 사람들을 치기 때문에 걸음아 나살려라 하는 심정으로 부랴부랴 내려왔습니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암벽은 비가 오면 미끄럽지 않은데, 살짝 물기가 있을 때 가장 미끄럽거든요."
높은 산은 힘들 게 마련이다. 암벽이나 빙벽을 오르는 일은 더욱 만만치 않은 일이다. 험난한 빙벽이 끊임없이 펼쳐진 히말라야 원정을 다녀왔던 그도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문제. 처음에 그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걸 왜 하나", "TV 보며 방바닥이나 뒹굴고 쉴 걸"이라고 생각을 했단다. 그래도 그는 사회생활에서 얻을 수 없는 '성취감' 때문에 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산을 오르고 있다고 했다.
"작지만 성취감이 큽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성취감과 승리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꽃, 나무, 뻥뻥 뚫린 산을 보면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올라선 만큼이 정상이고 성취감인데, 요구하는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당연히 없겠죠."
그는 산에서 가면 이해심이 넓어진다고 일러준다. 고생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유대감이 쌓인다는 것.
"산에 혼자 가면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고, 여럿이 가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배웁니다. 타인의 성향을 생각하지 않고 내 주장만 펼치면 산행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또 암벽이나 빙벽을 탈 때 '자일을 묶는다'라고 하는데, 동료와 함께 자일을 묶고 올라서기 시작하면 그전에 갖지 않았던 정이나 믿음이 생기지요."
권 씨는 빙벽과 설산으로 이뤄진 히말라야 로부체(6,119m) 원정 얘기를 꺼냈다.
"정상을 공격할 때 체력이 달려 마지막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먼저 선회해 해발 5,000미터에 있는 베이스캠프에서 일행을 기다려야 했지요. 짐을 줄이기 위해 이틀 분의 식량을 들고 올라갔는데, 며칠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아서 마음을 졸였습니다. 선식과 샌드위치를 '대포'시켜놓고 기다리면서 초조하고, 불안하고, 가슴이 아팠던 일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대포'란 정해진 장소에 음식물을 넣어놓는 것을 말한다.
"거대하고 웅장하게 솟아있는 하얀 히말라야의 모습 앞에 서니 제 자신이 미약하고 매우 작은 존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뭐라고 할까요. '열정'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산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또 가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산에 다시 오르게 됩니다."
그는 암벽보다는 빙벽을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설산과 빙벽을 오르는 것이 자기 스타일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빙벽 초보 시절, 설악산 소승폭포를 탔습니다. 높이가 100m가 넘는 곳이죠. 올라가다 보니 팔에 힘이 급격하기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음을 찍을 힘이 없더라고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처럼 처절한 절규가 터져 나왔어요.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에서 욕도 나오고요. 그런데 올라가고 나니 기분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때 빙벽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 같은 곳은 기존에 만들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빙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빙벽은 자신이 길을 만들면서 가기 때문에 좋습니다. 암벽이 쉽냐, 빙벽이 쉽냐의 문제는 코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둘 중 어느 것이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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