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빠지게 일해도 제자리에 서있기조차 힘이 부치고, 단 돈 천원이 아까워 맛난 과일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시가 잘 읽히지 않았다. 밑바닥에 깊숙이 가라앉은 현실을, 좀처럼 변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도려내는 시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를 만났다. 바로 이송희 시인의 시다.
이송희 시인은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모순된 구조 속에 갇힌 사람들, 거대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설득 당한 사람들 등 중심에서 밀려난 비주류 삶의 현장”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싸늘한 세상의 귀퉁이에 내몰린 춥고 배고픈 영혼들을 시로 보듬고 싶은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이송희 시인의 시 중에서 「개기일식」이라는 시를 읽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살짝 열린 문틈에서
빛줄기가 새나온다
등이 굽은 여자가 성근 밤을 기운다 가리고 또 가려도 삐져나온 옆구리 살, 무릎 통증 돌아누워 아침을 꿈꾸다 작년 이맘때 하늘로 간 그이를 부르고 그이 위해 곰국을 끓이다 태워버린 냄비 바닥 박박 긁던 기억을 풀어낸다 온 식구 둘러앉아 밥 먹던 기억이 희미해, 숯불에 굽던 고기 몇 점 순식간에 없어지던 그 여름도 지워지고 쓰다 남은 물건을 차곡차곡 가방에 담고 귀퉁이에서 중심으로 지퍼를 올린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절룩절룩 빠져나와, 불꺼진 방 돌아보는 등이 굽은 저 여자
떠나온 길을 지우며 문을 꼭꼭 닫는다
- 「개기일식」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등이 굽은 여자’는 자식 없이 독거하는 ‘외로운 노인’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삿대질을 당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사랑의 상처 때문에 괴로움을 인내하며 살아가는 여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시는 2009년 겨울에 썼다. 태양이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이라는 개기일식의 이미지를 일평생 희생만 하다 혼자가 된 여자의 쓸쓸하고 고단한 삶의 이미지를 오버랩시켜 그린 것이지요. 요즘은 TV에서 노인 학대하는 자식들 이야기나 홀로 사는 노인들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빈 박스나 종이를 줍고 다니며 겨우겨우 하루를 끌고 가는 분들을 볼 수가 있는데요. 아직도 자식들의 구박과 폭력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노인들, 아예 인연을 끊어버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을 쌓아가는 노인들을 다룬 프로를 보다가 이 시대 여자들, 어머니들의 삶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 대가가 고독감과 쓸쓸함. 병든 몸이라니…
그리고 홀로 계신 엄마를 돌아보니, 3년 전 하늘로 가신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보였습니다. 온 몸을 희생하며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여자가 헌 신짝처럼 색이 바래고, 초라하게 말라가고 등 굽어 가는 모습을 그리며 눈앞에 욕망만 쫓을 뿐 제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현대인들의 반성을 이끌어내고 싶었습니다. “등이 굽은 여자”는 외로운 노인입니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자식 얼굴 본 기억이 언제인지 기억마저도 희미한 그날을 밤마다 꿈처럼 꾸는 여자입니다. 온 식구 둘러앉아 밥 먹던 희미한 기억과 울고 웃던 추억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습니다. 이제는 그 슬픔마저도 마음에 새겨야 할 때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체념인지도 모를, 쓸쓸한 삶의 목덜미를 따뜻하게 끌어안고 싶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번 제 시집에서는 「혀」, 「손금」, 「고장 난 시계」, 「잃어버린 거울」 등에서 여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 「혀」에서는 ‘혀’의 주요 기능인 ‘말’ 중에서도 ‘노인’의 ‘혼잣말’에 주목하여. 노인의 쓸쓸한 일상을 “중얼거림으로 시작해 중얼거림으로 홀맺는” 바느질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했던 시입니다. ‘혼잣말’에 ‘바느질’의 절묘한 중첩으로 노인의 저무는 시간을 새롭게 박음질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손금」에서는 칠십 고개 넘어가는 길목에서 폐지를 주우며 생활을 이어가는 노인의 삶을, 「고장 난 시계」에서는 고장 난 시계처럼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방 안에만 갇혀 있는 고독한 노인의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2010년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던 「잃어버린 거울」에서는 자신의 거울과도 같았던 남편을 잃고 외로운 빈자리를 더듬어 보는 여자의 슬픔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바람이 거세질수록 타인의 슬픔을 돌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가족이라도 말입니다. 싸늘한 세상의 귀퉁이에 내몰린 춥고 배고픈 영혼들을 시로 보듬고 싶은 마음에 쓴 시들입니다."
