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재갑 사진가 - 상처 위로 핀 풀꽃을 기록하다

이동권 2022. 9. 27. 19:57

이재갑 사진가


이재갑 사진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조선인들을 위로하듯 한 땀 한 땀 발품을 팔면서 사라진 강제징용의 ‘잔혹사’를 현실로 담담하게 끌어내고 있다.

사진작가라면 ‘나만의 사진집’을 가지고 싶어 한다.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동안의 작업을 성찰하면서 한 템포 쉬어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재갑 사진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영리를 목적으로 책을 내는 출판사가 호락호락할 리 없다. 사진집은 안 팔리니 글을 좀 쓰라는 채근이 뒤따랐다.

처음에 그는 영 글쓰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면 나서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글을 썼다. 글의 중요함을 잘 알기에 참아낼 수 있었다.

“각각의 대상에는 사연이 있다. 그것이 사진에 담겨지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다 담아내기 힘들다. 그래서 글을 썼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그럼 왜 사진을 찍느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언어보다 텍스트 언어는 분명 다르다. 이미지로 얘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재갑 사진가는 스스로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무척 얘기도 잘했고, 포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얘기를 한 것일까.

나는 그의 말이 결코 겸손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무기력한 영혼에 생동하는 숨결을 불어넣는 재주가 그에게 있다는 것. 비록 그것이 막중한 의무감일지라도 말이다. 실제 그는 사람이 두려워 만나지 않았지만 스스로 고립감을 느꼈고, 사진 작업을 해결하기 위해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1996년부터 서대문형무소, 서울역처럼 한국에 남아 있는 일본의 잔재를 기록했다. 그곳에서 참혹한 과거의 잔상을 발견한 까닭이다. 그는 서대문형무소를 “시각적으로 묘한 소리를 내고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계속해서 작업의 범위를 확장해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의 현장까지 담아내고 있다.

그가 들른 곳은 후쿠오카,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키나와, 오사카다.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답사를 떠난 장소는 모두 황량하기 그지없다. 이를 테면 군부대, 동굴, 댐, 탄광, 터널, 비행장 등 강제징용 온 조선인들이 피를 토하며 일했던 곳이다. 그리고 그는 그곳의 기록을 책, ‘일본을 걷다’로 냈고, 최근에는 전시, ‘상처 위로 핀 풀꽃’전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