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정신, 항일 운동의 기지였던 하얼빈의 명문, ‘도리조선족중심소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해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이곳에 첨단 애니메이션 센터 건립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도리소학교가 민족문화교류의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백미옥 도리소학교 교장이 한국을 찾았다. 폐교 위기에 처한 도리소학교를 살리기 위해, 도리소학교의 교육환경 개선과 애니메이션 사범학교 건립을 위해 도움을 자처한 성산효대학원대학교의 지원 협약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한국 성산효대학에서 첨단 디지털 애니메이션과 효교육을 할 수 있는 모든 설비를 약속해주셨습니다. 선생님들 모두 너무 기뻐하고 기대가 많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잘 몰라도 언제 되는지 매우 궁금해합니다. 제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와’ 소리 지르면서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것이 아이들 마음입니다.”
도리소학교는 1909년 조선족항일투사와 민족 선각자들이 세운 학교다. 안중근 의사는 이곳에 은거하면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도리소학교가 없었고, 안중근과 뜻을 같이하는 선생들이 없었다면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불가능했다. 이 사건으로 안중근과 교사 3명은 총살형을 당했다. 하지만 도리소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했다. 항일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학교가 도시산업화에 따른 공동화 현상으로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다. 이에 일부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도리소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성산효대학원대학교와 도리소학교의 지원협약 체결로 도리소학교 22명의 교사와 중국의 재능 있는 교사들에 대한 전문 교육이 실시되면서 도리소학교의 폐교를 막는 한편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와 함께 도리소학교는 인성교육, 역사교육의 토대도 한층 더 높아져 예술과 함께 지(智)와 덕(德)을 고루 갖춘 학교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도리소학교는 전통문화와 예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효도 또한 비중 있게 가르칩니다. 학교 4층에 가면 효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벽면에 전시돼 있을 정도지요. 이런 점은 성산효대학하고도 잘 맞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는 점에서도 매우 좋고, 애니메이션 센터 건립으로 해마다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도 해소되리라 생각됩니다.”
막상 두 학교가 지원협약을 체결했지만 전문교육센터를 세우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고 재정적인 문제, 그리고 이 일을 진척시키기 위한 열정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도리소학교를 살리는 일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노진민 국제청소년평화재단 대표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내놓은 장하림 감독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도리소학교를 살리는 일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
“최성규 성산효대학 총재님이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과 막역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님이 고문으로 추대돼 도리소학교를 돕는 일에 나선다고 합니다. 우선 조용기 목사님의 책, ‘절망에서 희망으로’ 출판기념식의 모든 수익금을 도리소학교에 보내주시기로 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백미옥 교장은 이 자금을 먼저 교통수단 문제부터 해결할 계획이다. 먼 곳에서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통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버스 지원 사업이 첨단 애니메이션 센터 건립의 첫 삽을 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교사, 아이들, 학부모뿐만 아니라 하얼빈시 교육청에서도 기대가 많습니다. 하얼빈시에만 조선족이 3만 명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 학부모들은 도리소학교에서 중국어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도리소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교통문제가 해결되고, 애니메이션 센터가 건립되면 이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폐교 위기 처한 도리소학교
이토 히로부미가 대일본제국건설을 목표로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도리소학교 김성옥 교장과 김형재, 탁공규 선생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계획을 세웠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가 쏜 3발의 총성과 함께 암살됐다. 사건 이후 안중근 의사와 도리소학교 3명의 선생은 총살형을 당했다. 현재 도리소학교는 이들 독립군의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다.
도리소학교는 ‘흑룡강성 일류학교’, ‘예술특색학교’, ‘송화강변 예술의 꽃’으로 불리며 102년간 우수한 예술인을 키워왔다. 최근에는 학생 수가 많이 줄어 예전의 명성은 잦아들었지만 흑룡강성 성급기준화 시법학교로 선정될 정도로 그 명맥만은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도리소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직접 만났던 장하림 감독도 ‘예술 명문학교’라고 칭찬이 자자할 정도. 뿐만 아니라 도리소학교는 안중근 의사의 역사성을 간직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도리소학교는 매년 3월과 10월 연극, 노래, 낭독 등 안중근 의사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단 중국 교육국에서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몰래’한다.
홍이숙 도리소학교 문화예술 교사는 “학생들 데리고 와야 도리소학교가 살 수 있는데 학생 수가 턱없이 부족해 교육국에서 없애려고 한다”면서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안중근 의사의 혼이 살아 있는 도리소학교가 없어지지 않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도리소학교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사람들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지만 도리소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안중근 의사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폐교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노진민 국제청소년평화재단 대표도 이 일에 발 벗고 나섰다.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안중근 뚱만(애니메이션)중심 전문 교육기관을 도리소학교에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예술기관은 도리소학교를 단지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살리는 의미를 뛰어 넘어 도리소학교가 민족문화중흥운동의 창구이자 대한민국이 영상 강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이곳에 마련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는 중국 34개성 최초로 4D시뮬레이션관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를 만나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지는 장면을 가상현실 HMD 고글 시스템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장하림 감독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사건으로 도리소학교 선생님들이 총살을 당한 뒤 일본 교장도 들어왔고, 중국 문화혁명도 거쳤지만 도리소학교는 안중근 의사의 정신과 민족예술의 전통을 끝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감독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할 때 울렸던 3발의 총성을 4D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해 제2의 총성을 울리려고 한다”면서 이러한 성과는 “도리소학교에 설립될 애니메이션 전문 예술기관으로 이어져 민족의 얼을 드높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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