이송희 시인의 시 감정적으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것 같다. 냉철하지만 따뜻함을 잃지 않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러 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내’에 감정이입이 되곤 했다. 가난한 실직가장, 노동자, 구직자, 88만원 세대 등 꼭 저와 우리 이웃의 얘기 같기도 했고, 우리 시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풀어내야 할 화두라는 생각도 들었다.
간 팝니다 물기 젖은 간, 수궁가를 부르는 간, 전화기 속 별주부가 그의 간을 자르고 연체된 이자와 한숨까지 자를 때 콩알만 해진 간으로 전화기를 놓는 사내, 두 살 아이 분유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몇 달 밀린 방세를 생각하며 다시 또 전화 걸고...
- 토끼의 간 중에서
적막이 번지는 재개발 쪽방촌
부서진 담벼락 아래
차갑게 누운 사내
- 그믐의 시간 중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사내가 끼어 있다
일주일째 야근으로 쌓여가는 담배꽁초 잔뜩 쌓인 불만을 몇 개비 째 피우는 사내 며칠을 끙끙대다 사장에게 제출한 접어진 서류 속에 사내가 끼어 있다
- 햄버거 중에서
이송희 시인은 여러 시에서 사내를 통해 우리 시대를 들춰내고 있다. 크게 알려진 노동자 투쟁을 보면 쌍용자동차과 한진중공업 해직 투쟁을 들 수 있겠지만,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노동자들의 현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녀는 우리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는 가끔 과장된 행복으로 포장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제 시의 창작 의도를 정말 잘 짚어주셨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제가 유심히 바라 본 부분은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모순된 구조 속에 갇힌 사람들, 거대한 자본주의의 논리에 설득 당한 사람들 등 중심에서 밀려난 비주류 삶의 현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사내’가 그려지더군요. 시집의 서두에 있는 「토끼의 간」은 실직한 가장이 아기 분유 값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臟器)를 파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토끼의 간”을 풍자하여 그렸고, 「그믐의 시간」에서 역시 거리에서 떠돌다 차갑게 식어가는 사내를, 「거미의 길」과 「아포리아 숲」에서도 실직의 삶을 극복하려, 매일 밤 실시간 검색창을 들락거리는 사내의 몸부림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햄버거」는 빵과 빵 사이에 끼어 있는 고기와 야채의 형상을 마치 건물과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사내의 모습으로 환치했습니다. 과장과 부장 사이에 끼어 눈치 보고, 사회와 집안에서 또 역시 눈치를 보며 언제 해고 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운명을 담고자 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한 신문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자신을 포함해 몇 명의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몇 년간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그때마다 법은 자신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합니다. 이유도 없는 해고라니…. 점점 세상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경영 악화를 이유로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그리고 그 외의 제조업체들이 정리해고 된 사태는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나앉고, 심지어는 자살을 택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희망 퇴직’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매 번 노동자들의 투쟁 뒤에는 합법적인 절차나 협상안이 따르기보다 강제로 연행됐다는 쓸쓸한 보도가 잇따를 뿐이더라구요.
이 사회는 “과장된 행복”일지 모르겠습니다. 겉으로는 빛나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닐까요. 우리의 관계는 삭막하고, 차갑고, 계산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타인으로만 존재하지요. 산업사회의 발달은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안겨 주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개인의 이익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열지 못한. 삭막한 도심과 외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냉담’ 하는 이유나, 낚고 낚이는 먹이 연쇄 사슬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존재이지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있으며, 이것이 인간 삶을 형성합니다. 이처럼 욕망은 인간의 의식과 삶의 밑바탕에 깔린 존재의 근원적 요소입니다. 무언가 결핍되었다는 것을 지각하는 순간, 욕망은 발생하니까요. 현대인은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과정에서 타인과의 갈등을 유발하고, 타인과 대립각을 세우며 투쟁관계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문명 사회에서 우리의 욕망은 그 형태가 왜곡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욕망이 사회 속에서 형성되고 구성되는 산물이라면, 욕망의 구조가 자본주의 경쟁논리에 따라 형성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왜곡된 욕망은 익명성, 인간소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불안요소를 낳지요.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부만을 배타적으로 욕망하면서 삶 전체를 그 욕망의 충족에 맡긴다면, 진정한 삶의 토대를 상실하고 내면의 황폐함만 남기는 불행을 가져올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남보다 앞서고 남을 지배하려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닐까요. 단적으로, 현상의 원인은 이기적인 욕망과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의식구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우리 사회는 소통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말하는 입만 있고 듣는 귀가 없는 세상입니다.
대학생 자살 소식들이 연이어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사회는 그들에게 희망고문을 한 셈이지요.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밤낮으로 공부하며 입시전쟁을 치르고 대학에 오면 웬만한 아파트 값 만 한 등록금과 바늘귀 같은 취업의 문이 숨구멍을 막습니다. 그들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사회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이 개성과 전공을 살리는 대신 하나같이 공무원 시험이나 기타 고시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젊은이들의 꿈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거대한 규모의 같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 임시 고용된 직원과 같아서 언제 해고 될지 모르는 불안요소를 안고 살아가는 비정규 직원입니다. 제 시는 근본적으로 이런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이면서 우리 삶에 대한 반성에서 써진 것입니다."
요즘 시들은 우리 사회의 아픔보다는 인간의 내면세계나 정신적인 영역에 매몰돼 있다. 그래서인지 너무 난해하고 읽기도 힘이 든다. 도통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반면 이송희 시인은 우리 사회를 비판하면서 독자들을 각성시키고 있다고 본다. 또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개인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글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떠나가는 것들은 다 주름으로 남는 걸까
마음 바닥 한가운데
잔물결로 일렁이던
유골함 보자기에서 흘러내린 주름들
아버지, 마름 몸을 기억 속에 묻은 날
아코디언 주름처럼
늘었다 줄어든 생
허기져 구부러진 길도 계단이 되어가나
- 「주름」 중에서
늦여름 창밖은 무화과로 익어간다
당신이 떠난 계절, 혼잣말하는 잎들
대궁에 피어난 눈물
진핵으로 흐른다
눈 감으면 들려오는 바람의 목소리
속살을 들추던 그 비밀의 울음을
둥그런 잎사귀 속에
숨어 살며 견뎌왔나
- 「무화과 열매의 꿈」 중에서
요즘 어려운 시가 너무 많다.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화려한 수사와 어려운 문장으로 시를 꾸미기에 바쁘고, 문장도 정확하지 않다.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시가 난해해지고, 길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몇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들이 늘어나고 현란한 수식과 관념적인 시어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시에 매혹되어 시인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지요. 어느 평론가는 장황한 난해시로 한때 우리 시단을 들썩이게 했던 미래파에 대해 “기법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기법이 근본적인 질문에서 나온 것 같지 않고, 밑바닥까지 가지 않는 상태에서 기법으로만 나온 것 같다”며 날카롭게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쪽 코드로도 저쪽 코드로도 읽히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시들이 꽤 많”다면서, 소통불능의 장황하고 난삽한 시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미래파를 비롯한 난해시 부류에 답변하듯, 짧은 시 동인이나 시는 “짧고 간결하고 압축되고 명징해야”한다면서 ‘극서정(極抒情)’시집이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글이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난해시를 쓰는 사람들이 소통을 피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일이구요. 참 이 질문도 난해한데요.^^ 난해시를 읽고 난해시를 습작하는 후배에게, 그 시는 무엇을 말한 것인지 물어 본 적이 있습니다. 억지로 해석하려고 했던, 그야말로 난해한 표정이 그 친구 얼굴에 역력했습니다. 문학 양식 중에서도 가장 짧지만 명징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장르가 시입니다. 시인은 감각적으로 대상을 인지함으로써 갖게 되는 모든 감정들을 가장 적은 언어로 함축하여 표현하면서 세상과 타자는 물론 스스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존재입니다. 요즘처럼 빠른 속도와 경쟁의 시대를 살면서 시인들이 할 말이 많아진 것일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착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어렵게 써야 멋있을 것 같은 착각이 시의 본질을 더 왜곡시키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존재의 내부를 손으로 만져보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심이 가득한 눈길로 확 트인 신작로보다 비좁고 오래된 골목을 보고, 벽과 벽의 아스라한 틈 사이, 어깨를 반쯤 덮은 어둠은 벌써 친숙해야 합니다. 고통 받는 자들의 비명도 잘 들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득한 기억의 숲을 가로질러 미처 위로하지 못한 영혼들을 향합니다. 이러한 과거의 모든 시간이 오늘을 증언하며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시인들이 과거를 놓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현재가 자유롭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까닭인데, 이것은 치유를 위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시간을 되새겨 보는 것이지요.
시 「주름」은 2009년 국립 호국원에 아버지를 모시던 날 유골함 보자기에서 흘러내린 주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시입니다. 암 투병을 하셨기에 온 몸이 다 마르고 유독 주름이 많이 졌었습니다. “떠나가는 것들은 다 주름으로 남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열매」도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에 화자의 꿈이 무르익어가는 모습을 빗댄 시입니다. 제 시에 중심이 있다고 느끼시는 것은 아마도 제 시에 ‘서사’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어떤 글이든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히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난해시는 이러한 주제의식이 지극히 약하거나 드러나지 않는 경우라 할 수 있겠지요. 그것이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든 개인 서정에 관한 것이든 분명, 이 부분이 독자와 깊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독자와 공감대를 얻기 위해 모든 시를 창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문학의 근본적인 목적은 우리의 삶과 소통하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까? 문학은 독자가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마도 난해시를 쓰는 시인들은 아직 독자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까닭인 듯도 싶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냉정하게 비판하면서 따뜻하게 보듬는 시를 쓰실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어떤 모습에 더욱 관조하고, 아파하고, 사랑하실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아래 시처럼 대학 강단에 서고 계셔서 청년 문제에 관심을 많을 것 같다.
내일 밤 잠을 자던 동아리반 구석엔
학자금 대출 서류와 즉석복권 두 장뿐
바닥엔 충혈된 연탄만
벌겋게 타오른다
- 「출구는 없다」 중에서
구름처럼 중얼거리며 유년기를 보내고 책장 위 수북한 먼지로 살았습니다 어둠을 덮고 잔 이력만 수십 년째, 떠도는 허무를 모아 안개를 제조하고 졸고 있는 햇살 그려 입상을 했습니다.
- 「자기소개서」 중에서
"제 삶도 비정규직인데다 대학의 현장에 있어서 아무래도 「출구는 없다」나, 「자기소개서」에서 그리고 있는 청년들의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서고자 합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청년 문제보다도 실직의 가장이나 노인 문제, 정치 경제 상황에 안테나를 세웠다면, 다음 시집에서는 청년들의 문제를 비롯하고 역사성이 좀 더 가미된 시, 비정규직의 삶은 물론, 우리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범위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물론, 기아에 죽어가는 어린이들 등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석에도 나와 있듯 「출구는 없다」는 비싼 등록금과 고액의 이자를 감당 못해 자살한 대학생 이야기를 그린 것이고, 「자기소개서」는 담쟁이도 출근하는 마당에 자신의 직장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자기소개서 양식을 빌려와 재미있게 써 본 것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시인이 된 삶의 과정은, 어찌 보면 무척 평탄하고 무난한 인생항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스로 의지 없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시인이 되고자 하셨나? 시를 습작하고, 등단을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맞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무척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봐도 제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와 있는지 가끔 신기할 정도로 유년이 힘들었습니다. 서른둘에 박사학위라는 일종의 자격증을 가졌지만 아직은 비정규직 시간강사에 자본주의 시대와는 거리가 먼 시를 쓰고 있는 제가, 그래도 자신 있게 이 길을 택한 것은 문학도가 어렸을 때부터 제 간절한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아버지가 2009년 여름에 돌아가셨는데, 제 유년시절은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기억과 그로 인해 계속되는 가난한 일상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싸인 펜 세트와 소설 전집, 인형 등 갖고 싶은 것들을 꾹 참고 자랐습니다. 새 옷과 새 신발을 가졌던 기억도 손가락에 꼽습니다. 중학교 때는 아버지가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셨고 엄마가 일을 나가셨는데, 하교 후 빈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무척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맏이여서 여러 책임감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어린 남동생을 제외하고 여동생과 저는 그 덕에 일찍 철이 들어버렸습니다. 쌀이 떨어질 무렵이면 걱정하시던 엄마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요즘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런 분위기가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사촌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동화책을 적막감을 채우며 한 권 두 권 읽다 다 읽어버렸습니다. 일기를 쓰면서 그런 이야기도 정리하고, 하루를 되돌아보는 것이 마치 또 다른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짓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 덕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꾸준히 백일장도 나가 입상을 하고 문예반 활동도 하고 시화전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꿈이 간절했지만, 대학 갈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장학금과 대출금으로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1년 학비를 벌어 대학원을 진학했습니다. 서울로 가지 못한 후회가 지금도 막급합니다. 과외 아르바이트와 연구보조원, 강의와 기타 장학금으로 역시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석사 졸업과 박사 입학을 앞두고 2003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소설 습작을 좀 했지만 시 습작기가 짧아서 등단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박사논문 쓴다고 첫 시집을 7년 만에 내고 이번 ??아포리아 숲??이 그 후 2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입니다. 더 많이 관심을 받고, 아직까지는 저 나름대로도 애착이 가는 시집입니다.
가끔 시인인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중을 상대로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을 좀 안다고 자만하는 것은 아닌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부족한 실력을 대단한 것처럼 뽐내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반성합니다. 제 장점은 제 자신을 너무도 잘 안다는 것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형상인 것 같습니다. 상을 받거나 원고료를 받을 때마다 아버지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엄마의 밝은 표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끔 시인인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말을 했다. “가난과 외로움이 나를 키웠다. 생각을 두드려 세상에 시어를 새기는 일은 재생을 경험하는 일이다. 내게 시는 꼬리를 절망의 밤에 뜯기고 희망의 아침으로 도망친 도마뱀 같다. 시 쓰는 시간은 잘린 꼬리의 아픔과 자라는 꼬리의 희망을 동시에 맛보는 시간이다.” 내 생각에 시는 이송희 시인에게 밥과 커피, 아니 물과 공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어떠신지 궁금하다.
"시는 제게 자연스럽게 찾아 왔기 때문에 밥과 커피, 물과 공기 같은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때로는 제 고단한 삶을 증언하기도 하고, 소시민들의 아픔과 슬픔을 들춰내기도 하기 때문인지, 시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 앞에서 가장 솔직해 집니다. 현실의 부조리한 풍경이나 소외된 삶이 절망의 시간이라면 시를 통해 그러한 현실을 들춰내며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의 반성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시 쓰는 일은 재생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게 시 쓰는 시간은 “잘린 꼬리의 아픔과 자라는 꼬리의 희망을 동시에 맛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림자가 있으면 빛이 있다는 믿음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시인 김수영은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라 했습니다.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라고 했던 그의 말은 진정한 시 쓰기의 정신이 현실을 지각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제게도 시의 스승은 현실입니다. 제 시는 현실에서 싹틉니다. 그리고 시는 현실에서 싹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포리아 숲”이라는 제 시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실은 지금 우리에게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출구가 없는 길에서 매일 매일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전쟁을 치르고 있잖아요? 그런 사회에서 제 시는 일종의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참여 시를 쓰고 싶었어요. 더 치열해져야 겠지만요. 저는 현실 참여 시들로 인해 세상이 변화되어야 한다거나 반드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요. 다만 그런 시들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몸담은 현실을 한 번 더 돌이켜 보자는 데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욕망에만 눈에 멀어 주변의 삶에 눈길을 주지 않는 요즘이에요. 현실 참여 시들이 많아지고 시를 읽는 독자가 많아져서, 우리 주변이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공자는 “시란 뜻(志)이 향해 가는 바라,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고 했습니다. 과감하게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세상을 비틀 때, 천 년 만 년 문학사 속에서 오래 살아남을 시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속살을 다 보여주고도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사람의 시를 쓰고 싶습니다. 슬픔의 근원으로부터 제 시가 자랐기 때문입니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처럼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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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효 암벽타는 로프공 -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진 사람 (0) | 2022.09.27 |
이재갑 사진가 - 상처 위로 핀 풀꽃을 기록하다 (0) | 2022.09.27 |
도종환 시인 -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사람이 돼야 (0) | 2022.09.27 |
백미옥 도리조선족중심소학교 교장 - 애니메이션 센터 건립으로 폐교 막는다 (0) | 2022.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